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_경주시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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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_경주시

자료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korea/news/newsBbzView!view.action?id=155696824&curPage=1&strWhere=&strValue=&schWhere=&schDirect=&sectionId=ocp&sdate=&edate=&category=&mc=NS_01_09_02
자료생성 :- 2011-08-26 문화재청
자료옮김 :- 임충섭(쿠웨이트국립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1문화재 1지킴이 - 독도천연보호구역, 진천농다리)


[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_경주시]
작성자문화재청테마
작성일2011-08-26 조회수

16. 신라 천년의 역사 - 경주

경주의 역사는 곧 신라의 역사라 할 정도로 신라의 수도로써 많은 역할을 하였다. 이런 연유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95년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불국사와 석굴암은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다. 또한 2000년 6번째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 불교 미술의 보고寶庫 남산지구, 신라 왕조의 궁궐터 월성지구, 귀족고분군 분포지역 대릉원지구, 불교미술의 정수 황룡사지구, 왕경방어시설의 산성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외에도 경주는 문화유산 숨은그림 찾기를 할 만큼 신라 천년 문화유산이 넘친다.

16-1 노선 살펴보기

경주역을 출발해 원효로를 이용해 노서리고분군까지는 일방통행이다. 경주관광단지에 들어서면 자전거를 타고 첨성대, 경주월성까지 둘러볼 수 있고 단지 내에서는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있다. 경주월성에서 사천왕터사거리까지 자전거도로가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고, 사천왕터 사거리부터 선덕여왕릉까지는 800m 비탈진 산길을 올라야 한다. 특히 자전거를 따로 보관해둘 공간이 없으므로, 산길을 끌고 올라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선더역여왕릉을 지나 진평왕릉, 구황리삼층석탑까지는 농로를 이용하는데, 주변이 탁 트여 이정표없이도 뚜렷이 진평왕릉이 보인다. 분황사에서 황룡사지까지는 유적 발굴로 기존 도로가 폐쇄되었으니 분황사 옆 샛길을 이용한다. 안압지에서 경주역까지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하자.

16-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 첨성대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이다. 기단위에 27단의 돌을 원통형 곡선으로 쌓아 올렸고 가장 위쪽은 정井자형으로 되어 있다. 외부는 매끄럽게 다듬어졌으나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나와 있어 벽면이 고르지 않다. 사다리를 타고 내부로 들어가 꼭대기에서 하늘을 관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사람들은 천문학으로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시기를 결정하고,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국보 제31호


관람시간은 9시~22시까지로 연중무휴이다, 관람요금은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이다.

◎ 경주 노동리, 노서리 고분군

신라시대 무덤들로 각각 사적 제38호, 39호이다. 중앙에 있는 도로가 경계 역할을 한다.
노동리고분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덤인 봉황대, 문양이 독특하고 우수한 금동제 신발(飾履)이 발견된 식리총터, 독특한 배모양 토기와 기마인물 토기가 발견된 금령총터가 있다. 고분의 내부구조는 모두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으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노서리고분군에는 금관총·서봉총·호우총·은령총·제138호 무덤 등의 돌무지덧널무덤과 쌍상총·마총·우총 등의 굴식 돌방무덤이 존재한다. 특히 제130호 무덤은 노동리고분군의 봉황대와 대칭을 이루어 서봉황대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 밀집해 있는 돌무지덧널무덤과 전기 돌방무덤을 통해 경주지역의 무덤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다.


◎ 경주월성

사적 제16호로 신라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고 부분적 성벽이 남아 있다. 초승달처럼 생겼다고 '신월성新月城' ,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렸다. 파사왕 22년(101)에 이곳에 성을 쌓았고 역대 왕이 이곳에 살았다. 성을 쌓기 전에 이곳에는 호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박혁거세 39년(BC19) 석탈해가 꾀를 부려 이곳을 빼앗고, 그 공으로 남해왕이 사위가 되어 후에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최근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성벽의 외곽으로 자연적인 해자垓子와 인공적 안벽岸壁을 정연히 축조한 해자가 존재하고, 다시 외곽으로 건물지가 조밀하게 있었음이 밝혀졌다.

해자垓子 : 고대부터 근세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물과 적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

◎ 경주 임해전지

사적 제18호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삼국 통일 후 문무왕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가운데 3개의 섬을, 북·동쪽으로는 12개의 봉우리를 만들어 꽃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한다. 현재 신라 건물터 3곳과 안압지가 복원되어있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붙여진 것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라 불리게 되었다.

관람시간 9시~22시 연중무휴. 관람요금 성인 1,000원, 청소년 500원, 어린이 400원

◎ 구황리 삼층석탑

신라 신문왕이 죽자 그의 아들 효소왕(692년)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면서 세운 탑이다. '황복사지석탑'으로 부르기도 한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있다. 탑의 양식은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이나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슷하나 기둥 숫자나 탑신부 등이 달라졌다.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모습이면서 전기 석탑양식의 변화를 담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국보 제37호

◎ 신라 진평왕릉

사적 제180호인 신라 26대 진평왕의 무덤이다.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은 독자적 왕권 확립을 위해 중앙행정부서를 설치하였고, 수·당나라와의 외교관계에도 힘썼다. 또 경주 명활산성을 보수하여 수도 경주를 방위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자 시호諡號를 진평眞平이라 하고 한지漢只에 장사지냈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 한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이 고분의 규모로 보아 왕릉으로 생각할 수 있다.


◎ 황룡사지

진흥왕이 새로운 궁을 월성 동쪽에 지으려다가 그곳에서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궁 대신 절을 짓도록 하였다. 그 후 인도 아소카왕이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이루지 못하고 재료를 배에 실어보냈는데 신라가 이를 5m의 불상으로 만들어 진평왕 6년(584)에 금당을 지었다. 선덕여왕 12년(643)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바람으로 9층목탑을 지어 645년에 완공되었다. 이렇듯 황룡사는 93년에 걸친 국가사업이었으며 신라 3대 보물 중 2개(황룡사 9층목탑, 장육존상)가 황룡사에 있었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사찰이었다. 그러나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골의 침입으로 탑과 일체의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발굴조사에서는 4만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25,000평에 달하는 늪지를 매립하여 만든 것임이 밝혀졌다. 현재 사적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 선덕여왕릉

선덕여왕은 재위기간 동안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탑을 축조하였고 김춘추, 김유신 등과 함께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 능은 경주 동남쪽의 낭산狼山에 자리하고 있는데 <삼국유사>에 따르면 여왕은 죽는 날을 예언하고 도리천에 장사지내달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신하들이 도리천의 위치를 모르자 직접 낭산의 정상이라고 알려주었다. 후에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이루고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고, 불경에서 말하는 사천왕 위가 도리천이라는 가르침을 증명한 것이 되어 그때서야 여왕의 뜻을 깨달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적 제182호

우리 역사에 여왕은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단 3명이고 모두 신라시대다.
제27대 선덕여왕(632~647) :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장녀, 29대 태종무열왕의 이모
제28대 진덕여왕(647~654) : 진평왕의 동생 국반의 딸로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
제51대 진성여왕(887~897) : 48대 경문왕의 딸이자 헌강왕(49대), 전강왕(50대)의 누이동생

◎ 분황사지

<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되었고 원효대사가 이 절에 머물면서 <화엄경소>를 저술했다 한다. 또한 <삼국유사>를 보면 분황사에는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도와 어린아이의 눈을 뜨게 했다는 천수대비 벽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분황사지에서 볼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는 신라시대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분황사 석탑(국보 제30호)과 보광전에 모셔져 있는 문화재자료 제319호 약사여래입상이 있다. 3층만 남아있는 분황사 석탑은 모전석탑으로 9층이었으며 지금의 모습은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것으로 원래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관람시간은 9시~18시. 관람 요금은 성인 1,3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이다.

16-3 지도로 보는 경주시

* 이미지 사이즈가 커서 지면에서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도로 보는 경주시 이미지 파일은 아래부분에 파일로 첨부합니다 *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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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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