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궤변 Dokdo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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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궤변

자료출처 :- 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자료생성 :- Web다케시마문제연구소 2011. 07. 27.
자료옮김 :- 임충섭 (쿠웨이트 정부치과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독도천연보호구역지킴이, 1문화재1지킴이)



일본의 독도궤변

한국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허위 제2회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은 일본 외무성이 간행한 「다케시마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竹島問題を理解するための10のポイント)」중에 「2.한국이 예부터 다케시마(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韓国が古くから竹島を認識していたという根拠はありません).」를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다음으로 1~4를 근거로 들며「일본의 주장은 그렇기 때문에 잘못이다」라고 했다.


제2회 「한국이 예부터 다케시마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일본 외무성)의 정당성 (2011년 6월 20일 게재)


【요약】
「한국이 예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한국 측은 우산도가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산도는 울릉도와 같은 섬이던가, 존재하지 않는 섬이다.」
 

【한국 측의 비판 1】
독도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그 결과『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는「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2섬이 현의 정동 바다에 있다. 2섬은 서로 멀리 않고 날씨가 좋으면 볼 수 있다(于山(独島)と武陵(欝陵島)二島が県の正東の海中にある。二島は互いに遠くなく、天気がよければ眺めることができる)」고 기록되어 있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 의한 역사날조】
 이는 반론이 아니다. 일본 외무성에서는 「우산도(于山島)는 울릉도와 같은 섬이던가, 존재하지 않는 섬」이라며,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고 했다. 반론하고자 한다면, 우산도가 현재의 다케시마(독도)였다는 것의 증명이다. 이를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서는 『세종실록지리지』의「우산, 무릉 2섬 현의 정동 바다에 있다(于山、武陵二島在縣正東海中)」를「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2섬이 현의 정동 바다에 있다」고 읽고, 논증도 하지 않은 채 우산도를 독도라 단정 짓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세종실록지리지』의「울진현조(蔚珍県條)」(우산‧무릉 2섬. 현의 정동 바다에 있다. 2섬 서로 멀지 않고, 풍일이 청명하면 볼 수 있다(于山・武陵二島。在県正東海中。二島相去不遠。風日清明則可望見))를 해석하고, 울릉도에서 우산도를 「볼 수 있다」고 한 풀이도 올바르지 않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지지편찬의 방침에 따라 기술되어 있어, 울릉도를 관할하는 울진현에서 울릉도를 「볼 수 있다」, 고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세종실록지리지』를 답습한 『신증 동국여지승람』에서는 해당 부분을 상술하여「풍일 청명하면 봉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을 볼 수 있다(風日清明なれば則ち峯頭の樹木及び山根の沙渚を、眺めることができる)」고 하여, 울진현으로부터는 관할하는 울릉도의 봉머리의 수목 및 산 밑의 모래톱이 보인다고 한 것이다.

 그 독해가 올바른 것은 『신증 동국여지승람』의 문언을 계승하고 본문에서 우산도를 삭제한 『여지도서(輿地図書)』(영조40년대 성립)가 「울릉도, 우릉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중략) 세 봉우리가 높이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날씨가 맑으면 봉우리 위 나무와 산 아래 모래톱이 역력히 보인다(欝陵島。一羽陵。島在府東南海中。三峯岌●(山へんに業)●(手へんに掌)空、南峯稍卑。風日清明則峯頭樹木山根沙渚歴々可見)」라고 한 것이 증좌가 된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의 「울진현조(蔚珍県條)」에는 우산도와 무릉도가 기재된 힌트가 기록되어 있다. 그건「울진현조(蔚珍県條)」의「我太祖(註1)時、聞流民逃入其島者甚多、再命三陟人金麟雨爲按撫使、刷出空其地。麟雨言土地沃饒、竹大如柱、鼠大如猫、桃核大於升。他物稱是」부분이다. 이는「김인우(金麟雨)에게 우산 무릉 등의 안무사로 삼았다(金麟雨を以って于山武陵等処按撫使と為す)」고 한『세종실록(世宗実録)』의 세종7년(1425년) 8월 갑술조(甲戌条)와 관련된 기사이다. 김인우가 우산 무릉 등의 안무사로, 새로이 우산도의 안무사로 명받은 건 태종16년(1416년) 9월, 무릉 등 안무사인 김인우가 울릉도에서 귀환했을 때  「우산도에서 돌아(于山島より還る)」와 복명[復命;명령 (命令) 받은 일을 집행 (執行)하고 나서 그 결과 (結果)를 보고 (報告)함)]하고, 우산도의 「토산물(土産)인 대죽(大竹), 수우피(水牛皮), 생저(生苧), 면자(綿子), 검박목(検樸木) 등을 헌상」하고, 「그 섬 약 15가수, 남자와 여자를 합쳐 86(其の島、戸凡そ十五、口男女併せて八十六)」이라 보고한 것에 의한다. 이에 『동국여지승람』은 「우산 울릉 본래 하나의 섬(于山欝陵本一島)」이라 하고, 일설로 우산도를 울릉도와 같은 섬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은 「독도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를 다케시마(독도)로 해석했지만, 이는 문헌비판을 무시한 궤변이다.

 (註1)태종(太宗)의 잘못된 표기. 『동국여지승람』에서는 「我太宗の時」라 올바르게 인용되어 있다.


【한국 측의 비판 2】
『신증 동국여지승람』 (1530년), 『동국문헌비고』 (1770년), 『만기요람』 (1808년), 『증보 문헌비고』 (1908년) 등, 한국의 다수의 관찬문서에 독도의 옛 지명인 우산도가 명확히 표기되어 있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 의한 역사날조】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은 『신증 동국여지승람』『동국문헌비고』『만기요람』『증보 문헌비고』 등에 기재된 우산도를 현재의 다케시마(독도)라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한국 측에 요구되는 건 우산도가 다케시마(독도)라는 것에 대한 실증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문헌에 기록된 우산도에는 2개의 우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유래하는 우산도와, 후술하는 『동국문헌비고』의 분주(分註; 본문 사이에 두 줄로 나누어 작은 글씨로 주를 닮. 또는 그렇게 다는 주)에서 「우산은 왜의 소위 마츠시마다(于山は倭の所謂松島なり)」로 여겨진 우산도로, 전자의 우산도는 기술한 것처럼 울릉도였다.

  반면 『동국문헌비고』의 분주에 기재된 우산도는 1696년, 일본에 밀항해 돗토리번(鳥取藩)에 의해 추방된 안용복의 귀환 후의 증언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안용복이 「마츠시마(松島)는 우산도(于山島)다. 이도 우리 조선의 땅이다」라고 한 우산도는 울릉도의 동쪽 약2킬로미터에 위치하는 죽서(竹嶼)였다. 1711년, 울릉도 수토(捜討)로 부임한 삼척영장(三陟営将)인 박석창(朴錫昌)이 『울릉도도형(欝陵島図形)』을 작성하고, 그 안에서 죽서에 「이른바 우산도(所謂于山島)」라 주기(注記)했기 때문에 죽서가 우산도로 칭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지리적 인식은 후세 『광여도(廣輿図)』『해동지도(海東地図)』『청구도(青邱図)』『대한전도(大韓全図)』 등에 답습되고 있다.

「한국의 수많은 관찬문서에 독도의 옛 지명인 우산도가 명확히 표기되어 있다」고 주장한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의 반론에는 근거가 없다. 이는 다음에서 기술하는 것처럼 한국 측이 논거로 삼는 『동국문헌비고』의 분주 그 자체가 개찬되었기 때문이다.

(사진 1)박석창『울릉도도형』 

 

【한국 측의 비판 3】
『동국문헌비고』『만기요람』『증보 문헌비고』 등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으로, 우산도는 일본인이 말하는 마츠시마(松島)」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츠시마는 당시 일본인이 말하는 독도의 명칭으로 우산도가 틀림없이 독도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울릉도도형을 확대한 것>


(사진 2)『광여도』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 의한 역사날조】
 한국 측에는 문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동국문헌비고』의 분주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 우산 모두 우산국 땅. 우산은 왜의 소위 마츠시마다(輿地志云、欝陵于山皆于山国地。于山則倭所謂松島也)」도 무비판적으로 「우산도는 일본인이 말하는 마츠시마(현재의 다케시마=독도)」라 해석하고, 다케시마(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논거로 삼아왔다.

  하지만 『동국문헌비고』의 분주는「여지지에 이르기를(輿地志云)」이라 되어 있는 것처럼 유형원의『동국여지지』(1656년)로부터의 인용문이다. 당연히 『동국여지지』의 기술이 어떻게 되어 있었는지,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동국여지지』를 확인하면 우산도에 관해서는 「일설에는 우산도와 울릉도가 같은 섬이다(一説于山鬱陵本一島)」라 되어 있지만, 「울릉 우산 모두 우산국 땅. 우산은 왜의 소위 마츠시마다(欝陵于山皆于山国地。于山則倭所謂松島也)」라는 문언은 없다.

<광여도를 확대한 것>


  이는 『동국여지지』에서 인용된 문언이 『동국문헌비고』가 편찬된 과정에서 고쳐 쓰여졌다고 봐야한다. 이에 『동국문헌비고』의 저본(底本;번역.교정할 때의 원본)이 된 신경준의 『강계지』를 보면 여기에는「愚按、輿地志云、一説、于山欝陵本一島。而考諸図志、二島也。一則倭所謂松島而蓋二島倶是于山国也」로 기록되어 있어,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와는 명백히 문의(文意;글에 담긴 뜻)가 다르다.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서 「一説于山鬱陵本一島」(일설에 우산도와 울릉도는 같은 섬이다)라고 인용되었던 문언이 『강계지』에서는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으로 우산도는 일본인이 말하는 마츠시마(松島)」를 끌어내기 위한 토대로 사용되어, 우산도는 「왜의 소위 마츠시마(倭の所謂松島)」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인용문은 개찬되었던 것일까. 그 힌트는 신경준의 안기(按記) 중에 있다. 신경준은 자설(自説;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는 논설)을 논하며,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는 『일설, 우산 울릉 본래 한 섬』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각 지도와 지지를 생각하면 두 섬이다. 하나는 소위 왜의 마츠시마(松島)로, 아마도 두 섬은 모두 우산국일 것」이라 하고 있다. 신경준은 울릉도 외에 우산도가 존재하고, 이를 왜의 마츠시마(松島)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우산은 왜의 소위 마츠시마(松島)」라는 지리적 이해는 1696년에 돗토리번으로 밀항한 안용복의 증언에서 시작된다. 조선에서는 이 안용복의 밀항사건을 계기로 「울릉도도형」(사진 1)이 작성되고, 울릉도와 우산도(죽서-竹嶼)의 두 섬이 그려진 『광여도』(사진 2) 『해동지도』 등이 유포되었기 때문이다. 신경준은 이 「울릉도도형」에서 시작되는 여러 지도를 참고로 울릉도와 우산소(죽서-竹嶼)의 두 섬의 존재를 인식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신경준이 『강계지』에 인용한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의 우산도는 「일설 우산 무릉 본래 한 섬」이라 한 울릉도였다. 이것이 『동국문헌비고』의 편찬과정에서 신경준의 안기(按記)가 윤색{潤色;글, 채료 (彩料)를 가 (加)하여 꾸밈}되어 신경준의 견해도『동국여지지』에서의 인용문으로 하여 개찬된 것이다.

  때문에 『동국문헌비고』의 분주에 기록된 우산도는 이중의 의미에서 다케시마(독도)와는 연관이 없었다.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 등장하는 우산도는 울릉도였지만, 신경준의 『강계지』에서 유래하는 우산도는 「울릉도도형」이래의 죽서(竹嶼)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이 반론하는 것처럼, 「마츠시마(松島)는 당연이 일본인이 부르는 독도의 명칭으로, 우산도가 틀림없이 독도이다」와 같은 사실은 없었던 것이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서는 『동국문헌비고』 외에도 『만기요람』도 『증보 문헌비고』를 근거로 들고 있지만, 모두 『동국문헌비고』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산도가 다케시마(독도)였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한국 측의 비판 4】
한국의 고지도에서는 관찬지도가 있고, 사찬지도가 있어, 동해의 2개의 섬, 즉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그리고 있다. 당시 지도의 제작기술의 부족으로 독도의 위치와 크기를 잘못 그리고 있지만, 이것으로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 의한 역사날조】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은 「한국의 고지도에서는 관찬지도거나, 사찬지도거나, 동해의 2개의 섬, 즉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그리고 있다」고 반론하지만, 이는 근거가 매우 빈약한 주장이다. 우산도에 관한 조선시대의 지도에는 두 가지 계통이 있어, 『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에 유래하는 지도와, 안용복의 밀항사건을 계기로 작성된 「울릉도도형」의 계보이다. 「울릉도도형」의 우산도는 1711년, 울릉도수토로 부임한 삼척영장인 박석창이 제출한 「울릉도도형」에서 유래하고, 「소위 우산도(所謂于山島)」라고 주기(注記)된 울릉도의 동쪽 2킬로미터의 죽서(竹嶼)를 말한다. 『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에는 우산도와 울릉도의 두 개의 울릉도가 그려져, 모두 현재의 다케시마(독도)는 그려져 있지 않다.

  이를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서는 「당시의 지도 제작기술의 부족으로 독도의 위치와 크기를 잘못 그리고 있지만, 이것으로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고 반론하지만, 이는 무리한 주장이다. 「당시의 지도 제작기술의 부족」을 근거로 한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는 문헌비판이 부족하다 하겠다. [Web다케시마문제연구소 2011.06.20]



독도본부2011.07.27. www.dokdocenter.org



덧글

  • 대한고구려 2011/12/28 00:00 # 삭제 답글

    소위 우산도와 우산도는 다른 섬입니다. 소위 우산도는 죽서도이고 우산도는 독도입니다. 그리고 죽서도는 날씨가 흘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도는 무조건 날씨가 맑아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산도는 일본이 말하는 송도 즉 독도인 것입니다. 그 증거로 일본의 고지도인 竹島松島地圖에는 명확하게 독도가 송도라고 표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산도를 명확하게 봉우리 2개 표시한 강원도 전도 고지도가 있습니다. 즉 소위 우산도는 죽서도이고 우산도는 명백히 독도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고기록을 보면 울릉도 중봉에서 삼봉도[독도]를 보는데 거리가 300리[120km≒87.4km]라고 명확하게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즉 울릉도 옆 2km에 있는 죽서도가 아닌 명백히 독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고기록에서 우산도 위치는 진 방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독도는 진방향에 위치 합니다. 즉 우산도는 또 한번 독도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고기록에 보면 바람이 잔잔한 날 울릉도에서 독도를 가면 이틀 걸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울릉도에서 돛담배를 타고 독도에 가면 이틀 걸립니다. 그리고 울릉도 옆 죽서도는 하루도 않되 도착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기록에서는 명백히 우산도가 독도라고 증명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기록을 보면 울릉도 주위에는 6개의 섬이 있는데 우산도와 죽서도가 있다. 즉 우산도는 죽서도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산도 위치와 울릉도 위치가 바뀌 것은 어디까지나 실수 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일본의 고지도인 교키도에는 일본에서 존재하지 않는 영토를 표시한 고지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고지도에서는 오키섬은 명백히 두개의 섬인데 하나의 섬으로 표시한 고지도가 있고 오키섬은 좌우인데 상하로 표시한 일본 고지도가 있습니다. 그러면 일본의 주장은 억지 주장 밖에 않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제작한 조선국 전도에는 명확하게 독도는 조선의 영토임을 표시했고 일본의 고지도는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과 같은 색을 입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울릉도 도해 금지는 독도를 함께 언급해 울릉도 도해 금지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도해 금지 경고판은 2가지 종류인데 한 가지에는 명확하게 오른 쪽 섬도 도해 금지를 하고 있습니다. 도해 금지 경고판은 하치에몬의 사건 때문에 도해 금지를 한 것인데 하치에몬의 진술 기록을 보면 명확하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임을 빨강색을 입혀 표시 했습니다. 즉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 도해 금지입니다. 이것은 일본 일부 학자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부속임을 표시했고 일본 태정관은 울릉도와 외 1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는 영토이니 명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외 1도는 독도라고 기록 되어 있고 태정관 문서에는 첨부지도가 있는데 기죽도약도에서 외 1도는 독도임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독도는 명백히 한국의 영토인데 몇가지 기록이 잘 못 표현 된 것을 트집 잡는다면 일본은 독도를 한국의 영토라고 표시했는데 왜 그것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모순이 아닙니까? 자신들은 증거도 없으면 고작 타국의 영토를 훔친 것을 명분으로 삼아 이미 무의한 시마네고시를 증거로 내세운다면 일본은 부끄러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명백히 불법 점거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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