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書에 기록된 고향 마을 오경(五更) 관련 자료 및 필자의 견해 내고향 충북 진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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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書에 기록된 고향 마을 오경동(五更洞) 관련 자료 및 필자의 견해

자료출처 :-
자료입력 :- 2008-03-23
자료작성 :- 화산리 오경동 출향인 林忠燮(1문화재 1지킴이, 독도KOREA홍보위원)
첨부파일 :-

오경마을, 금오마을

 

초평면 화산리에 저수지가 생기기전에는 크게는 사산마을과 오경마을이 있었고 더 세분하면 12개의 작은 마을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사산마을(서낭골, 빗길미, 뜨물든지, 생팔리)

오경마을(죽정내, 증산골, 삼거리, 새집동래, 가막골, 아랫말, 장자터, 삼청동래)

 

오경(五更) 마을은 제가 찾아본 자료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순조 25(1825)]발행된 常山志卷之上五更 이라는 地名이 보입니다.

 

1825년 이전 부터도, 170여 년 동안 애칭 되어 오던 마을 이름이 최근에 금오동(金烏洞) 으로 바뀌었고 마을길 이름도 금오길로 바뀌었습니다.

 

2011729일 도로명 주소 고시가 있었고 각 지자체의 도로 명을 해당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듯 주민들에게 도로 명을 지어 달라고 공지를 하였습니다. 저는 마을 이름은 금오동으로 바뀌었지만 마을 앞 길 이름은 오랫동안 애칭 되었던 오경마을 이름을 따서 오경 길로 군청에 설명을 곁들이면서 건의를 하였지만 저의 의견은 채택되지 않고 금오 길로 변경도어 영원히 오경이라는 지명은 역사 속으로 묻혀버렸습니다.

 

하지만, 2017119일 날 최근에 업데이트 한 것으로 보이는 진천군청 홈패지를 방문하여 마을 이름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니 금오동 이라는 마을 이름은 없고 오경 마을 이름에 게재되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을 이름은 금오동(金烏洞) 으로 변경 되었지만 마을 분들은 아직도 오경(五更)마을로 부르는 분들이 많이 있으며, 마을 이름을 변경 할 당시 오경 마을 里長 맡아 보셨던 분은 초평면 은암리에서 화산리로 이주해오신지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동래 里長을 맡아 보셨으며, 동래 이름을 최초로 바꾸자고 제안 하신분도 문백면 구곡리에 사시던 분이 오경마을로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신 분이 마을 역사도 잘 모르시면서 오경 마을 이름은 왜정시대에 지어진 이름으로 마을 이름이 나쁘다고 마을 분들에게 선동하셔서 1990년대 초반에 마을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Click on the pictures below to see the big picture.

常山志卷之上[순조 25년(1825년)]발행 -하단 좌측에 오경(五更) 지명이 있습니다.


史書의 기록상으로 오경마을은 忠淸道邑誌(英祖-憲宗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됨)에 수록된 常山志卷之上의 기록에 현 문백면의 전신이었던 文方面 오경리의 마을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초평면으로 병합하여 지금까지 마을 주민들에게 널리 애칭 되는 이름입니다.

최근 어떤 분이 오경 마을 이름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이름으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하며, 마을 이름이 나빠 마을에 사고가 잦다고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 이름을 바꿀 것을 제안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아마도 그분께서는 五更里에 대한 역사 기록을 못 보셨던 모양입니다.

분명한 것은 역사기록으로 처음 책자에 기록된 것이 조선조 英祖대에 기록되었으므로 오경마을 이름은 그 훨씬 이전부터도 마을 주민들에 의해 애칭 되었던 유서 깊은 이름입니다.

일반적으로 최근 일부 자료(鎭川地名誌 및 다른 참고자료)에 五更을 설명하면서 빗길미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진 곳인데 일제 말엽에 초평 저수지가 생기자 큰 부락은 침수되고 높은
산에 올라가 옛 모습을 찾으니 5개소가 남아있다 하여 오경(五更)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화산리 五更마을의 이름으로서 오경은 시각(時刻) 更으로 보는 것이 타당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오경마을에 관하여 어떤분이 제보 했는지는 모르지만 更자에대한 “보이는 것 시각(視覺)”으로 해석 한 것은 큰 과오를 범했다고 생각합니다.

更자의 자해(字解)에 "보이는 것' 즉 "견(見), 시(視)"의 의미는 없습니다.

자해의 '시각 경'에서 "時刻" 이라는 단어를 視覺으로 해석을 잘못한 것입니다.

"更"의 한문자의 뜻을 주위 깊게 살폈다면 이런 과오는 없었을 것입니다.

1. "보이는 것' 즉 "견(見), 시(視)"의 의미
2. "시간의 개념" 즉 "시(時)"의 의미

내용을 종합해보면 "更"의 의미를 ①번의 견(見)"의 의미로 해석함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시각 更자는 글자그대로 ②번에서의 시간의 의미로 時刻을 표현하는, 즉 시간의 어떤 순간에서의 始點으로서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밤 시각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오경(五更)이라 함은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다섯째를 말하는 것으로 초경(初更), 이경(二更), 삼경(三更), 사경(四更), 오경(五更)으로 나눈 마지막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초경(初更) - 오후 8시 전후로 초야(初夜)입니다.
이경(二更) - 오후 10시 전후로 을야(乙夜)입니다.
삼경(三更) -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의 사이로 병야(丙夜)입니다.
사경(四更) - 오전 2시를 전후한 시각으로 정야(丁夜). 축시(丑時)입니다.
오경(五更) - 지금의 오전 3시에서 5시까지임. 무야(戊夜)입니다.

五更의 이름을 (한 문자) 그대로 뜻을 받아들여 作名하였다면 오경(五更) - 오전 3시에서 5시까지입니다.

무야(戊夜)인 것을 염두에 두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면 새벽 5시쯤이면 동(東)녘부터 날이 밝아오는 여명(黎明) 의 아침(희망의 아침)임을 상기하게 되니 참 좋은 이름인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하루 일과를 계획하는 시간,
자신과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염원을 비는 거룩한 시간대이고,
생활 터전으로 나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시간이며,
하루 중 가장 힘이 용솟음치는 시간대이며,
마음과 육신 모두가 건강한 시간대입니다.
어둠에서 밝은 빛으로 바뀌는 좋은 시간대 입니다.
희망의 빛, 근면의 상징이며, 성실한 삶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대입니다.
글자 그대로는 참 좋은 동네 이름입니다.

오경마을의 지리적 조건을 보면 마을 동쪽에 큰 산(두타산)이 있어 아침 햇살이 유난히도 강하고 밝은 것으로 기억되며 조용하고 순박하며 소박한 사람들의 집단생활 터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초평면 화산리 오경 마을을 설명하면서 "視覺"에 관한 의미를 부여한 결과 1987년 2월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地名誌의 진천군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오경(五更) : 빗길미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진 곳인데 일제 말엽에 초평 저수지가 생기자 큰
부락은 침수되고 높은 산에 올라가 옛 모습을 찾으니 5개소가 남아있다 하여
오경(五更)이라 함.
○ 오경동(五更洞) : 죽정내 남쪽에 있던 마을로 초평 저수지로 인해 폐동됨.

문제 1
충북도에서 발행한 지명지(地名誌)에 의하면 오경(五更)마을은 일제 강점기 말엽에 지어진 마을 이름으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기록임을 밝힙니다.

英祖-憲宗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常山志卷之上 및 湖西邑誌 진천 편에 처음으로 五更里라는 이름의 마을이 등장합니다.(쿠웨이트에서 30년 가까이 정부병원에서 근무하고있는 사람으로 사학자가 아니므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이때는 草坪面이 아닌 文方面(현 문백면)에 속해있었던 것이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 시에 초평면 화산리로 편입되었습니다. 기록으로 볼 때 오경 이라는 마을 이름은 1871년 훨씬 이전부터 관청(官廳) 및 마을 주민들에 의해 널리 애칭(愛稱)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문제 2
오경동이 초평 저수지로 인해서 폐동 되었다는 내용도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일부 마을이 저수지로 인하여 없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없어진 마을로서 斜山洞에 장자터(고향 마을의 변상구 님은 오경이라 알려줌), 생팔리, 뜨물든지 마을이 없어졌고 五更洞마을은 아랫말 (현 진천군 초평면장 임종원님이 태어난 마을)한 동래만 없어졌고 가막골(웃말), 죽정래, 새집동래, 증산골은 그대로 현존되고 있습니다.

오경동 마을이 폐동 되었다 함은 오경동(五更洞)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농경지(農耕地)가 안뜰(가막골 골짜기 물이 내려가던 도랑을 좌우로 한 우물가와 큰 통뫼(큰섬) 부근 그리고 증산 골에서 내려오는 도랑을 좌우로 해서 있던 들판을 통틀어 안뜰 이라함)과 문상(성)앞 들(작은 통뫼(작은섬) 부근으로 초평천(草平川) 좌우의 옥토 (沃土))이었는데 저수지로 인하여 모두 침수되었는데 이 문제로 폐동 되었다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경동의 민가는 저수지가 생긴 직후에도 건재하였었습니다.

현재 죽정래에 거주하고 계신 신군식씨는 바깥뜰도 저수지로 인해 없어졌다 고 하신 것을 볼 때 바깥뜰은 큰 산(두타산)의 계곡으로부터 내려오는 도랑을 좌우로 옛 죽정래 우물가에서 큰 통뫼(큰섬) 좌우로 있던 농경지(農耕地)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임병섭씨는 재들이라는 地名도 알려주셨는데 큰 통뫼(큰섬) 옆 아랫말 쪽의 농경지라 알려주셨으며 다른 화산리 지명은 오경 동 사산 동으로 확실히 구분해 말씀 해주셨지만 장자 터는 오경, 사산에 속하지 않고 바로 화산리 장자 터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오경동의 아랫말 마을(현 인수집 부근)도 저수지가 생기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변학섭님과 임택기님이 마을의 맥을 이으며 거주하셨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위 사실로 오경동(五更洞)이 폐동 되었다고 기록으로 남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경동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습니다
.

오경동(五更洞)의 민가(民家)는 저수지(貯水池)의 원류인 초평천(草平川)과 멀리 산자락과 가까운 곳에 밀집해 있었기에 극히 일부분만 없어졌습니다.

오경동의 삼청 마을(구(舊) 수문(水門)부근)은 몇 가옥 되지 않았으나 없어 졌었지만 지금은 현대식 건물인 청소년 수련원이 들어섰고 진천 군청의 부속 건물이 있는 경치 좋은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저수지(貯水池)의 출현으로 갑작스런 주민들은 생활 터전이 없어지고 생계수단의 방법으로 잠시 저수지를 이용한 어업(漁業)으로 전업을 하였었습니다. 그런 후 화산리(초평저수지)가 전국적인 유명한 낚시터로 부상하면서 관광지화 되고는 요식업(料食業)으로 다시 전업하여 현재는 진천군 내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자 마을로 급 부상하게 됩니다.

아래의 사진들을 클릭하시면 크고 선명한 그림을 보실수 있습니다.

호서읍지(湖西邑誌)중 헌종(1834~1849)대에 편찬된 진천읍지(鎭川邑誌)에서 오경(五更)마을

1932년에 간행된 상산지(常山誌)

1932년에 간행된 상산지(常山誌) - 부분 확대

                               鎭川 邑誌 -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2009. 05. 22. 한국으로 휴가중 자료 찾음)

                              鎭川郡邑誌 (1899)-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2009. 05. 22. 한국으로 휴가중 자료 찾음)
 


          日帝强占期에 제작된 鎭川 地域 자세한(1/50000) 地圖

          자료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http://www.history.go.kr/ 
          아래의 鎭川郡 草坪面 畵山里 五更洞의 地圖는 鎭川, 陰城, 淸安, 접경 지역으로 鎭川, 陰城, 淸安,지도에서 畵山里 
          五更洞 부분을 복사하여 재 편집한 지도입니다.


          
           오경 마을이 폐동 되었다고 기록된 진천군 마을 유래

         
          현존하는 草坪面  畵山里  五更洞  마을과 없어진 마을 표시 圖
          지도를 클릭하면 크고 선명한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향마을 화산리 Daum 위성 사진(현존하는 오경동 마을 전체를 직접 보실수 잇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선명한 대형 사진을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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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쿠웨이트-진천농다리 2009/07/04 19:06 # 답글

    자료를 올린 필자로서 쿠웨이트 정부병원에 1978년 이래로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는 임 충섭니다.

    고향마을에 관심을 같고 공부를 하다 보니 고향마을의 이름 오경(五更)이라는 이름이
    사서에 기록될 만큼 상당히 오래전부터 관청 및 마을 주민들로부터 애칭 되던 洞名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동네 이름을 갖고 사시는 고향의 모든 분들도 행복한 가정 안에서 아름답게, 행복하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위의 자료는 史書와 관공서의 자료를 바탕으로, 나의 주관적 견해까지 가미되어 작성된 자료입니다. 혹시라도 고향에 누가 되는 글이 있거나 사실이 아닌 잘못 기록된 곳이 있으면 사랑하는 고향의 여러분들께서 지적해 주시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래 전에 작성했던 글이지만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오경(五更)과 관련된 자료를 새로이 찾게 되어 수정하고 새로운 자료를 올리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지도 편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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