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일본 무역의 땅 경북 왜관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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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조선시대 일본 무역의 땅 경북 왜관

자료출처 :- 월간 문화재 사랑 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

자료입력
:- 
2014. 04. 01.

자료옮김 :- 임충섭 (쿠웨이트 정부병원,  독도코리아 홍보위원-재외동포재단,  독도천연보호구역 지킴이-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월간문화재사랑 내용
제목조선시대 일본 무역의 땅 경북 왜관
작성자문화재청
작성일2014-04-01

조선시대 일본 무역의 땅 경북 왜관
모처럼 부산 나들이를 떠난 문여사 가족
용두산 공원도 가는 거죠?
당연하지.
우와, 이순신 장군!
어머, 초량왜관은 뭐지?
우리가 분명히 왜관역을 지나 왔는데…?
하하, 향토사학자입니다. 그건 제가 설명드리지요.
고려 말기 이후 조선 초기까지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해지자 이성계 장군 등이 왜구를 토벌하고 세종 때는 이종무가 대마도 정벌까지 하지요.
그래도 왜구들의 노략질이 멈추질 않으니 이번에는 회유책으로 교역을 허용합시다.
그렇게 해서 무역을 허용한 공간이 왜관이랍니다.

당시 왜관이 설치된 곳은 부산과 서울 부근에 모두 10개소였는데 그 지명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곳은 유일하게 칠곡의 왜관뿐이지요.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전 왜관을 폐쇄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서 왜관의 재설치를 끈질기게 요구해오자 결국….
좋다. 부산에 지어줄테니 그곳에서만 살아라. 일본 사신이나 무역 사신은 부산 이상을 올라오지 못한다! 알겠느냐? 
감사하므니다~!

그렇게 해서 1675년부터 용두산 부근 10만 평 부지에 총 3년에 걸쳐 125만 명을 투입해 만들어진 마을이 여기 초량 왜관이랍니다.
10만 평이나!
그 마을은 1678년부터 무려 200년 동안이나 존재했고 거주하는 일본인만도 500여 명에 이르렀답니다.
주로 무엇을 거래했나요?
조선의 인삼, 중국의 생사, 일본의 은이 거래되었지만 조선산은 20%에 불과하고 중국산이 주로 80%를 차지했어요.
동래상인도 유명하잖아요.

맞습니다. 초량 왜관을 근거지로 활동한 상인들이 바로 그 유명한 동래상인이지요.
이런 은혜도모르는…!
갑자기 어딜 가니?
바다 쪽을 향해 할 말이 있다고요!
야, 이 배은망덕한 것들아, 독도는 우리 땅이야! 넘볼 걸 넘봐야지!

 

글·그림 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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