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치과 관련된 역사자료 모음 Kuwait Dental Center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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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치과 관련된 역사자료 모음

자료출처 :- 조선왕조실록
자료입력 :- 2010. 08. 94
자료작성 :- 임충섭(쿠웨이트 정부 치과병원-치과기공사, 독도KOREA홍보위원, 1문화재1지킴이,)
 

성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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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2) | 중종(4) | 선조(1) | 인조(1) | 영조(1)
성종 95권, 9년(1478 무술 / 명 성화(成化) 14년) 8월 21일(경술) 3번째기사
검토관 이창신이 효자에게 벼슬을 제수하여 효행을 권면하게 하기를 청하다

○御晝講。 講《禮記》《內則》, 至 ‘子事父母, 雞初鳴, 咸盥漱。’ 上謂左右曰: “凡人子事父母, 當如是也, 何以使世人皆如是乎?”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예기(禮記)》 내칙(內則)을 강(講)하다가, ‘ 자식이 부모를 섬길 때에는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한다.’는 데에 이르러, 임금이 좌우에게 이르기를,
“ 무릇 사람의 자식으로서 부모 섬기기를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이와 같게 할 수 있겠는가?”


연산 10권, 1년(1495 을묘 / 명 홍치(弘治) 8년) 11월 26일(을사) 2번째기사
사간원이 수륙재 파할 것을 상소하다

○齊宣王不忍觳觫之牛, 孟子以爲: “擴此心則足以保四海。” 宋哲宗於宮中, 起行漱水, 必避螻蟻, 程子以爲: “充此心則足以仁天下。”
제 선왕(齊宣王)이 움츠리고 떠는 소[牛]를 차마 보지 못하였는데, 맹자(孟子)는 ‘이 마음을 확충하면 사해(四海)를 보전할 만하다.’고 하였으며, 송 철종(宋哲宗)은 궁중에서 걸어 다니며 양치질한 물을 버리되, 반드시 하찮은 벌레[螺蟻]를 피하니, 정자(程子)가 ‘이 마음을 확충하면 천하를 인애(仁愛)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연산 61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2월 28일(무인) 3번째기사
봉상시 종 송동을 취홍원으로 차정하여 양치질하는 나무를 만들어 바치게 하다

○傳曰: “奉常寺奴松同, 差送聚紅院, 造供養齒木。”
전교하기를, “봉상시(奉常寺)의 종[奴] 송동(松同)을 취홍원으로 차송하여 양치질하는 나무를 만들어 바치게 하라.” 하였다.


중종 76권, 28년(1533 계사 / 명 가정(嘉靖) 12년) 9월 8일(정미) 2번째기사
유자광의 익대 공신 녹권을 돌려주게 하다

○且來十一日宣陵親祭, 日氣漸寒, 自上致齋沐浴, 事當謹愼。 古云: ‘略加澡洗。’ 病後尤當加謹
그리고 오는 11일에는 선릉(宣陵)에 친제(親祭)해야 하는데, 날씨가 점차 추워지니 상께서는 목욕 재계하는 일에 대해 조심하고 삼가셔야 됩니다. 옛말에 ‘대략 양치질하고 손씻는다.’ 했으니 병후(病後)에는 더욱 조심하셔야 됩니다.”


중종 99권, 37년(1542 임인 / 명 가정(嘉靖) 21년) 11월 10일(병진) 2번째기사
전라도 관찰사의 광주·남원·임실의 열녀·효자 내용의 서장을 내리다

○南原居故慶尙道都事丁煥, 天性至孝, 甲申年遭父喪, 凡喪祭一從禮文, 雞初鳴, 盥洗着祭服, 入祭廳焚香, 痛哭盡哀, 又上塜, 親自執箒, 淨掃塋域, 焚香痛哭,
남원(南原) 사는 고(故) 경상도 도사(慶尙道都事) 정환(丁煥)은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습니다. 갑신년 부친상을 당했을 때 모든 상제(喪祭)를 한결같이 예문(禮文)에 따랐으니, 첫닭이 울면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나서 제복(祭服)을 입고 제청(祭廳)에 들어가서 분향(焚香)하고 슬피 통곡하였으며, 또 무덤에 올라가서 손수 비를 가지고 묘역을 깨끗이 쓸고 분향 통곡하였습니다.

중종 103권, 39년(1544 갑진 / 명 가정(嘉靖) 23년) 6월 29일(병신) 2번째기사
정원에 전교하여 충치의 치료에 필요한 약을 알아보도록 하다

○傳于政院曰: “予本有齒痛證, 而痛則落矣, 今在齒, 又痛而搖動。 此齒若落, 則飮食爲難, 齒齦亦浮, 濃汁出焉, 可能以藥治耶? 此意已敎諸藥房, 而左承旨安玹知藥理云, 與提調同議以啓。 左承旨若不來, 則承旨聞而言之, 可也。” 內醫院提調姜顯、左承旨安玹等問安, 仍啓曰: “自上本有齒痛之證, 今不知何緣而復發也。 氣之冷熱及進御亦冷物, 則皆足以復發, 請下敎。 然後議藥以啓。” 傳曰: “此非大病, 勿問安。 今觀證候, 熱氣風寒, 皆不可謂無, 不知緣某事而復發也。 大抵風寒, 則必生熱氣, 故齒動時, 齒齦亦暈而熱, 似由風寒而發也。 齒齦微浮出濃汁, 何以則可堅齒也?” 姜顯等再啓曰: “先以玉池散漱口, 次以淸胃散服之, 以牢牙散, 外塗痛齒上, 且以蓖麻子莖, 熨咬痛齒之上, 而桑枝亦可用。 但牢牙散, 入羊脛骨, 非容易可劑。” 傳曰: “牢牙散, 入羊脛骨, 則不可爲此殺羊, 而大祭亦不遠, 隨宜得之, 以劑可也。”

정원에 전교하기를,
“나에게 본디 이앓이 증세가 있는데 아픈 것은 빠졌으나, 지금 있는 이가 또 아프고 흔들린다. 이 이가 빠지면 음식을 먹기 어렵겠고 잇몸도 붓고 진물이 나오는데, 약으로 고칠 수 있는가? 이 뜻은 이미 약방(藥房)에 분부하였으나, 좌승지 안현(安玹)이 약리(藥理)를 안다 하니, 제조(提調)와 같이 의논하여 아뢰라. 좌승지가 오지 않았거든 승지가 들어서 전해 말하라.”
하매, 내의원 제조(內醫院提調) 강현(姜顯), 좌승지 안현 등이 문안하고, 이어서 아뢰기를,
“위에서는 본디 이앓이 증세가 있으나 이제 무엇 때문에 다시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기(氣)가 냉열(冷熱)하거나 진어(進御)가 또한 찬 것이면 다 다시 일어날 만하니, 하교(下敎)하소서. 그런 뒤에 약을 의논하여 아뢰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것은 큰 병이 아니니, 문안하지 말라. 이제 증후를 보면 열기와 감기가 다 없다 할 수 없다. 대저 감기에는 반드시 열기가 생기므로, 이가 움직일 때에 잇몸도 헐고 열이 나니, 감기 때문에 일어난 듯하다. 잇몸이 조금 붓고 진물이 나는데, 어떻게 하면 이를 튼튼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매, 강현 등이 다시 아뢰기를,
“먼저 옥지산(玉池散)으로 양치질한 다음에 청위산(淸胃散)을 복용하고 뇌아산(牢牙散)을 아픈 이 겉에 바르고 또 피마자(蓖麻子) 줄기를 아픈 이에 눌러 무는데 뽕나무 가지를 써도 됩니다. 다만 뇌아산에는 양의 정강이뼈를 넣으므로 쉽게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뇌아산에 양의 정강이뼈를 넣는다면 이것 때문에 양을 잡을 수 없겠으나, 대제(大祭)도 멀지 않았으니, 적당히 얻어서 짓도록 하라.”


중종 105권, 39년(1544 갑진 / 명 가정(嘉靖) 23년) 11월 9일(갑진) 4번째기사
의원 박세거·홍침·유지번이 진찰하고 증세와 처방을 말하다

○醫員朴世擧、洪沈、柳之番〔柳之蕃〕入診而出言: “朝則右手脈如前, 左手心肝脈稍數, 餘熱往來無常。 夕則左手寸關脈緊實, 尺脈微動, 外緊內虛。 右手寸脈浮實, 關脈稍疾, 尺脈微數, 心熱口渴似加。 以加入小柴胡湯, 和淸心元連進, 黑豆、竹葉煎水漱口, 葱豉湯亦進事, 啓請。 上曰: ‘前日熱極時, 用野人乾〔水〕而退熱。 幸夜半熱極, 則亦欲用焉, 預備入內可也。’”

의원 박세거·홍침·유지번이 들어가 진찰하고 나와서 말하였다.
“아침에는 오른손 맥은 전과 같고, 왼손 심간맥이 조금 빨랐으며 남은 열도 왕래가 무상했습니다. 저녁에는 왼손의 촌관맥(寸關脈)이 긴·실(緊實)하고, 척맥(尺脈)은 약하게 뛰어 밖은 긴하고 안은 허했습니다. 오른손 촌맥은 부·실(浮實)하고 관맥은 조금 빨랐으며 척맥은 약간 잦았고, 심열과 갈증은 더한 듯했습니다. 소시호탕에다 청심원(淸心元)을 섞어서 계속 드리고, 흑두(黑豆)와 죽엽(竹葉)을 달인 물로 양치질하고 총시탕(葱豉湯)도 드실 것을 아뢰니, 상이 이르시기를 ‘전일 열이 올랐을 때 야인건수(野人乾水)를 써서 열을 물리쳤다. 혹시 밤중에 열이 심하면 쓰려고 하니 미리 준비해서 들여오라.’ 하였다.”


선조 6권, 5년(1572 임신 / 명 융경(隆慶) 6년) 10월 29일(임오) 4번째기사
사헌부가 재변을 당하여 임금의 마음을 바로하고 간언을 받아들이라고 청하다

○周之文王掩骼埋胔, 死骨猶然, 況於生乎? 宋之仁宗漱水避螻蟻, 微物尙然, 況於人民乎
주 문왕(周文王)은 주인 없는 백골을 묻어주었습니다. 죽은 자에게도 인덕(仁德)을 베풀었으니, 산 사람에게야 어떠하였겠습니까. 또 송 인종(宋仁宗)은 양치질한 물도 개미들이 모인 곳을 피하여 뱉었습니다. 하찮은 미물에게도 그러했는데 더구나 사람에게이겠습니까.


인조 40권, 18년(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6월 13일(계해) 5번째기사
억울한 옥사에 대해 우부승지 김육이 건의하다

○螻蟻至微, 人君有臨漱而避者, 況此莫重人命, 豈有貴賤之別乎?” 上令該曹, 詳審以聞。
신은, 이상의 몇 사람들이 그 죄가 의심스러운데도 신리할 때에 논의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비천한 자들이어서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버러지같은 미물에 대해서도 임금은 양치질하면서 피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막중한 인명에 대해서 어찌 귀천을 구별하겠습니까.”


영조 93권, 35년(1759 기묘 / 청 건륭(乾隆) 24년) 4월 13일(계해) 2번째기사
대사간 홍종해가 ‘인’의 마음으로 정사를 펴라는 상서를 올리다

○如宋帝之潄水避蟻, 則民心所悅, 天必降祥, 六氣自無不順, 諸福自無不至矣。”
송제(宋帝)가 양치질한 물을 뱉을 때에 개미를 피한 것과 같이 하신다면 백성들이 마음으로 기뻐하고 하늘도 반드시 복을 내려 육기(六氣)14561) 가 저절로 순조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고 모든 복이 저절로 이르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이글루스 가든 - 쿠웨이트의 치과기공사 임충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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