鎭川林氏 6세손 임구(林球)관련 자료입니다. 鎭川(常山)林氏


鎭川林氏 6세손 임구(林球)관련 자료입니다.


자료출처 :- 조선왕조실록
자료입력 :- 2008. 03. 08
자료작성 :- 임충섭


진천임씨 6세손 임구(林球)관련 자료입니다.

태조 3권, 2년(1393 계유 / 명 홍무(洪武) 26년) 3월 23일(무진) 1번째기사
太祖 3卷, 2年(1393 癸酉 / 명 홍무(洪武) 26年) 3月 23日(戊辰) 1번째기사
박신 등을 각도의 안렴사로 임명하다
각도의 안렴사를 나누어 명(命)하였는데,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에는 사헌 시사(司憲侍史) 박신(朴信)이고, 서해도(西海道)에는 예빈 소경(禮賓少卿) 권문의(權文毅)이고, 경기좌도(京畿左道)에는 공조 전서(工曹典書) 장자충(張子忠)이고, 우도(右道)에는 삼사 좌승(三司左丞) 임구(林球)였다.
○戊辰/分命各道按廉使。 交州、江陵道司憲侍史朴信, 西海道禮賓少卿權文毅, 京畿左道工曹典書張子忠, 右道三司左丞林球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6장 A면
【영인본】 1책 4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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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렴사 (按廉使) :-
고려시대의 지방관직. 1276년(충렬왕 2)의 관제개정에 따라 안찰사(按察使)를 개칭한 것이다. 1298년에 경상도·전라도·충청도는 땅이 넓고 일이 많아 안렴부사(按廉副使)를 더 두었다. 충선왕 즉위 후에 제찰사(提察使)로 고쳐졌다가 충숙왕 때 다시 안렴사로 되었다.
1389년(창왕 1)에 안렴사가 관질(官秩)이 낮아 수령을 통할하고 그 직책을 다할 수 없다고 하여 양부대신(兩府大臣)으로 임명되는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로 고쳤다.
≪참고문헌≫ 高麗史
≪참고문헌≫ 高麗史節要
≪참고문헌≫ 高麗按察使考(邊太燮, 歷史學報 40, 1968
경기우도(京畿右道)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경기도를 분할하여 설치하였던 행정구역. 기(畿)는 중국의 주나라에서 왕성을 중심으로 500리 이내의 땅을 뜻하였으며, 서울을 에워싼 문지방이라는 뜻이다.
1018년(현종 9) 정주·송림·임진·토산·임강·적성·파평·마전 등 여러 고을을 상서도성(尙書都城)의 직할이 되게 하여 처음으로 ‘경기’라 하였다.
1106년(예종 1) 10도를 고쳐서 1경(京)·5도(道)·양계(兩界)로 할 때 이 일대는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 : 양주·광주·충주·청주의 머릿글자를 합한 이름)로 하였다가 충숙왕 때 양광도(楊廣道)로 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 처음으로 경기를 나누어 좌도와 우도로 하고 도성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 지방을 경기우도라 하였다.
1413년(태종 13) 좌·우도를 합하여 경기도로 하고 관찰사를 두었으며, 따로 경도한성부(京都漢城府)·구도개성유후사(舊都開城留後司) 등을 두었다.
≪참고문헌≫ 地方行政地名史(內務部, 1981)
≪참고문헌≫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6)

덧글

  • 쿠웨이트-진천농다리 2011/04/02 23:57 # 답글

    진천임씨 6세손 임구(林球)관련 자료를 올리면서 원본 사진을 못 올렸었는데 이제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진천임씨 6세손 임구(林球)관련 자료가 '조선왕조실록' 외에 다른 史書에도 2건이 더 있어 찾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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