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의 비밀 ② - 김포 장릉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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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의 비밀 ② - 김포 장릉]

자료출처 :- 문화재청 http://cha.news.go.kr/gonews/branch.do?
자료생성 :- 문화재 향기 2009-07-06 오후 05:15




[조선왕릉의 비밀 ② - 김포 장릉]
2009-07-06 오후 05:15





사적 제 202호 |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산 141-1


장릉가는길 |
공항로(외곽순환도로 김포IC)→48번국도를 이용 김포, 강화방면→
김포시청입구(사우동) 에서 좌회전→
김포시청 정문에서 좌회전 200M 오면 오른쪽으로 장릉



< 장릉 | 章陵 >



<장릉은 봉분 아래에 얕은 호석만 둘렀을 뿐, 병풍석과 난간석은 생략되었다.
이는 추봉한 다른 왕릉의 전례를 따른 것이다. 석물만 왕릉 형식으로 상설하였다>


조선 16대 인조의 부모인 원종(元宗, 1580~1619)과 인헌왕후(仁獻王后, 1578~1626) 구씨를 모신 능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으로 용모가 출중하고 태도가 신중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참도는 다른 능들과 달리 경사진 참도를 통해 정자각에 이르게 되어 있다>

정원군은 처음엔 양주군 곡촌리에 묻혔다. 큰아들 능양군(인조)이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정원군은 대원군에 봉해졌고, 묘가 원으로 추숭되어 흥경원(興慶園)이라 했다. 1627년 인조는 정원군묘를 김포현의 성산 언덕으로 천장했고, 1632년 다시 왕으로 추존하여 묘호를 원종,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능역 바깥, 장릉 남쪽에는 연을 가득 심어놓은 연지가 있다>



<사등신 비례의 몸에 경직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문,무석인과 망주석.
세부조각은 문석인보다 무석인이 더 화려하다>

인헌왕후는 아들(인조)이 즉위하자 연주부부인이 되었고, 궁호를 계운궁(啓運宮)이라 했다. 1626년 49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김포 성산 언덕에 예장하고 원호를 육경원(毓慶園)이라 했다. 흥경원을 이곳으로 다시 천장하면서 원호를 흥경원이라 합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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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에서 발간한 [조선 왕릉 답사 수첩]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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