진천 농다리 축조시기 '시끌' - 2004년 3월 18일 Stone Bridge of Medie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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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농다리 축조시기 '시끌'- 2004년 3월 18일

자료출처
:- 충북일보-<제 283호> 2004년 3월 18일 목요일 (사회3면)
자료생성:- 손근무 기자.

 

진천 농다리 축조시기 '시끌'-충북일보-<제 283호> 2004년 3월 18일 목요일 (사회3면)
충북일보
진천 농다리 축조시기 '시끌'


교원대 J교수 "삼국시대 김서현·김유신장군이 축조"
학계·보존회 "학술적·고증학적 근거없다" 시정요구

진천 농다리가 삼국시대 김서현·김유신장군이 축조했다는 설이 제기돼 관련학계와 농다리보존회 등이 반발하고 나섰다.

진천 농다리 보존회(회장 신응현)·진천농다리 지킴이(회장 임영은)는 충북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28호인 진천농다리(문백면 구곡리)가 삼국시대 김서현 김유신장군이 축조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잇는 것과 관련 "이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고증되지 않은 자료를 가지고 축조에 대한 이설을 제기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크게 반발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농다리보존회는 "최근 J박사가 진천농다리가 김서현·김유신장군이 축조했다고 발표한 것은 개인적인 의견을 발표한 것으로 전혀 학술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진천군과 충북도가 개인적인 사견을 책자에 기록하고 홈페이지 등에 올리는 것으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천 농다리는 고려시대 임연장군이 그의 전성기에 고향마을에 축조했다고 상산지와 조선환여승람지에 기록돼 있고, 지난 97년 충북대 박물관이 문헌조사와 지표조사를 통해 발표한 '진천군의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수록돼 있다

이같은 농다리 축조설에 대해 J박사(한국교원대 명예교수)가 지난 70년대초 농다리는 김서현·김유신 장군이 축조했다고 발표해 진천군이 99년 김유신장군 성역화 사업에 이를 인용, 마치 김유신장군이 축조한 것으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농다리 보존회와 지킴이들은 지난 9일 J박사를 방문해 항의하자 J박사는 '지난 70년대초 진천지역 각종 문화재를 연구조사하다보니 농다리가 도당산성에서 낭비성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김서현·김유신장군이 전투에 사용하기 위해 축조하지 않았을까 추정한 것으로 이는 명학한 학술적인 근거없이 개인의견을 내놓은 것 뿐'이라고 밝혔다.

보존회 관계자는 "이같은 박사가 발표한 개인의견을 관계기관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초등학교에서까지 역사가 왜곡돼 알려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관계기관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을 때 공표해야 마땅하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신호철 충북대 교수는 "농다리 축조는 분명히 상산지와 조선환여승람지에 기록돼 있는 증거가 있다"며 "농다리에 대한 공식발굴 등을 통하지 않는 개인적인 사견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군 관계자는 "J모교수가 김유신장군과 관련된 문화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추정하는 설에 의해 거론했다"며 "고려초에 임장군에 의해 축조됐다는 것이 상산지에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은 일제통치하에 기록된 것으로 확실하게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단기 4337년 음력 2월 28일 <제 283호> 2004년 3월 18일 목요일 (사회3면)
/손근무기자 sgm@cb365.co.kr
/김병학기자 kbh7798@cb365.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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