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설화 및 우르(Ur) 가톨릭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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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설화 및 우르(Ur) 


자료출처
:- 보시니 참 좋았다/성서가족을 위한 창세기 해설서  

자료입력 :- 2009.03.14 임충섭 (쿠웨이트 정부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독도천영보호구역지킴이, 1문화재1지킴이)



쿠웨이트 정부 치과병원에 1978년부터 근무하고있는 교민 임충섭 요한바오로 입니다.

 
지난 2003년 8월에 서희부대 & 제마부대가 위치했던 이라크 안나시리아(우르)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르에 가기전에 공부하느라 찾아본 내용을 올립니다.
바벨탑 설화 (창세기 해설서-보시니 참 좋았다-발췌-성서와함께)를 올립니다.
 
지구랏(Ziggurat of Ur) 및 우르(Ur)관련 참고 그림(유물)을 보실분은 아래 저의 블로그를 보십시요
http://q8imcs.egloos.com/3050331    <----클릭 하세요
http://q8imcs.egloos.com/9216295   <----- (Ziggurat of Ur)참고 그림
http://q8imcs.egloos.com/9233535    
2600~2400년 B.C. Royal Tombs of Ur 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을 보실수 있습니다. 

 
2.바벨탑 설화(11,1-9)

제관계 저자는 씨족 언어 지방과 부족을 따라 인류가 갈려 나가 각 민족을 이루었다는 것을 반복하여 이야기 했다.(10,5.20.31-32참조). 제관계 저자는 인류가 갈라져 땅 가득히 퍼지는(9,7) 것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보았다. 그러나 야휘스트는 바벨탑 설화를 통해 부족과 언어가 갈려 나간 이유를 원인론적으로 설명하면서 이를 축복이 아니라 처벌로 간주한다. 바벨탑 설화에서 인류의 흩어짐과 언어의 나뉨은 각기 다른 주제이며, 이 두 주제를 묶는 또 다른 주제가 탑의 건설이다. 바빌론의 도시 문명과 기술 문화를 배경으로 탑(대형 건물)을 건설하여 인간 자신의 위대성을 드러내려는 인간 집단의 오만과 이에 대한 처벌의 도식 속에, 위 두 주제가 점차 상호 연결되면서 현재와 같은 꼴을 갖추었다고 본다. 다만 바벨이라는 이름과 관련되어 언어의 혼란이라는 주제가 보다 전면에 부각되어 나타났다.

바벨탑 설화는 창세기 11 장 1-9절에 단 한 번 나타날 뿐 성서의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설화에 나타난 주제들을 여러 나라의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인류가 여러 곳에 흩어진다는 내용은 보통 홍수 설화의 결론에 포함되어 전해진다. 인도의 홍수 설화에 의하면 홍수에서 세 아들이 구출되어 세상 곳곳에 퍼졌다고 한다. 인류의 흩어짐과 언어의 분화 현상이 함께 연결된 설화도 있다. 바스크족 역시 홍수가 끝난 후에 언어가 혼란되었다는 고대 신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분산이나 언어의 혼란이 탑의 전설과 연결되어 설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편 바벨탑 설화와 비교될 수 있는 고대 동방 문헌은 '엔메르카 서사시'(The epic of Enmerkar)이다. 기원전 2000 년경의 수메를 전승을 담고 있는 이 서사시에 따르면 인류에게 공포나 위협이 없었던 황금시대에는 언어가 하나였는데, 엔키(Enki)신과 엔릴(Enril)신의 싸움 때문에 언어가 나뉘었다고 한다.

이상의 여러 신화들을 살펴보면 인류의 분산이나 언어의 혼란은 일반적으로 홍수 설화와 연결되어 아주 고대부터 내려온 것이다. 따라서 이 주제를 탑의 건설과 연결시키고 나아가 그 원인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찾는 바벨탑 설화는 여러 단계의 전승과정을 거쳐 후대에 이루어진 보다 독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설화가 고대 바빌론의 문화를 배경으로 했음은 분명하다. 이스라엘인들은 메소포타미아, 특히 바빌론에 있었다는 웅장한 건축물과 탑들 그리고 그 재료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바벨탑 설화의 구조는 크게 두 부분(1-4 절과 5-9절)으로 나눠진다. 1.절은 하나의 도입부로 처음 상태를 설명하고 2-4절은 인간의 결심과 행위를 서술한다. 5절은 앞부분에서 뒷부분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이다. 5-8절은 앞과 대칭어구를 이루며 인간의 행위에 대처하시는 하느님의 결심과 행위가 시술된다. 9절은 야휘스트가 두 부분을 잇기 위해 쓴 종합 설명으로 현재 상태가 서술된다.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1절)는 말은 다양한 인류의 언어가 하나였던 원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물론 이것은 다양한 부족과 민족과 국가로 이루어진 인간 종족이 같은 줄기에서 연유했다는 사실도 아울러 포함한다. '동쪽에서'왔다는 말은 이미 야휘스트가 앞에서 기술했던(2,8,4,16) '동쪽'의 의미를 연상시켜 준다. 즉 이 말은 인류의 기원이 '동쪽'에서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뭔지 잘 모르는 먼 곳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이 떠돌아 다니다가 시날 지방에 이르러 자리를 잡게 되면서부터 이야기의 본론이 시작된다. 시날(shinar)이란 지명은 메소포타미아 지방 전체를 가리킨다. "돌 대신 벽돌을 쓰고 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는 표현은 분명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놀라운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팔레스티나에서는 돌과 흙이 흔했으나, 이들은 결코 축복의 선물이 아니었다. 반면에 볕에 말리거나 구워서 만든 벽돌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대표적인 도구였다. 사람들은 이 벽돌에 글을 써서 남기기도 하고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청을 발라 쌓아 올린 진흙의 벽돌 구조물들은 놀랄 만큼 견고하여 수천 년을 지탱하였다.

4절에서 제일 먼저 언급되는 주제는 사람들이 도시와 탑을 세우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이다. 이 주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처음부터 이 설화에 들어 있었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탑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zigurrat)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지구라트는 구운 벽돌로 쌓아 올린 피라밋 구조의 층계식 건축물로서 그 꼭대기에는 신전이나 제단이 있었다. 이 건물은 수메르, 바빌론의 모든 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도시 문화의 한 상징이자 종교적 중심지로서 그 도시에 활력을 주는 장소였다. 지구라트는 그 기본 발상에 있어서 높은 곳을 숭상하는 아시아권의 산악숭배 사상과도 비교된다고 보여진다. 우리나라의 솟대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구라트는 신화적인 상징인 '하느님의 산'과 대비할 만하다(예컨대 에제 20,16의 '시나이 산', 신약성서의 '참된 행복의 산' 등). 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할 산 또는 높은 곳은 인간이 신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소라는 공통된 의미가 있다(예컨대 창세 29,10-19에서의 야곱의 꿈 이야기).특히 바벨탑 설화에 나오는 탑은 바빌론에 있던 마르둑 신의 주요 신전으로서 '꼭대기가 하늘로 치솟은 집' 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사길라(Esagila)와 연관되어 설명된다. 그러나 야휘스트는 지구라트를 탑으로 등장시키는 데 있어서 그 본래의 종교적인 의미를 전혀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 그에게 있어서 이 탑은 다음 두 주제들과 연관되어 죄악의 상징물로서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4절에 나오는 또 다른 주제는 "우리 이름을 날리자"로서 전승과정 중에 삽입되었다고 본다. 이때 이름은 공동체의 인정을 받는 이름, 곧 명성을 가리킨다. 자신을 위해 자신이 직접 이룩한 야망의 결과가 바로 이름이다. 다윗이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여 떨친 '이름이 그것이다.(2사무8,13참조). 여기서는 거대한 탑을 세워 자신들의 이름을 떨치려는는 사람들의 의도가 부각된다. 세 번째 주제 역시 전승 과정 중 후기에 삽입된 것으로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이다. 여기서 탑은 하나의 기념비와도 같은 현 상태를 영원히 보존하려는 영속성의 표상이다. 즉 이미 쌓은 인간 서로의 기존 유대와 안정을 잃지 않으려는 두려움의 표현이다. 이는 곧 '온 땅에 충만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행위인 것이다.

5 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없는 동안에 인간의 무슨 일을 하는지를 직접 땅에 내려 오시어 보신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사람들과 함께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계신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하느님은 인간의 행위를 보고 즉각 행동하시지 않고 그 행위의 결과를 깊이 생각하신다(6절). 그 결과 그들이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다고 우려하신다. 하느님은 무한한 자율성을 가지고 하느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한계를 알려 주어 그들을 위험에서 지키려고 개입하신다(욥기42,2 참조).그래서 당장 땅에 내려가서 인간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처음에 세우셨던 올바른 질서를 회복하시기로 결정하신다(7절). 이리하여 야훼께서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고 사람들은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7.8절). 즉, 인류의 분산과 언어의 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지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끝맺고 있다.(9절). 바벨(Babel) 의 히브리어원은 명백하지는 않지만 보통 바빌론과 관련짓는다. 바빌론의 본래 어원인 바빌리(Babili)는 '신의 문'이란 뜻이다. 흔히 통속적으로 생각하는 바벨의 어원은 '혼란시키다' 라는 뜻의 히브리어 바릴(Balil)이다. 그러나 이는 올바른 어원이 아니며, 단지 히브리 발음이 비슷해서 연결된 것 같다.

우르(Ur)

수 세기 동안 그 위치가 망각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조 아브라함의 출생지라는 명성 때문에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전승에 잔존해온 우르는 선사시대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5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르의 위치는 메소포타미아 저지대(오늘날의 이라크)인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있는 텔엘 무카야르(Tell el-Muqayyar,역청의 언덕)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1854년 로프터스(Loftus)가 방문한 이래 테일러(Taylor), 톰슨(Thompson), 홀(Hall)등에 의해 발굴되다가, 1922-1934년 울리(Woollay)의 지휘아래 영국박물관과 펜실 바니아 대학 박물관의 연합으로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 졌다.

(1)우리 제1왕조 시대(기원전 2500-2360년)
울리의 우르 발굴은 무엇보다도 제 1왕조 문화의 발전된 면모를 생생하게 증명해 주었다.
고대 도시의 성벽 밖에 있는 매장지역에서는 컵과 무기, 도구 및 보석을 포함하는 갖가지 매장품들이 나왔다.
우르의 유명한 왕실 묘지는 더 낮은 지층에서 발굴되었는데, 수입된 석회석으로 건축된 상하(上下)지하 납골소로 이루어져 있음이 발견되었다. 그곳에 인접한 매장 구덩이에서는 아름답게 조각된 하프들과 작은 나무 앞에 곧바로 서 있는 염소 조상(彫像) 두 개를 포함한 다양한 매장품들과 함께 남녀 시종들의 유해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고대 수메르의 매장 풍습과 믿음에 관한 연구에 새로운 빛을 던져 주었다.
우르의 왕과 여왕이 죽으면 신하와 시종들도 순장되었다. 그들은 가장 좋은 옷들을 입고 있었는데, 군인들은 창을, 음악가들은 값비싼 하프를 들고, 하인들은 황소가 끄는 왕의 마차를 몰고 주인을 따라 저승에 가기 위해 무덤에 들어갔다. 그들이 평안하게 잠든 자세로 발견된 사실과 유골 곁에 많은 컵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독을 마셨던 듯하다.

한편 훌륭한 황금 투구의 발굴은 당시 우르의 예술이 고도로 정교하였음을 알려준다.
그 투구는 '메스칼람-둑' 좋은 땅의 영웅(Mes Kalam-dug)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는데 타래진 머리칼이 우아한 대칭형식으로 새겨져 있었다. 다른 석고 지하 납골소로부터는 유명한
'우르의 군기'(軍旗)가 발굴되었다. 이것은 전쟁과 평화를 묘사하는 모자이크 판으로서 조개껍질과 라피스 라줄리(lapislazuli;유리보석) 등을 소재로 하여 만든 것인데 기원전 2450년
경의 의식행렬 때 사용된 군기였던 듯하다.

(2)아카드 시대(기원전 2360-2180년)
기원전 4000년대 이래 시날 평야의 북부에 정착하여 수메르인들과 무역관계를 가져온 일부 셈족들은 기원전 2400년 경 아가데(Agade)의 사르곤(Sargon)의 지도력 아래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는데, 그때부터 그들은 아카드인들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사르곤은 기원전 2360년 수메르의 루갈작기시(Lugalzaggisi)를 패배시키고 그 영토를 점령 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수메르 문화를 자신의 왕조에 동화시켰으므로 불과 두 세기도 못 되어 아카드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퍼졌다.

(3)우르 제3왕조 시대(기원전2060-1950년)
매우 유능한 한 가문의 통치자들로 이루어진 아카드 제국은 그 가문의 힘이 소진하게 되자 제국도 몰락해 버렸다.
구트족의 침입으로 인해 한 동안 혼란기에 처해 있던 메소포타미아는 다시금 짧은 기간이나마 고전적인 수메르 문화의 부흥을 맞게 되는데, 이것은 우르 제3왕조 떄의 일이다.
이 시대에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우르남무(Ur-Nammu)가 우르에 세운 거대한 지구라트는 1922년 울리에 의해 발굴되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중류 지역의 고대인들은 점토를 이용하여 불에 굽거나 공기에 말려서 벽돌을 만들었으며, 역청으로 모르타르를 삼았다. 그래서 바벨탑에 대한 성서의 기록은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창세 11,4)고 말한다. 따라서 바빌론의 문화는 '벽돌문화'라고 할 수 있다. 바빌론에서 숭배되던 많은 신들 중에서는 달신(月 ) 난나가 최고신으로 숭배되었기 때문에 우르 지구라트의 맨 위에는 난나의 사당이 있었다. 요셉이 에집트에서 피라밋을 본 것처럼 아브라함은 고향 우르에서 이 지구라트를 자주 보았을 것이다. 제 3왕조는 북쪽으로부터 침입해 온 엘람족에 의해 멸망당했으나, 수메르의 종교와 문화는 그 뒤 수 세기 동안 동방 지역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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