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옥의 농다리(籠橋)의 설화(說話) Stone Bridge of Medie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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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경기대학교 국어국문과)의 농다리(籠橋)의 설화(說話)

자료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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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衍 . 林衍政權 硏究 (신호철 교수). 한국문학연구(경기대학교)
자료원전 :-
자료생성 :- 이영옥 - 1992 경기대학교
자료위치 :-
첨부파일 :-
함께봐요 :-

이영옥님은 농교설화현지연구 -임연의 오누이 힘내기- 를 중심으로의 저자입니다.

신호철 교수님의 <임연.임연정권연구> 그리고 경기대에서 나온 <한국문학연구>
책에 자세한 기록이 있습니다.
농다리(籠橋)의 설화(說話)
옛날 굴티 임씨네 집안에서 아들, 딸 남매를 두었다. 둘 다 훌륭한 장사라서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아들(임연장군)은 굽 높은 나무께를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로 갔다 오기로 하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였다. 딸이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놓는다.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는데 딸은 언간이 다 되어 간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들을 살릴 묘책을 냈다. 딸에게 먹을 것(뜨거운 팥죽 등)을 해다 주며 일을 늦추게 하였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왔다. 화가 난 딸은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다. 아직가지도 그 돌이 그대로 박혀있다. 약속대로 딸은 죽게 되었다. 그리고 딸이 마지막 한 칸(또는 두 칸, 세 칸 등)을 놓지 못해서 나머지 한 칸은 일반인이 놓았다. 역사적으로 여장수가 논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일반인이 논 다리는 장마가 지면 떠내려 간다. 농다리 건너 살고개에 장수발자국, 말 발자국이 남아 있다. 자료사용의 편리성을 위하여 줄거리를 만들었다. 화자의 어투나 문맥의 뉘앙스를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하였다.한사람란테서 두번이상 체록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자료1) 이약우
진천읍을 지나가면 농교가 있는데, 그 전설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상산 임시 아들, 딸이 아주 장사더라. 딸은 다리놓기 내기를 하고 아들은 굽 높은 나무께 신발을 신고 서울갔다 오기로 하고 여기에 지면 서로 죽이기로 했다. 딸이 다리를 다 해놓고 한 칸 남았는데, 아들 올 기미가 없자 어머니가 아침을 해 갖고 자꾸 딸더러 먹으라 해서 딸이 먹는 동안 아들이 돌아와서 마지막 한 칸을 못 놓았다. 전설에 의하면 이 한 칸이 장마에 떠 내려가면 굴테 임씨네는 살지 말라 한다. 기록에 의하면 상산 임시가 조선에 들어와서 벼슬을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설은 여기가 삼남대로(충청, 경상, 전라)가 되서 요충지라 좋은 다리를 놓은 것이라는 것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다섯 칸인가 여섯 칸인가 떠내려간 것을 군에서 보수했다.
(자료2)최?
아들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고, 여동생은 벼락바위를 쌓기로 했다. 벼락바위 밑에 샘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 명주실이 10꾸리가 들어가도 땅에 안 닿는다. 그런데 암만해도 벼락바위를 먼저 쌓겠드라. 엄마가 명주실 10꾸리를 가져와 딸더러 먼저 재보고 쌓거라 하였다. 딸이 명주실을 10꾸리나 풀어서 재느랴고 오빠한테 졌다. 농다리를 먼저 쌓았다. 동생이 벼락자위에서 빠져 죽었다.
(자료3) 최기호
옛날에 굴테 임씨네 집안에서 아들(임연장군), 딸 남매를 낳았다. 딸은 아들보다 동생인데 둘 다 장사이다. 나라의 충신을 할려면 인재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둘 다 인재이다. 그래서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여동생은 다리 놓기로 하고 오빠는 굽 한자되는 나무께를 신고 서울가서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오는 것이다. 오빠가 먼저 오면 오빠손에 동생이 죽고, 동생이 먼저 다리를 놓으면 동생 손에 오빠가 죽기로 했다. 그래 인제 딸이 혼자 다리를 놓는데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빨을 만들었따.다리빨을 만들고는 덮개를 얹어 놓을 참이었다. 근데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까 딸이 웬간히 다놔간다. 아들을 죽이겠따. 그래서 집에서 콩을 볶아 싸 가지고 가서는 딸에게 "오빠가 올려면 멀었으니 이거 먹고 해라"하였다. 어머니 말 듣고서 콩을 줏어 먹다보니 오빠가 벌써 내려왔다. 오빠가 슬리했으니 동생이 오빠 손에 죽었다. 여장수가 다리를 완성 못했는데,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놓았다. 그래서 장마가지면 여장수가 논 선창다리는 안 무너져도 다른 사람들이 논 선창다리는 무너지곤 했다.
(자료4) 임원섭
옛날에 임연장군과 누이는 부모님 밑에서 잘 크고 있었다. 그런데 둘 다 훌륭한 장사라서 서로 뭔가 시샘하는 맘이 있었다. 그래서 내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서로 내기하기를 아들(임연장군)은 농다리를 놓고, 딸(임연의 누이)은 보를 막았다가 따 놓기로 한다. 물이 확 나가서 다리 위로 너플 넘어가면 딸이 이기고 다리 밑으로 물이 빠지면 아들이 이기기로 했다. 이런걸 하는데 그 부부가 가만히 보니 아들이 다리를 놨는데 딸이 위로 가서 물을 막고 나서는 터놓기도 하고 있다. 그런데 부부가 볼 때에 그것이 재미없었다. 저놈들이 뭔가 성질이 있고 훌륭한 사람들이니까 죽고 사는 내기를 하는 것이지 장난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이거 안되겠다 해서 그 봇물이 충분히 다리를 차고 나갈 건데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그걸 못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했냐면 '저기서 나오는 물이 얼마나 오니까 얼마큼 돋궈야 된다. 그대로 하면 다리 위로 넘기가 쉽다'하고 아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 봇물이 다리 밑으로 빠져나가게 되었다. 부부가 아들을 살린 것이다. 딸은 살려 봤자 출가외인이지만 아들을 죽이면 후손이 없기 때문이다.
(자료5) 홍길순
옛날에 임연장군의 아들, 딸 남매가 있었는데 둘 다 장사이다. 여장수가 이기나 내기를 하게 되었는데 지는 살마은 죽는다. 두 장수가 양쪽 겨들랑이에 돌을 끼고와서 농다리 한 칸 한칸 놓는다. 그런데 딸은 기운이 세서 잘하는데 아들은 힘이 조금 부족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딸에게는 찰밥을 해주고 아들에겐 콩을 볶아 주었다. 결국 딸이 세 칸인가 뭐 몇 칸을 덜 놔서 지게 되었다. 콩이야 입에다 털어 넣으면 그만이지만 찰밥을 먹다 보면 끈끈해서 손가락에 자꾸 묻게 된다. 딸이 물을 축여 먹을 줄 알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손가락에 묻은 찰밥을 그냥 뜯어 먹다 보니 지게 되었다.
(자료6) 임상직
이 농다리는 임조의 아들(임연장군), 딸 남매가 하루저녁에 놨다는 전설이 있다. 남매가 서로 내기하기를 딸은 돌을 들어다 다리를 놓고 오빠는 나무께를 신고 서울을 갔다 오기로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려고 묘책을 냈다. 팥죽을 끓여 놓고 그 뜨거운 죽을 딸에게 자꾸 먹으라고 해가지고 지연을 시켰다. 그래가지고 오빠가 먼저 왔다. 약속을 이행하기 때문에 딸은 죽고 아들은 살았다. 그리고 달이 마지막으로 다 놀려고 했던 돌이 현재 구곡리 165번지에 남아 있다.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가던 두개의 돌이 숭모비 있는데에 박혀 있다.
(자료7) 임필수
옛날 한 집안에 여장군, 남장군(임연) 남매가 있었다. 그런데 한 집안에 장군이 둘이면은 수호를 못한다는 옛말이 있었다. 그래서 그 어머님께서 명령을 하셨다. 임연장군은 다리를 놓게 하고 여장군은 초평면 화산리에 보를 막게 하였다. 그래서 먼저 놓은 사람이 살고 나중 놓은 사람이 죽기로 언약이 되어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어머님께서 가보니까 딸이 먼저 놓게 되어있어 가지고 그 아마 무슨 수단방법을 쓴 것 같다. 아마 밥을 먹여가지고 딸이 늦도록 해서, 임연장군이 다리를 먼저 놓게 되었다. 그래서 그딸은 언약이 있기 때문에 자살을 하고 임연장군은 살게 되었다. 살고개라고 있는데 거기에 말자꾸가 있다. 유래를 들으면 장군이 타고 가는 그 말도 돌막에 자꾸를 하게끔 한 거 같다.
(자료8)임상준
옛날 어른들께 들은 풍월이다. 옛날 한 가정에 아들(임연장군), 딸이 있었는데 둘이 장사이다. 옛날에 국법이 한 가정에 장사를 둘이 나면 장수 하나는 귀양을 보내던가 없애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어떻게 사형을 시키든지 귀양을 보낼수 없으니까 내기를 하게 되었다. 지는 사람이 귀양을 가기로. 그래서 여장수는 농다리를 놓고 남장수는 나무께를 신고 한양을 갔다 오기로 하였다. 어머니가 가만히보니 여장수가 이길 듯하였다. 그러니까 대추찰밥을 해 놓고선, 딸에게 시장한대 점심을 먹고 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대추찰밥을 먹고 나서 양쪽 겨드랑이에 돌을 끼고 나가는데 남장군(임연장군)이 도착했다. 아차 내가 졌구나 하구선 동네 앞에 나가다가 양쪽에다가 돌을 콱 베기는 순간 돌이 박혀서 서 있다.
(자료9) 곽금순
시할아버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이다. 옛날 한 야반이 아들, 딸 쌍둥이를 낳았다. 둘이 다 장사라서 어떤 한사람을 죽이기 아까웠다. 그래서 서로 내기를 하였다. 딸은 치마로 돌을 날라다가 그 바윗덩이를 이;어 농다리를 놓기로 하고 아들은 굽 높은 나무께를 신고 식전에 서울을 갔다 오는 내기를 하였다. 어머니가 보니 딸은 언간히 다 놔가는데 아들은 오는지 안오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뜨거운 죽을 써다 놓고선 딸더러 '아직 아들이 올려면 멀었으니 이거 먹고 놔라' 하였다. 아들이 오빠인지 동생인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먹다 보니 아들이 벌써 왔다. 그래서 그 딸이 자살을 했는데 구곡리 뒷산에 산소를 모셨다. 그리고 아들은 그뒤로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는데, 나중에 한 번 공중에서 편지가 왔다. 자기 부모를 찾을려고 편지를 보냈는데 부모가 우리 집엔 그런 사람 없다고 했다. 만약 자기 아들이라 그랬으면 찾는 건데 찾질 못하고 소식도 모르게 되었다.
(자료10) 정봉철
옛날 어떤 사람이 여장수, 남장수를 낳는데 두 장수가 서로 내기를 하였다. 딸은 농다리를 놓고 아들(임연장군)은 나무께를 신고 서울을 갔다 오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을 이기게 할려고 딸에게 팥죽을써다 주며 이거 먹고해라 먹고해라 그랬다. 그래서 달이 먹는 동안에 아들이 왔다. 아들이 이기고 딸이 죽게 되었다. 그러다가 몇 년후에 어떤 사람이 와서 아들한테서 편지가 왔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들이 우리는 아들 없다고 안 받고서는 금방 내다보니 그 사람이 간 곳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자료11) 우용분
옛날에 여자, 남자 남매를 뒀는데 그 남매가 다 장수다. 아들은 말을 타고 서울을 갔다 오고 딸은 치마로 돌을 날라다가 농다리를 놓기로 했다. 그런데 딸이 이길 듯 하였다. 그러니까 엄마가 팥죽을쒀서 딸에게 먹고 하라고 했다. 막 이런 바람에 먹고 하다보니 아들이 벌써 왔다. 아들이 이겼으므로 달이 죽었다. 그리고 장수발자국이 아직 남아 있다.
(자료12) 신중희
어머니가 남매를 낳았는데 둘 다 장사이다. 누이가 남동생(임연장군)보다 더 힘이 세서 누이가 언젠가는 동생을 죽일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고 싶었는지 내기를 하나 하라고 했다. 남송앤은 다리를 놓고 누이는 서울을 걸어서 갔다 오는 것이다. 결국은 여자가 먼저 갔다 왔는데 어머니가 거짓말을 했다. 아들이 다리를 덜 놨는데 다 놨다고 해서 딸이 죽었다(자살했다.) 이 농다리는 전설에 의하면 24시간만에 놨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딸에게 다 ?J따고 거짓말을하자 아들은 들고 오던 두 개의 돌을 집어 내던졌다. 그 두 개의 돌이 아직도 서 있다.
(자료13) 임의섭
옛날 국법에 한 집안에 장수가 둘이 나면 하나를 죽여야 했다. 그런데 한 집안에 아들(임연장군)하고 딸하고 장수가 둘이 나왓다. 부모님이 딸 죽이기도 아깝고 아들 죽이기도 아까웠다. 그래서 니네끼리 내기해서 지는 사람은 죽인다고 하였다. 옛날엔 시계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시계였는데 딸은 나무께를 신고 한시간에 서울을 갔다 오고 아들은 한 시간에 돌을 주서다 농다리를 놓기로 내기를 했따.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하니 아들이 죽으면 자손이 끊어지니 같은 값이면 딸을 죽이겠다는 맘을 먹었다. 그래서 딸을 불러 흔 죽을 먹였다. 그 흔죽 먹는시간을 이용해서 임연장군은 열심히 농다리를 놓았다. 임연장군이 다리를 다 놓고 먼저 방에 들어와 앉았는데 딸이 나무께를 신고 들어온다. 옛날 국법에 한 집에 장사가 둘 나면 하나를 죽여야 되기 때문에 나라에서 장수 하나를 달라 하니, 부모네가 딸을 주었다. 그래서 딸의 목을 쳤다. 딸은 동갑산에 묻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돌 두개가 세워져 있다. 그것은 임연 할아버지가 농다리를 다 놓고서 두 개가 남으니까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가서 거기에 놨다고 한다. 그 한쪽 돌에 임연장군이 손가락으로 '구산정'이라고 새겨 놓았다.
(자료14) 최병학
옛날에 남매(임연장군과 그의 누이)가 있었다. 여자가 누이동생인지 누나인지 그건 자세히 모른다. 남매가 서로 힘겨르기를 한다. 둘이서 계약하고 서로 동업을 해서 농다리를 놓기로 햇다. 그런데 여자의 머리가 영리하고 센스가 빨라 다리를 먼저 놓았다. 임연장군이 큰 돌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오다 보니까 여자가 다리를 벌써 다 놨다. 그래서 그 돌을 그냥 거기 놓은 것이다. 녹두서리라는데 낚시터 마냥 시방 거기 있다. 여자에게 진 임연장군은 고려말기 쫓겨 다녔다. 원래 힘이 세고 인격이 잘났으니 나라를 한번 정복해 보자는 심리가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반약자 같았다.
(자료15) 조수곡
옛날에 남매가 서로 내기를 하였다. 둘 다 장수인데 임장수는 놓기를 하고 임장수의 여동생은 굽나무께를 신고서 서울을 갔다 오기로 하였다. 그런데 동생이 이겼다. 농다리가 놓기가 어려운 일이다. 오빠가 한 칸을 못했다. 임장수가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오던 돌을 이리 중리로 하나 양짓마을로 하나 세워 놨다. 그리고 임장수가 논 농다리를 건너 가면 말발자국, 장수발자국이 있다. 장수가 말을 타고 올라가는데 돌에도 발자국이 생긴다. 옛날에 장수가 날려면 열 다섯 달만에 낳는다. 열다섯 달만에 나며 엿해산을 하는 건데 그 애기는 산으로 올라가 장수 노릇을 한다.
(자료16) 임병학
옛날 어느 집에 힘이 장사인 아들(임연장군)과 딸이 있었다. 남매가 서로 힘을 겨루는데 어머니로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둘 다 훌륭한 장사이기 때문에 남매가 서로 내기를 하는데 올아버지는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을 갔다 오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약속을 했다. 어머니가 보니 아들은 안 오는데 딸이 농다리를 다 놓아 간다. 그래서 딸 한테 먹을 것을 해다 주며 일을 늦추게 하였다. 농다리 세칸을 남겨 놓고는 먹다 보니까 올아버지가 송아지를 끌고 왔다. 결국 딸이 실패했다. 옛날 장사들이라고하면은 서로 힘겨루기를 해서 목베기 내기를 하거나 아니면 진사람이 이긴 사람의 부하가 되어 그가 하라는 대로 하는 수 박에 없었다. 그러니까 아마 딸을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농다리 세칸이란 게 큰 장마만 지면 자꾸 내려 앉는다. 여장수가 다 못 놔갔고 다른 사람들이 놨기 때문에 내려진다 한다.
(자료17) 연옥희
굴테 농다리 이야기다 아들하고 딸 남매가 있었다. 어머니가 남매에게 농다리 놓는 내기를 시켰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에게만 자꾸 먹을 걸 해다 주며 니가 이기라고 하였다. 딸은 기운이 없었다. 그랬어도 결국은 딸이 이겼다. 죽고 사는 내기를 한 것이었는데 딸이 이겼으니 아들을 죽여야만 한다. 그런데 아들을 죽일 수가 없으니 못죽이고 그냥 거시기를 했다.
(자료18) 조부길
진천이 상산댁이라는데 그 상산 임씨 문중에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 둘다 장사이다. 둘이서 함께 농다리를 놓았다. 아들을 들어 나르고 딸은 여 나르고 해서 다리를 놓는데 마지막으로 아들이 다 놨다. 여자가 이고 오다가 다리를 다 놨다고 하니까 큰 농짝같은 바위를 거기다 내려놨다. 꽉 박고 나서 거기다 '구산동'이라고 글씨를 썼다. 그래서 그분들이 나이 많이 먹고 장사 명인 소리 듣다가 죽었다. 그래서 상산 임씨네를 양반이라고 한다. 떳떳 상자, 뫼 산자, 진천이 상산댁인데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자료19) 양인석
옛날굴테 임씨네 집안에서 아들, 딸 남매를 낳았다. 둘 다 장수인데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이들은 나무깨를 신고 목매기를 끌고 서울을 왔다 갔다 오고 딸은 다리를 놓기로 했다. 딸이 장사라 큰 돌을 양짝에다가 하나씩 져서 나른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딸이 양짝만 놓으면 다 된다. 그래서 딸을 불러 "이것 좀 먹고 해라" 하였다. 배가 고파도 뜨거우니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아들이 나무께를 신고 들어온다. 아들이 살고 딸은 죽었다. 그 농다리는 장마가 져도 안 떠내려 간다.
(자료20)윤용달
농다리가 위치한 곳의 현주소가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다. 그 내는 초평면과 문백면 사이다. 그런데 그 굴테(구곡리)마을에 삼모자가 살았다. 아버지는 안 계신다. 셋이 사는데, 아들(임연장군)과 딸이 모두 장사이다. 둘다 다 장사라서 어머니가 둘중에 하나를 제거할 방도를 찾았다. 어머니가 하는 소리가 "애 니들 그러지 말고 둘이 아웅당우 싸울 것이 없으니 내기를 하나 시킬 테니까 내기를 한 번 해라" 한다. 아들은 송아지를 끌고서 한양까지 갔다 오는 걸로 하고 딸애는 농다리를 놓기로 했다. 그렇게 시합이 되서, 딸은 다리를 다 놔 가는데 아들은 올 기색이 안 보인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큰 일 났다. 아들을 죽이게 생겼다. 어머니가 인제 묘책을 냈다. 옛날에는 가난했으니까 팥죽이라 하면 제일 좋은 것이다. 팥죽을 뜨겁게 해서 딸한테 갖다 주었다. " 애 쉬어서 해라, 그렇게 안해도 느 도생은 말야 오덜 기디모 없고 그러니까 말야 먹고서 천천히 해라"라고 한다. 그래서 그 딸이 그걸 먹는데 뜨거워서 얼른 먹을 수가 없어서 호호거리며 먹다 보니 동생이 들이 닥쳤다. 스승패는 역시 동생이 이겼다는 결론이 나온다. 누이가 다리 한 칸을 못했다. 그러니까 누이가 죽을 판이니까 치마에 있던 돌을 집어 던져 가지고 그 밑에 큰 돌이 그대로 박혔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 밑에 듬붕이 무지무지 깊었었다. 누이가 졌으므로 누이는 임연장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다. 전해져 오는 농다리 내력을 보면 장수가 논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우리가 논 것은 전부 떠내려 간다. 우리가 봐도 딴 덴 떠내려가도 장수가 논 데는 안 떠내려 간다. 사람이 놨지만 특이한 사람이 놨다는건 틀림없는 애기다.
(자료21) 최경의
예전에 굴테 동네 어느 집에 남매(임연장군과 그의 누이)가 있었다. 둘이 다 장산데 누이하고 남동생하고 서로 목베는 내기를 하였다. 누이가 동생보고 " 서울 갓다오라 그래구 나는 여기 다리를 놀텅게 말여"하고 말하였다. 좌우간 몇 시 몇 분 까지 정해서 오라 그랫다. 그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그 딸은 벌써 다 져다 해서 놓고이고 댕기고 그래서 우에 따가리 하나만 얹어 놓으면 되었다. 그런데 아들은 어딜오느지 비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야! 니 동생은 아직 멀었슨께 너는 아침을 먹구서 여더라도 말이지 다 놨으니까 니기 이긴다, 애." 그러신다. 말하자면 아들을 살려야 되는데 아들이 올려면 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이 못 이기는척 "그럼 저는 밥을 먹고 해야겠시오."하고 손발을 닦고 방으로 들어와 조반을 차려서 먹는다. 먹고 있는데 나무께 소리가 난다. 져벅. 져벅. 동생이 온 것이다. 그 둘이 인제 농다리 잇는데로 갔다. 밑에는 놨지만 우의 뚜껑은 안 얹어 놔서 누이가 거기를 뛰어서 건너왔다. 동생이 "아! 내가 이겼다." 그러니까 누이가 "내가 졌어."한다. 내기한 게 있으니까 누이가 "너 나 목칠꺼냐?" 그랬더니 "으댕이 쳐야지"한다. 누이가 큰 단도 칼을 주면서 "너 내 목 쳐라"하니 동생이 목을 쳤다 한다. 그 농다리 건너 고개가 살고개인데 장사 자욱이 남아 있다.
●'선바위' 전설을 중심으로
(자료1) 임상직
여장수가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가던 두 개의 돌이다. 이 두 개의 돌만 놓으면 되는 건데 아들(임연)이 먼저 도착했다.
(자료2) 임필수
무게로 말하면 100kg이상 될 것 같다. 장수가 양쪽 겨드랑이로 끼고 와서 한 갈래에 하나씩 세웠다. 이 동네 갈림길이 두 갤라였다. 한족 돌에'구산정'이라고 씌여 있는데 고려 초 임장군이 하신 일이다.
(자료3) 임상준
여장수가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나가는데 임연 장군이 도착했다. '아차, 내가 졌구나'하구선 돌을 콱 베기는 순간, 돌이 박혀서 서 있다.
(자료4) 신중희
남동생(임연)은 다리를 놓고 여자는 서울 갔다 오기로 했다. 여자가 먼저 도착했다. 어머니가 딸에게 다 놨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아들이 그 돌을 집어내려 버려서 세워진 것이다.
(자료5) 임의섭
아들(임연)은 농다리를 놓고 딸은 서울을 갔다 오기로 내기했다. 아들이 이겼다. 마을 입구에 돌 두개가 세워져 있다. 그것은 아들(임연)이 농다리 다 놓고서 두 개 가 남으니까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가서 거기에 ?J다고 한다. 그 한쪽 돌에 임연이 손가락으로 '구산정'이라고 새겨 놓았다.
(자료6) 조수곡
아들(임연)이 농다리를 놓고 딸이 서울을 갔다 오기 내기를 했다. 남장수가 양쪽 겨드랑이에 돌을 껴다가 한 마을에 하나씩 세웠다.
(자료7) 조부길
상산 임씨 문중의 어느 아들과 딸이다. 서로 도와 가며 농다리를 놓았다. 아들은 들어 나르고 여자는 여 날랐다. 여자가 이고 오는데 남자가 다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동네 밖에다가 큰 농짝같은 바위를 세웠다. 꽉 박고 나서 거기다'구산정'이라고 썼다.
(자료8) 임양호
아들(신천영)은 성을 쌓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했다. 여자가 치마에 돌을 싸가지고 오는데 성을 다 쌓았다고 한다. 그래서 '에이구 인져 죽을거니께 한 칸 더 놓으면 뭘 하느냐'면서 굴테 동네 앞에다가 콱 세웠다.
●'녹두서리'전설을 중심으로
(자료1)최병학
농다리 하나를 아들(임연)과 딸이 서로 계약하고 동업을 해서 놓기로 했다.그런데 여자가 센스가 빨라서 먼저 다 놓았다. 임연장군은 큰돌을 그냥 내려놓았다. 그것을 녹두서리라고도 하는데 낚시터 마냥 있다.
●'웅덩이' 전설을 중심으로
(자료1) 윤용락
누이는 농다리를 놓기로 하고 남동생(임연)은 서울로 갔다 오기로 내기했다. 남동생이 먼저 갔다 왔다. 그래서 여장수가 치마에 있던 돌을 집어 내던져 가지고 농다리 밑으로 큰돌이 그대로 박혔다. 집어 내던진 돌로 인해 생긴 웅덩이고 깊이가 깊다.
●'다리칸' 전설을 중심으로
(자료1) 이약우
아들은 서울 갔다 오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내기했다. 아들이 먼저 와서 딸은 마지막 한 칸을 못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 한 칸이 장마에 떠내려가면 굴티 임씨네는 살지 말라 한다. 기록에 의하면 상산임씨가 조선에 들어와서 벼슬을 하지 못했다.
(자료2) 최기호
아들(임연)은 서울 갔다 오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내기했따. 아들이 먼저 와서 마지막 한 칸을 못했다. 그 한 칸은 다른 사람이 놓았는데 장마가 지면 무너진다. 장수가 논 선창다리는 안 무너져도 일반인이 논 다리는 자꾸 무너진다.
(자료3) 임원석
우리보다30살, 40살 넘은 할아버지들이 농다리 칸이 떨어지면 난리가 난다고 했다. 잡오년에 한 칸 떨어졌다. 시방서부터 99해 정도 될까? 우리 어머니께서 자오생인데 99살이다. 그 해 한 칸이 떨어?병쨉? 동학난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6.25때도 다리 세 칸이 떨어졌다.
(자료4) 홍길순
임연장군의 아들, 딸 남매가 농다리 놓기를 시합했다. 어머니가 아들에겐 콩을 볶아 주고 딸에겐 찰밥을 해 주었다. 손가락에 묻은 찰밥을 띠어 먹다가 여자가 지게 되었다. 세 칸인가 뭐 몇칸을 덜 놔서 지게 되었다.
(자료5) 임상직
아들(임연)은 서울 갔다 오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했다. 아들이 먼저 와서 딸은 나머지 두 개를 못 놓았다. 이 농다리는 이상하게도 큰 변란이 나든지 동네의 변고가 났을 때는 농다리가 한 두 칸 식 유실이 됩니다. 그 원인은 모르겠스빈다. 6.25동란 때, 여름엔 괜찮았는데 1.4후퇴 땐 다리가 세 칸이 떳습니다. 그래서 왕래하기가 곤란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도 성에로 인해 한 서너 칸 떳어요. 의병난리(동학) 때도 다리가 떳습니다.
(자료6) 임팔수
1.4후퇴 때, 두 칸인가 세 칸인가 떨어졌습니다. 그 직후엔 6.25가 났습니다.
(자료7) 신중희
-조사자 : 다릿돌이 전설 상으로 언제 떨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며느리 이영애 : 글쎄 자세한 것 모르지만 애기로 임진왜란 때 떨어지고 6.25사변때 떨어지고 그랬다는데 나 시집오고서는 그러니까 79년도 그 여름장마에 다섯 칸이 떠내려 갔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리가 떨어지면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난다고 걱정을 했는데 그 해 가을 그말이 맞아선지 뭔지 몰라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셨어요. 큰 양반 다섯 분이-. 아! 농다리의 신빙성이 진짜 있구나 느겼죠.
-조사자 : 할아버님, 6.25때 다리칸 떠내려 가는 것 보셧어요.
-신중희 : 그 때 세 칸인가 두 칸 떨어졌지. 섣달에 성에로 인해 떨어졌어 그 이듬해 6.25가 난거야 그래서 나무를 대고 건너 다녔어.
(자료8) 조수곡
아들은 농다리를 놓고 딸은 서울 갔다 오기로 내기했다. 그런데 딸이 이겼다. 아들(임연)이 한 칸을 못했다.
(자료9) 임양호
아들(신천영)은 성을 쌓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했다. 아들이 이겼다. 딸이 한칸을 못했다.
(자료10) 윤용락
아들(임연)은 서울 갔다 오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했다. 아들이 이겼다. 딸이 한 칸을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한 칸은 일반인이 놓았다. 역사적으로 장수가 논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우리가 논 다리는 장마가 지면 다 떠내려 간다.
(자료11) 최경의
아들(임연)은 서울을 갔다 오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였다. 임장군이 이겼다. 딸이 위에 뚜껑 하나만 언지면 되는 거였다.
(동국대학교 학술조사팀)
(자 료)
●진천읍을 지나가면 농교가 있는데 그 전설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상산 임씨 아들 딸이 아주 장사더라. 딸은 다리놓기 내기를 하고 아들은 굽 높은 나무께 신을 신고 서울 갔다 오기로 하고 여기에 지면 서로 죽이기로 했다. 딸이 다리를 다해놓고 한 칸 남았는데, 아들 올 기미가 없자 어머니가 아침을 해갖고 자꾸 딸에게 먹으라 해서 딸이 먹는 동안 아들이 돌아와서 마지막 한 칸을 못놓았다. 전설에 의하면 이 한 칸이 장마에 떠내려가면 굴티 임씨네는 살지 말라한다. 기록에 의하면 상산 임씨가 조선에 들어와서 벼슬을 하지 못했다. 두번째 설은 여기가 삼남대로(충청, 경상, 전라)가 되서 요충지라 좋은 다리를 놓은 것이라는 것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다섯칸인가 여섯칸 떠내려간 것을 군에서 보수했다. (이약우)
●이 농다리는 굴테 상산임씨의 말야 임씨, 그 양반이 놨다고 그라는기여, 그렇게 했는데, 그래서 그 어머니만 살았지. 아버지는 말야 없거든. 그래, 남매를 키웠는데 다 남매가 잘났어. 그래서 그 둘이 앉아서 내기를 하자는 기여, "그래, 무슨 내기를 하자." 그러니께 "이 농다리는 너가 놓고 나는 말야 서울가서 한 자 되는 나무께를 신고 목메기를 끌고 와서 니가 다리를 먼저 놓으면은 내려오기전에 놓으면 재가 죽고 내가 끌고 오기전에 끌고 와서 말야 니가 못 다 놓면 니가 죽는다, 내 손에." "그래, 오빠 그럭해요" 드래 이제 서울을 올라가서 인저 끌고 오고 여기는 다리를 놓고 있었는데 그 혼자 놓는기여 혼저. 돌을 갖다 주서다가서 놓고 치마다 싸고 놓고 이렇게 해서 인져 자꾸인져 이 다리뻘을 말야 맨들어야 되잖어. 돌을 다리뻘을 만들었어. 그래서 다리뻘을 맨들구서 하는데 자꾸 하는데 일하는데, 어머니가 갔다와서는 가만니께 딸이 웬간히 나가, 가만니께 아들을 죽이겠어. 아이구! 내가 아들을 살려야지 딸을 죽이고 그러니께 내가 콩을 볶아가져가서 이걸 맥이면서 일을 중지를 시켰다구 그래집에서 콩을 볶아가져가서 싸가지고가서 " 너 이거 콩을 먹구서말야 다리를 놔라. 니 오빠는 내려올라면 아죽 멀었다. 그러니까 너는 아무케도 니 오빠가 늦게 이거 먹고 해치자. 배고픈데 이거 먹고 해라, 먹고해요." 어머니가 하소연하니께 말여, 아! 그걸 먹다보니께 오빠가 내려왔다 이거여, 오빠가 벌써 인저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서 내려 왓는데, 그래서 딸이 날여 못 놓지 않았어, 다아! 그래, "너는 내손에 이제 약속을 했으니 죽어야 되지 않느냐." 오빠가 동생을 죽였다. 인저, 원판 인재들이니까 말여. 그래서 어머니가 아들을 말여 더 생각하지, 딸을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꺼정도 없다, 이거여, (여기까지 구연하셧는데 내가 녹음이 안되는 줄 알고 녹음기를 껏다가 다시 한번 전설 이야기를 부탁드렸다.) 글쎄 임씨네 상산임씬데요. 상산임씨. 옛날 국호가 진천이 상산이요, 상산임씨넨데. 참 두 분을 낳는데 남매 낳다 그거야. 딸은 아들보담 동생인데 말여. 그래서 그때는 인재가나면 말여 이 나라의 충신을 할려면 말여 충신을 할려면 말여 언제든지 사람이 말여 한 사람이 말여. 둘이 인재가 났다 이거여. 그 둘이 남매가 형제간인데 그래 하나가 있어야지 나라에 가 충신을 좀 해야되는데 둘이니까 안돼서 하는 소리가 뭔냐 그러면 둘이 사생결단을 했다는 기여 죽고사는 내기를, 그래서 그래 그럭하자구. "그러면 오빠는 서울 가서 목매기 송아지를 굽 한자 되는 나무께를 신고 목매기를 꿀고 오라 이거여. 나는 여기서 농다리를 치마에다 돌을 싸다해서 농다리를 놀텅게. 오빠가 말여 미처 이거 다 놓기 전에 오면 오빠가 죽고...." 그래 두 남매가 애기하는 거거든. "내 손에 죽고 내가 이 다리를 미처 못 놓면 말야 내가 죽고." 그래 그럭하자구 애기한겨. 그래서 그래 인저 오빠는 서울 가서 한자 되는 나무께를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내려오고 또 동생은 여기서 치마로 싸다가서는 말여 조약돌을 이렇게 났거든 조약돌을 났는데 덮개를 언져놓거든. 가만히 보니께는 어머니가 보니까 말여, 아들을 더 생각하지 딸은 생각안햐. 아들이 죽게 되거든.아, 웬간히 다 나간다 이거여. 웬간히 다 다가는데 아 그래 어머니가 보고선 콩을 볶아가지고서는 싸가지고가서는 딸보러 "얘 니 오빠는 올려면 아즉 멀었다, 너는 웬간히 다 됐으니깨 내려올 테니까 너는 이거 먹구 해라 해라."
그래서 어머니 말 듣고서 콩을 주서 먹다 보니께 아 오빠는 벌써 내려왔다 이거여. 그래서 거기가 이져 있어서 오빠는 살아가지고 임장군이 인제 살아가지고서는 인저 승히해가지구서는 그 다리가 문화재로 잽혔어요. 문화재로 잡혔는데 그래서 그 때 다 못다논 걸 어떻게 말야 개인이 놓다해서 어떻게 채우는가 해서버 그 때 논선창다리는 안 무너져도 그후에 다른 사람이 한 것만은 선창다리가 다 무너져요.요 일정시대도 야 그걸 장마지면 무너지고 요렇게 물을 넘어가게 했는데 그 당시 다른 사람이 한 칸을 놨는데 그 선창이 말야 장마지면 빠져 돌은. 굴테 말야 임씨네들이 동네사람들이 굴테 앞인데 말야 그걸 보청을 해 놓고서 보수를 해 놓고서 보수를 해 놓고 이렇게 했는데 그 전에는 진천에 대해서 문화재로 지금꺼정도 진천문화재서 말여 와서 말여 석축을 한단다 하는데 그래서 궂테앞에 거기 그 다리로 넘어지면은 그 굴테 사람이 농사거리가 많아요. 거기 수리조합을 청미수리조합을 막아놓기 때문에 농사거리가 없어 그 다리가 인져 제 옷 댕기덜 못했어요. 그래서 그 다리가 지금 말여 무형문화재로 말여 어느때 놨는지 어느 해 놨는지는 모르지만 몇 해가 됐는지 모르지만은 그 다리가 그렇게 얘기 나오는 걸 들었어요. (최기호)
●예전에 우리 시할머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뭐 내가 알아야지. 봤어야 할 말이지. 할아버지가 그러시데. 한 양반이 아들 장사 딸 장사 둘을 낳는데 고 어머니가 어떻게 할 수를 없더래요. 어머니가 어떻게 할 수를 없어서 서로 내기를 했다잖아. 딸은 치마 폭을 싸다가 돌을 싸다가 농다리 놓기를 하고 아들은 전에 왜 굽 높은 나무께가 있잖아요. 나무께를 신고 식전에 서울을 갔다 오기로 내기를 했댜아. 근데 식전에 서울을 갔다 오기 내기를 했는데 어머니가 딸은 언간히 놔가는데 그놀때가 얼마 안 남았지요. 아들은 오는지 안오는지 몰르것서서 죽을 써다 놓고선 뜨거운 죽을 써다 놓고선 아즉 오빠라는지 동생이라는지 그건 몰르고. "올 때가 아직 안 ?記릿歐? 실컨 니가 이길테니카 니가 이길꺼니까 죽 먹어라." 하다 보니께 벌써 오드라잖아. 그래서르매 그래서 인제 딸은 죽었다잖어. 저 글테 동산에 크게 저기 모신게 저거래잖아 (조사자 : 굴테 어디?) 굴테를 뭐라 그러지? (옆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 구곡리?) 구곡리라잖어. 뒷산에 장살띵 모셧다잖어 산소를. 그러구서는 아들은 그러케 하고서 어디를 간 것도 므로그 나중에 자기 부모한테로 저걸 하니께 우린 그런 사람 없다고 해서르매 뭐 저거도 몰른다잖어 소식도. 그런 사실로만 들었지. 난 몰라 못햐. (조사자 : 편지과 왔는데 부모님의 어떻게?) 부모님이 그 자기네 집에 온 편지를 우리 집은 그런 사람 없다고 그렇게 했다잖아. 나중에 저걸하니까 그장사러다잖아. (조사자 : 만약에 자기 아들이라 그랬으면 그 아들을 찾을 수 있었을 건데.) 그럼, 욕심이 없는 탓이지 엄마가, (옆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 아들이 죽었어?) 딸이 죽었지. (조사자 : 아들은 이겼는데 그 뒤에 행방불명 된거죠?)행방불명이 되서 나중에 공중에서 자기 부모를 찾겠다고 ?f더라잖아 편지가. 난 그럼 사람 없다고 했었다잖어. (곽금순)
● 저기 진천에 말이지 진천에, 땅이 원래 지금까지도 상산댁으로 이름이 나와, 그래 그 임씨네가 수풀임자 임서방넨데 그 상산임씨로 나온다고 상산임씨라그랴. 그래 진천이 상산댁이라는데 그 임씨네 문중에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어. 근데 다 그장사야 아주. 그래 남매 그 농다리 다리를 놓게 됐다고 놨는데 여자가 이고 오다가 다리를 다 놨다고 하니께 동네 밖에다가 ㅋ믄 농짝같은 바위를 세웠어. 거기다 내려왔어. 다왔다니께 꽉 박고나서 거기다 '구곡리'라고 이렇게 글자에다 ?㎨?. 아홉구 자 굴곡자 마을리 자라고 썼어. (조사자 : 아니 구곡리가 아니라 구산동이라 ?㎨楮?.) 어? (조사자 : 구산동) 구산동 (조사자 : 잘못 말씀하신거죠?) 맞았어. 그려 그래 그들이 다 기운 좋고 장사가 돼서 그러다 세상을 그 분들이 뜬겨. 그래서 그래 이 일년이면 일체의 공설운동장에 상산 체육대회라고 대회까지 해마다 하면서 내려오지. 충북지서 같은 데 서문이 나서 상산 잔치 같이 가서 보면 그래. 상왈 진천이 상산댁이로구나 생거진천 사거용인이 그래서 난 말이여. 살아서는 진천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댁으로 간다구, 그래서 전설의 말이 된거여 전설이. 나는 농다리라서 바밭갈고 논 갈고 그 애기라서 굴테 애긴 줄 몰랐어. (주사자 : 그러면 다시 한번 여쭤볼께요, 아들이 이겼어요? 딸이 이겼어요?) 아들하고 딸하고 둘이 뭐 죽이거나 그러지는 않았어. (조사자 : 아, 서로 사생결단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조사자 : 다리 하나를 서로...) 그려. 그러다 끝까지 나이 많고 먹고 장사 명인 소리 듣고서 죽었지 뭐 누가 이겼다고 죽이거나 그러진 않았어. (조사자 : 어머니의 개입도 없었구요?) 그런 애기는 난 못듣고 나 들은 대로가 애기한 게 고거여. 그래서 진천이 상산댁이라 상산댁. 떳떳상자 상산뫼산자 (조사자 : 그러면요, 그 아들이 딸이 구체적으로 역사적으로?) 아냐, 아 그런일도 없어. 역사적으로 내려온 인물 그런 일도 없어. 그래서 임서방네가 상산임씨야. 양반이라고 추돌지 지금까지도.
●옛날에 굴테 저 임씨넨데 아들 딸 다 장사를 난겨. 그래 아들은 서울가 목매기 끌고서 나무껜 신고 서울을 갔다오기로 하고 딸은 딸은 말하자면 다리를 놓기로 한겨. 아, 그러니께 어머니가 가만히 가서 보니까 양짝만 노면 다 되네 다리가. 그렁게 엄마가 아들 살릴려고 딸을 불른겨. 옛날 어른들 애기 역사 들은... 불러가서는 야 이리가서는 이거 먹구 하라 말이여. 뜨거우니 먹을 수가 있어? 배고퍼도. 그렁케 벌써 해가지고 나무께 신고 돌아온다 이거여. 그러니께 그 딸이 장사지. 그 큰걸 양쪽에다 하나씩 지고서는... 그래 가꾸서는 말하자면 아들을 살리고 딸이 죽었다는 거지. 그래 그 다리가 지금 역사에 있는 것이 쪼그만 돌도 장마가 져도 안떠내려 가. (조사자 : 딸이 졌는데, 딸이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 내기를 한거니까 아들을 살렸으니 딸은 죽었는지 모르지. (조사자 : 먹는거 구체적으로 어느 것 이었어요?) 점심 일테지 뭐. (조사자 : 점심 그냥?) 응 더디 먹은것을 해야겠지. 뜨거운거. 하하하! (조사자 : 할아버지께서는 이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세요?) 역사다 생각하는 거지. (조사자 : 이 이야기 어디서 들었어요?) 할머니들 한테. (양인석 할아버지)
( 경기대학교 국문과 이영옥)
●'임연(林衍) 오누이힘내기' 설화(說話) 현지연구(現地硏究)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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