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배경과 진실 Dokdo in Korea

좌측의카테고리항목을 크릭하시면 많은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논란의 배경과 진실


자료출처
:- KBS http://office.kbs.co.kr/dokdo/
자료입력 :- 2011년 8월 19일
자료옮김 :- 임충섭 (쿠웨이트 정부치과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독도천영보호구역지킴이, 1문화재1지킴이)




논란의 배경과 진실 | 논란의 배경&진실 2006/04/27 14:42
http://office.kbs.co.kr/dokdo/70

일본이 아직도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는 이유

비록 예전처럼 총을 들고 우리민족을 탄압하거나 우리영토를 빼앗아 가는건 아니지만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시켜가며, 이번엔 총이 아닌 돈을 들고 세계 1,2위를 다툰다는 일본의 경쟁력을 앞세워 우리의 바다를 우리의 땅을 다시한번 빼앗으려고 하고있다.

일본정부는 외무성이 앞장서서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한 고대 문헌조사를 실시했었다. 아직까지 일본이 독도문제를 큰 이슈로 부각시키지 않은 이유는 1905년의 시마네현 고시 이전에 독도의 소유권에 대한 일본에게 유리한 자료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일본은 끈임없이 대륙으로 진출하려고 무력침략을 일삼았고 그 대문에 일본과 이웃에 있는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었다. 현재도 일본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사실과 다른 역사를 교육하고 있고 또다른 침략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실례가 1997년 일본은 외교백서에서 일본외교 10대 지침의 하나로 독도 탈환 외교를 설정하고 1998년 11월 일본 해상자위대가 '이오지마'에서 독도를 무력 접수하는 해상훈련을 비밀리에 실시했던 것이다. 그 사실은 일본내에서도 1년이 지나 99년에야 신문에 보도가 되었고 일본정부에 의한 독도에 대한 확고한 침략의지가 다시한번 확인이 되었다. 만약 일본의 주장처럼 일본의 영토를 우리가 점령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처럼 자위대의 훈련을 숨기려고 하거나 또 정치인들이 가끔씩 떠들어 대는 정도의 영유권 주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지금처럼 소극적인 자세로 타국이 자신들의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주장을 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독도와 다케시마

조선 숙종 19년(1693년) 안용복, 박어둔 등 40여명의 조선어부가 울릉도와 독도에서 조업중인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추방하면서 최초의 영유권 분쟁이 시작되었는데, 일본측의 사과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는 문서를 보내오면서 일단락 되었다.

그 후, 1904년 8월에 일본정부가 대한제국 정부를 강요해 한일협정서를 성립시키고, 이 협정서에 의해 일본 해군이 독도에 부대를 설치하게 되면서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일본은 그 이듬해인 1905년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다케시마(독도)를 시마네현의 소관 아래에 편입한다"고 발표했고, 이 사실을 1906년 4월 대한제국에 통보했다.
이때 대한제국 정부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조처"라고 반발했지만, 외교권이 박탈당한 상황속에서 제대로 된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일본의 통치와 함께 일본의 자국령으로 강제 포함되었던 독도는, 1945년 해방과 함께 1943년 12월 1일 카이로선언의 내용에 따라 대한제국 영토로 반환되었다.




이어 우리나라 정부는 1952년 1월 18일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선언'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평화선'안에 독도를 포함시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재차 확인시켰다.
이는 독도가 우리나라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도동 1번지'인 한국의 영토이므로 당연한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10일 뒤인 1월 28일에 평화선이 국제법원칙에 위반된다 고 항의하는 외교문서를 우리정부에 보내오면서 독도의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하여 일본과의 독도문제가 외교쟁점화 되었다.

일본은 6.25 직후 보수 극단주의자들이 독도를 침입하여 자국의 영토 표지판을 박는 등의 행위를 하며 우익단체 등의 이름으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해오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아예 총리와 외무장관 등 당국자가 나서 공식·비공식 발언을 통해 끊임없이 외교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1977년 3월 일본의 후쿠다 다케오 총리, 1981년 4월 2일 이또 외무장관, 1983년 8월 18일 미야케 외무성 정보문화국장, 1984년 2월 12일 아베 신타로 외무장관, 1986년 9월 10일 쿠라나리타다시 외무장관, 1989년 3월 30일 도고 외무성 국장 등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일삼았다.
또한, 1993년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무토 장관이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일본 영토임에도 한국이 점령하고 있어 극히 유감"이라는 말로 외교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6년 2월에는 이케다 외무장관이 "독도는 국제법상 일본의 영토임에도 한국 정부가 이곳에 접안시설을 건설하는 것은 주권침해"라는 발언을 하였고, 같은해 10월에는 하시모토 히로시 일본 외무성 대변인이 정례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독도는 우리의 영토이며, 이 같은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발표하면서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1992년 4월에는 일본 극우단체인 '대일본정의국수회' 행동대원 2명이 한국영사관에 침입해 '다케시마는 우리땅'이라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해상보안청 소속 무장 순시선이 독도 영해를 넘나들고 비행기 공중시위를 자행하기도 했다.

또한, 1997년 일본은 외교백서에서 일본외교 10대 지침의 하나로 독도 탈환 외교를 설정하고, 1998년 11월 일본 해상자위대가 '이오지마'에서 독도를 무력 접수하는 해상훈련을 비밀리에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일본내에서도 1년이 지난 1999년에야 신문에 보도가 되었고, 이 기사를 통해, 일본정부의 독도 침략의지가 다시한번 확인이 되기도 했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독도우표 발행계획을 발표하자 2004년 1월 8일 일본 총무성이 한국우정사업본부에 독도디자인우표 발행을 중지할것을 요청하면서 한·일 우표분쟁을 쟁점화 시키고 있다.

일본 총무성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해서 외교현안이 되고 있는 독도를 소재로 우표를 발행하는 것은 우호적인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만국우표연합헌장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9월에도 발행계획을 재고해 달라는 문서를 한국측에 전달하고, 일본 외무성도 지난해 12월부터 외교채널을 통해 우표발행을 보류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10일에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까지 나서, 우리나라의 독도 우표발행과 관련해서 다케시마 즉 독도는 일본의 영토이며 한국측도 잘 분별해서 대응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파문을 확산시켰다.


? 일본 외무성, 다케시마 홍보 자료:
http://www.mofa.go.jp/mofaj/area/takeshima/index.html (일본어)




다케시마 주장의 부당성
일본은 1618년 도쿠가와 막부(德 川幕府)가 일본 어업가 오오다니(大谷甚吉)와 무라가와(村川市兵衛) 두 가문에게 내어준 죽도도해면허(竹島渡海免許)와 1661년에 내준 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일본은 이사실을 근거로 1600년 이후 독도의 소유권을 일본이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이 두 개의 자료는 독도가 자국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문서가 된다.
도해면허는 외국에 건너갈 때 허가해주는 면허장이며, 도해면허의 내용을 보면 "주인(朱印)을 하사하면서 이것을 가진 어민들로 하여금 다케시마(울릉도) 지역에 출어하게 했다"고 적혀있는데, 여기서 '주인'은 외국 무역을 공인하는 증명서이므로 일본이 다케시마를 외국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삼국사기(512년),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단종 2년), 팔도총도(1531년, 중종 26년) 등의 한국 고문서를 통해 독도가 1500년 이상 대한민국의 영토였음을 입증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인 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1785년에 제작한 '삼국통람도' 혹은 '삼국접양지도'라고 불리는 지도를 보면, 독도를 조선의 영토와 같은 색으로 표기하고 독도 옆에 '조선의 것'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40호로 독도를 일본령으로 발표할때까지 독도가 주인이 없는 땅이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시마네현 고시는 일제침략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영토를 침략하여 얻은 것이므로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자료로 사용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독도의 소속과 관할을 가장 명료하게 기술하고 있는 법령인 1900년에 공포된 칙령 제41호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는 건'을 보면, 제2조에서 "...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石島)를 관할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906년 일본의 시마네현 관리들이 내방하여 이제부터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통고하자 이 사실을 우리나라 중앙정부에 알린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석도는 울릉도민이 속칭 돌섬이라고 부르는 독도인 것이다.
1900년의 칙령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1905년 일본정부가 독도를 무주지로 취급하여 일본영토로 편입한 시마네현 고시보다 최소한 5년 전에도 독도는 분명히 우리나라의 영토이었고 무주지가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자료 제공 : 독도수호대, 독도역사찾기운동본부, 사이버독도>





이글루스 가든 - 독도 · 동해에서 오늘은 어떤 문...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