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_나주시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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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_나주시

자료출처 :- 재외동포신문 http://www.dongponews.net/news/quickView.html
자료생성 :- 2011-08-22 문화재청
자료옮김 :- 임충섭(쿠웨이트국립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1문화재 1지킴이 - 독도천연보호구역, 진천농다리)


[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_나주시]
작성자문화재청테마
작성일2011-08-22 조회수

15. 천년고도 목사고을 - 나주

나주는 천년고도 목사牧使고을이자 지리적으로 한양과 닮았다하여 소경小京이라 불렀다. 이 지역은 왕건과 견훤이 후삼국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곳으로 결국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부상한 도시이다. 나주목이 설치되어 전남지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거란의 2차 침입때는 10일 동안 임시 왕도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동시에 기축옥사, 이인좌의 난이나 갑오농민전쟁, 호남의병항쟁 등 굵직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다.
아직도 왕건과 관련된 설화가 많이 남아 있으며, 나주읍성, 목사 내아와 금성관, 나주 향교 등 나주목과 관련된 역사적 공간과 고택, 고분 등 시기와 종류를 달리하는 여러 문화유산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15-1 노선 살펴보기


나주역 주변이 재개발 중으로 우회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시청사거리가 나오고 사거리 좌측이 완사천이다. 완사천 반대방향으로 나주향교가 있는데 진행방향에는 자전거도로가 없으므로 역방향으로 진행해야한다. 나주소방서 앞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안쪽에 있는 나주향교로 곧장 진입할 수 있다. 나주목사내아와 나주경찰서까지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나주경찰서를 지나 나주 동점문까지 자전거도로가 지정되어 있지만 관리가 허술해 패인 길이 간혹있다. 동점문을 지나 나주대교에 들어서면 차도로 주행해야 하므로 차량을 주의하자. 나주대교 두 번째 램프 좌측 경사로를 내려가면 영산강이 내려다 보이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이어진다.

15-2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적지

◎ 나주목사 내아와 금성관

나주목사 내아는 조선시대 목사가 정무를 보던 동헌 근처 살림집으로 '금학헌'으로 불리며 문화재자료 제132호이다. 조선시대 20개 목 가운데 아직까지 내아가 남아 있는 곳은 나주가 유일하다. 객사인 금성관과 동헌의 정문인 정수루와 더불어 성내에 남아있는 건물로 현재는 본채와 문간채만 남아 있다. 이는 일제시대 이후 군수 관사로 사용되면서 원래 형태를 많이 상실하였다가 최근 복원된 것이다. 현재는 일반에게 개방되어 전통한옥체험장으로 인기가 높다.

관람은 무료이나 숙박 시에는 별도 요금 책정. 관람 이용시간은 9시~18시


◎ 나주향교

향교는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으로, 나주향교는 태조7년(1398)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앞 공간에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사당(계성사)이 있고 뒤편에 배움의 공간을 두고 있다. 이는 보통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것과는 반대의 형식이다.
조선 중기 건축양식으로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는 나주향교의 대성전이 있다. 또 정유재란 때 향교가 없어질 위험에 처하자 위패를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왜병이 물러간 뒤 안전하게 봉안한 것을 기념하여 사우를 건립하였다는 내용의 충복사유허비(忠僕祠遺墟碑)가 남아 있다. 서울에 있는 성균관 대성전이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을 때 나주향교에 있는 대성전을 그대로 모방하여 지었을만큼 아름답고 뛰어나게 보전된 문화재이다.


◎ 나주읍성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거란의 2차 침입 당시 현종이 10일간 머물다가 환도한 사실 등으로 비추어 봤을 때 지방행정 중심도시로서의 나주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세조 3년(1457)에 현재 규모로 증축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크게 보수공사를 하였다.
나주읍성은 서울 도성과 같은 4대문과 객사, 동헌 등을 갖춘 전라도의 대표적 석성이며 평지와 구릉을 이용한 평산성으로 대부분이 없어지고 북문터에 기초석만 남아 있었다. 1993년 남고문을 복원하였고, 조선시대 읍성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2층 누문 동점문은 2006년 낙성식을 치렀다. 서성문과 북망문도 복원 추진중이다. 사적 제377호


◎ 구 나주경찰서

일제강점기인 1910년 나주에 지어진 대표적인 관공서 건물이다. 붉은 벽돌의 2층 건물로 1982년까지 나주경찰서로 사용되었다. 이후 소방서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일부 사회단체가 사용하고 있다. 일제시대 민족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은 곳으로 유치장 등의 시설이 아직 남아있다. 등록문화재 제34호


◎ 나주 완사천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전설이 깃든 곳이다. 진 위쪽 산 아래에 상서로운 구름이 있어 왕건이 찾아가보았더니 아리따운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을 한 그릇 청하자 여인은 버들잎을 띄워 주었는데 급히 마시면 체할까봐 천천히 마시도록 한 배려였다. 왕건은 여인의 미모와 지혜에 끌려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 여인이 곧 장화왕후이며,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제2대 혜종이 되었다. 그 후 이 마을을 왕을 용에 빗대어 흥룡동이라고 불렀고, 샘은 빨래샘 즉, 완사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완사천 근처에는 나주 오씨 문중에서 세운 장화왕후 기념비가 있다.

15-3 지도로 보는 나주시

* 이미지 사이즈가 커서 지면에서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도로 보는 나주시 이미지 파일은 아래부분에 파일로 첨부합니다 *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자전거로 떠나는 문화재 여행]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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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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