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기록된 만주(滿洲) 만츄리아 Manchu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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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기록된 만주(滿洲)

자료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301101&v=42
자료생성
:- 2010. 08.06
자료옮김 :- 임충섭(쿠웨이트국립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1문화재 1지킴이 - 독도천연보호구역, 진천농다리)


오늘날 중국의 동북(東北)지방, 즉 요령성(遼寧省)·길림성(吉林省)·흑룡강성(黑龍江省) 및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의 동부지역을 포괄해서 가리키는 말. 만주라는 어의(語義)에 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범어(梵語)인 ‘만주사리(曼珠師利, Man-chu-shih-li)’에서 나왔다는 것이고, 둘째는 숙신(肅愼, Shu-chen)의 전음(轉音)인 주신(珠申, Chu-shen)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셋째는 만절(滿節)에서 전화되어 만주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넷째는 원래 건주여진족(建州女眞族)의 가장 존귀한 칭호였던 ‘만주(滿住)’를 누르하치가 계승해서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청태종(淸太宗)이 그 존칭을 ‘만주(滿洲)’로 바꾸어 부족 이름으로 사용한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건주(建州)’와 같은 소리였는데 이를 다르게 사용한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만주라는 명칭의 기원(起源)에 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1636년 청태종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청(淸)의 발상지(發祥地)인 ‘후금(後金)’을 ‘만주’로 개칭한 것을 계기로 순치(順治) 이후 그 명칭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청조에서 ‘만주’라는 명칭을 사용한 경우에는 만주인·몽고인·한인 등과 같이 자신들의 부족(部族) 이름을 가리킬 때였을 뿐이지, 영토(領土)의 명칭으로 ‘만주’라는 것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가 여진족의 각 부족을 통일하고 1616년 한(汗)을 칭한 뒤 후금(後金) 정권을 건립함과 동시에 스스로 만주한(滿洲汗)이라고 불렀다가, 1635년에 청태극(淸太極)이 여진인(女眞人)을 만주인(滿洲人)으로 개칭한 뒤, 만주가 족명(族名)에서 지명(地名)으로 바뀌어 전해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만주’라는 명칭은 청조 초기에 여진족이 스스로 쓰기 시작한 민족 이름이었다가 그들의 주거지 명칭으로 바뀌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만주가 지역 명칭으로 사용되면서 그 적용 범주도 초기에는 요서(遼西)와 요동(遼東) 지방만을 지칭했으나 그 후 만주 전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대되었다.

또한 그 용어도 중화민국 시기에는 ‘만주’라는 명칭보다도 주로 ‘동삼성(東三省)’이라는 명칭이 즐겨 사용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일제가 만주를 중국 본토와는 역사적·지리적으로 별개의 문화 공동체를 지닌 지역으로 호도하면서 만주를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집어넣으려고 시도한 뒤 결국 만주에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수립한 사실에 비추어, 만주라는 용어 자체가 식민지의 유산이라는 인식하에 만주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 지역을 ‘동북지구(東北地區)’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다만 일본이나 한국 등지에서는 여전히 그 지역에 대한 명칭으로써 ‘만주’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중국의 동북지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현재 영어권에서는 그 지역 명칭이 ‘만추리아(Manchuria)’라는 용어로 정착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만주 지역에서는 우리의 선조가 세운 고조선을 비롯해 고구려·발해가 웅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말갈족(靺鞨族)·선비족(鮮卑族)·거란족(契丹族)·여진족(女眞族)·몽고족(蒙古族)·만주족(滿洲族) 등이 삶의 터전을 이루면서 성장하고 소멸해 갔다.

따라서 만주에서는 다양한 민족의 문화적 공동체가 어우러져 있었다. 그러다가 17세기 중엽 만주족의 청조(淸朝)가 등장하면서 만주는 중국의 온전한 영토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청조의 수립과 더불어 대다수 만주족이 관내(關內)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1677년에는 청조 정부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두만강 이북의 1,000여 리 되는 지역을 청조의 발상지(發祥地)라 하여 봉금(封禁) 지역으로 선포하면서 이 지역으로의 이주를 엄금하였다. 이리하여 만주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북방의 러시아가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점차 남진하면서 변경(邊境)의 방어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화북 지역에서 빈발하고 있던 토비(土匪)의 약탈, 각종 자연재해, 기근 등으로 인해 살길을 모색해 만주로 몰래 들어오는 빈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조선의 북부지방에서도 기아와 도탄에 허덕이던 빈한한 한인 농민들이 생존을 위해 봉금령(封禁令)을 어기고 계속 만주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당시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한 북방 거점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청조 정부는, 이에 만주로 몰래 들어가 땅을 개척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주와 개간을 합법적으로 용인하였다. 이를 통해 변경방어를 위한 인적 자원으로 그들을 활용하는 동시에 그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여 재정난을 타개하려고 하였다.

게다가 이 때쯤에는 살길을 찾아 만주로 넘어가는 중국인들의 움직임이 이미 하나의 대세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들의 만주 이주를 물리적으로 막기에는 무리가 따를 정도였다. 결국 청조 정부에서는 국방·재정·민생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1870년대부터 봉금령을 취소하고 이민실변정책(移民實邊政策)을 실시하였다.

이를 계기로 중국인의 만주 이주는 물론이고 한인의 만주 이주도 본격화되었다. 이리하여 1860년대부터 조선 북부에서 빈발하고 있던 자연재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상실한 수많은 한인들은 만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연변(延邊)이라고 일컬어지는 북간도(北間島) 지역에는 주로 지리적으로 인접한 함경남·북도 사람들이, 서간도(西間島, 후에 東邊道) 지역에는 평안남·북도 사람들이 이주해 갔다.

그 뒤 만주로 이주해 간 조선남부의 경상도·충청도·강원도 등지의 사람들은 이미 점거된 서·북간도 지역을 피해 새로운 개척지를 따라 오늘날의 흑룡강성·길림성 지역으로 이주해 갔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게 강점(强占)되자, 이전까지의 경제적 요인에 따른 만주 이주와는 달리, 그 이전부터 의병활동을 했거나 강점에 불만을 품고 있던 수많은 한인들이 정치적 박해를 피해서 혹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주로 정치적인 이유로 만주로 이주해 갔다.

이들은 만주를 조국 해방의 인적·물적 기지로 활용하면서 독립운동을 벌였다. 당시 민족주의계열의 독립운동세력으로는 남만의 국민부(國民府)가 조직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과 그 산하의 조선혁명군, 북만의 신민부(新民府) 주도로 조직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과 한국독립군 등이 있었다.

사회주의계열의 항일운동세력으로는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에 참여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화북에서 만주로 이동해서 잠시 재만(在滿) 한인 세력을 흡수했던 화북조선독립동맹(華北朝鮮獨立同盟) 산하의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 등이 있었다.

전자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김일성(金日成김책(金策)·최용건(崔庸健) 등이었고 후자의 대표적인 사람들은 무정(武亭)·최창익(崔昌益) 등이다. 이들은 해방 후 북한정권을 수립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편 청조가 1840년의 아편전쟁(阿片戰爭)을 계기로 서구 열강의 계속되는 침략과 내부의 반란에 직면하면서 그 세력이 약화되자, 만주는 주로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 확장을 위한 각축장이 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만주의 남부는 일본의 세력권으로, 그 북부는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재편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조가 붕괴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등장한 이후, 원세개(袁世凱)를 필두로 한 북양군벌(北洋軍閥)이 세력을 떨치면서 그 와중에 만주 지역에서는 장작림(張作霖)을 우두머리로 한 군벌정권(軍閥政權)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만주에서는 장작림과 그의 뒤를 이은 장학량(張學良)의 군벌정권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러시아가 정치적·경제적으로 만주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세력다툼을 벌이는 형국이 조성되었다.

그러다가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키고, 1932년 3월 괴뢰 만주국을 수립하면서, 만주는 일본 제국주의의 독점적인 식민지로 전락되었다. 1930년대 이후 일제는 집단(集團)·집합(集合)·분산(分散)·자유(自由) 이민의 형식으로 일본인과 더불어 조선인을 만주에 대량으로 이주시켰다.

이는 조선 남부의 과잉인구에 따른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소하고 조선인의 일본 이주를 제한하는 동시에, 만주 지역에서의 수전(水田) 개발 및 항일세력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그리고 만주를 대소(對蘇) 방어 진지구축과 대륙침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일환으로 일제는 이른바 조선인 자작농창정사업(自作農創定事業)을 실시하고, 안전농촌(安全農村)과 집단부락(集團部落)을 건설하는 동시에, 북변진흥계획(北邊振興計劃) 등의 일환으로 수전(水田)을 개발하였다.

다른 한편 만주국의 성립으로 조선과 만주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권으로 포괄되면서 이들 양 지역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자 화북(華北)이나 만주에 거주하던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이주해 화교촌(華僑村)을 형성하기도 했다.

당시 만주국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일제의 제국주의 전략에 의해 대륙 침략을 위한 인적·물적 보급기지로써의 역할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주국과 조선 사이에는 상당한 양의 물자와 인적 교류가 이루어졌고 산업간 상호 보완적인 역할도 담당하였다.

그 결과 만주국은 조선의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특히 일제의 미곡 반출에 따른 조선의 식량 부족을 메우기 위해 만주산 농산물이 수입되었으며, 조선에서 부족한 전시물자의 상당량이 만주로부터 이입되었다. 반대로 만주국에서는 쌀·생선류·인조견직물·시멘트·목재 등을 가져갔다.

이처럼 일제 시기 만주와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써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만주국이 와해될 때까지 만주로 이주한 한인들은 당시 한반도에 거주하던 한인의 약 1/10인 200만 명 가량에 달하였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해방 후 북한이나 남한으로 돌아온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피땀 흘려 가꾼 새로운 삶의 터전을 유지하기 위해 만주 지역에 그대로 남았다. 오늘날 중국에서 동북지구라고 불리는 지역에 남게 된 이들은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朝鮮族)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조선족 가운데 일부는 소위 ‘조국해방’을 위해 한국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의 중국 진출에 적극적인 가교(架橋)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향후의 남북관계 혹은 남북통일 이후 전개될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만주는 청조 말기부터 만주국이 붕괴될 때까지 궁핍한 한인들에게 경제적인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조선침탈에 불만을 품고 있거나 항일활동에 연루된 사람들, 혹은 조국해방의 원대한 꿈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정치적 피난처 내지 항일투쟁을 위한 기지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이와 아울러 일제의 패망 이후에도 우리의 수많은 한인들이 만주에 거주하며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나름대로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면서, 한중(韓中)간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교류의 활성화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향후의 남북통일 문제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들을 고려해 볼 때, 만주는 우리의 대륙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써의 역할도 기대될 수 있는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僞滿洲國史(姜念東 외, 吉林人民出版社, 1980, 長春)
≪참고문헌≫ 한국공산주의운동사 1(이정식·스칼라피노 공저, 한홍구 역, 돌베개, 1986)
≪참고문헌≫ 만주혁명운동과 통일전선(이정식 저, 허원 역, 사계절, 1989)
≪참고문헌≫ 조선족약사(조선족략사편찬조 저, 백산서당, 1989)
≪참고문헌≫ 東北(滿洲)史에 대한 中國에서의 硏究(全海宗, 大韓民國學術院論文集(인문사회과학편) 제29집, 1990)
≪참고문헌≫ 日帝下 滿洲國 硏究(尹輝鐸, 一潮閣, 1996)
≪참고문헌≫ 中國邊疆民族史 下(劉義棠, 中華書局, 1969, 臺灣)
≪참고문헌≫ 滿洲名稱及劃分東·西·南北滿的由來(陸建義, 東北地方史硏究, 1985.3.)
≪참고문헌≫ 僞滿洲國史新編(解學詩, 人民出版社, 1995, 北京)
≪참고문헌≫ 中國抗日戰爭大辭典(章紹嗣 외 主編, 武漢出版社, 1995)
≪참고문헌≫ 30年代朝鮮共産主義者在中國東北(李鴻文, 東北師範大學出版社, 1996, 長春)
≪참고문헌≫ 朝鮮貿易史(朝鮮貿易協會, 同協會, 1943, 京城)
≪참고문헌≫ 滿洲地名大辭典(山崎摠與, 國書刊行會, 1977, 東京)
≪참고문헌≫ 滿洲國號の由來(稻葉岩吉, 朝鮮 제227호, 朝鮮總督府 編, 1934)
≪참고문헌≫ 中國朝鮮族の硏究(鶴嶋雪嶺, 關西大學出版部, 1997, 大阪)
≪참고문헌≫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和田春樹 저, 이종석 역, 창작과 비평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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