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의 비밀 ① ] - 공순영릉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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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의 비밀 ① ] - 공순영릉 

자료출처
:- http://cha.news.go.kr/
자료생성 :- 문화재청 2008-08-04 오후 05:13
자료옮김 :- 1문화재 1지킴이(진천농교 - 쿠웨이트 정부병원 임충섭)

문화재 향기
[조선왕릉의 비밀 ① ] - 공순영릉
2008-08-04 오후 05:13

사적 제205호 ㅣ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 산4-1

공순영릉 가는길
구파발 → 벽제 → 장곡검문소 → 파주농협 하나로 클럽
→ 송촌 토파즈 아파트 앞 버스정류장(공릉입구)에서 우회전 후 직진 → 파주삼릉


<공릉>


조선 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章順王后, 1445~61) 한씨의 능이다. 장순왕후는 한명회의 셋째 딸이다. 세조 때 한명회는 영의정까지 오르면서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병약한 세자(덕종)가 죽고 세조의 둘째 아들(예종)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한명회는 1460년 그의 딸을 세자빈의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그의 딸은 다음해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을 앓다가 17세 어린 나이로 승하했다. 장순왕후에 이어 예종도 짧은 재위기간을 마감하고 요절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가 ㄱ자로 꺾인것이 눈에 띈다.

장순왕후는 아름답고 정숙하여 세자빈으로 간택된 뒤 시아버지인 세조에게 사랑받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세조는 왕세자빈에게 장순(章順)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470년(성종 1) 능호를 공릉이라 했고, 1472년 장순왕후로 추존되었다.

<순릉>


조선 9대 성종의 비 공혜왕후(恭惠王后, 1456~74) 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넷째 딸로 순릉과 마주보고 있는 공릉의 장순왕후와 자매지간이다.
공혜왕후는 1467년 의경세자(덕종)의 둘째아들 자산군에게 출가했다. 효심이 깊은 예종은 세조의 장례를 치르면서 건강을 잃어 재위 14개월 만에 승하했다. 이때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겨우 3세에 불과했고, 15세인 월산군은 병약하여 자산군(성종)이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왕비로 책봉되었다.
공릉과 달리 순릉은 왕비 능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공혜왕후는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왔으나 예의바르고 효성이 지극해 삼전(세조비 정희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예종 계비 안순왕후)의 귀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왕비로 책봉된 지 5년 만에 후사 없이 승하한 공혜왕후는 왕비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세자빈의 신분으로 돌아가신 언니 장순왕후의 공릉에 비해 구성물이 더 많다.

<영릉>


영조의 장자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 1719~28)와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 1715~51)의 능이다. 진종은 1725년 7세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728년 숨을 거두자 시호를 효장(孝章)이라 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게 한 뒤 사도세자의 맏아들인 왕세손(정조)을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켜 왕통을 잇게 했다.
소략한 능침 공간의 석물들에 비해 정자각은 규모가 큰 편이다.

정조가 즉위함에 따라 효장세자는 양부(養父)로서 진종으로 추존되었으며 그 후 1908년 황제로 추존, 진종소황제가 되었다. 효순소황후는 1727년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1735년 현빈(賢嬪)에 봉해졌으나 37세에 소생 없이 승하했다.
정조가 즉위한 후 효순왕후로 추존되었으며, 1908년 다시 효순소황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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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에서 발간한 [조선 왕릉 답사 수첩]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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