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허위 Dokdo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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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허위

자료출처 :- 독도본부 http://www.dokdocenter.org/  
자료생성 :- 2011. 06.13.  독도본부
자료옮김 :- 임충섭 (쿠웨이트 정부치과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독도천연보호구역지킴이, 1문화재1지킴이)



한국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허위

Web다케시마문제연구소 2011.06.02

제1회 「일본은 예부터 다케시마(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日本は古くから竹島の存在を認識していました。)」(일본외무성)의 정당성
 
 올 4월, 한국의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은「일본이 모르는 독도의 진실 10가지」이라는 제목의 소론(小論)을 인터넷상에 공개하고, 한국 측의 다케시마(독도)연구 전반을 나타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허위」라 할 만한 내용으로, 역사적 근거도 없는 채 다케시마(독도) 불법점거를 계속하는 한국 측의 실태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이번에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이 「일본이 모르는 독도의 진실 10가지」을 발표한 배경에는 2008년 2월, 일본 외무성이 간행한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竹島問題を理解するための10のポイント)」라는 소책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2008년 4월, 동북아시아역사재단과 한국해양수산연구원 등이 반론을 시도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외무성의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중, 「1.일본은 예부터 다케시마(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1)에서는 한국 측이 다케시마(독도)를 조선시대의 우산도(于山島)라는 근거로 삼아 온 『동국문헌비고(東国文献備考)』의 기술은 개찬(改竄)되었던 사실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우산도=다케시마(于山島=竹島)」라는 전제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해 온 한국 측의 논거가 무너져, 한국 측에는 다케시마(독도)를 점거할 역사적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이 정리한 「일본이 모르는 독도의 진실 10가지」에서는 여전히 「우산도=다케시마」라는 전제로 논리를 추진해 후안무치(厚顔無恥)적인 일본비판을 되풀이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의 「일본이 모르는 독도의 진실 10가지」을 「한국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허위」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 의한 역사날조실태를 밝혀 다케시마(독도)문제가 왜 해결되지 못하는지, 그 배경을 밝히기로 했다.

 첫 번째 레포트가 되는 이번에는 외무성의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의 「1.일본은 예부터 다케시마(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를 거론하겠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은 일본 측의 주장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아래의 1~4를 근거로 「일본의 주장이 이렇기 때문에 잘못됐다」라고 하고 있다.

【요약】
「경위도선을 표시한 일본지도 중에 가장 대표적인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図)』(1779년) 등, 일본의 각종 지도와 문헌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측의 비판 1】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図)』는 개인이 만든 사찬(私撰)지도로 1779년 초판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본도와 같이 채색되지 않은 상태로 경위도선 밖에 그려져 있어, 도리어 일본영역 밖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 의한 역사날조】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은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가 사찬(私撰)  (시가집 등을) 개인이 편집함. 또는 그 책.
지도라는 것. 1779년 초판에서는 울릉도와 다케시마(독도)가 조선본토와 함께 채색되지 않고, 경위도선 밖에 그려져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역으로 이들을 근거로 울릉도와 다케시마(독도)를 「일본영역 밖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증거라 했다.

  그러나 이는 반론이라 할 수 없다. 중앙집권적인 사회체제역사를 지닌 조선반도에서는 국가권력을 통해 역사를 편찬하는 전통이 있어, 문헌적인 증거가 아닌 사찬 지도에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선입견으로『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앙집권체제에서 지방분권적인 사회체제로 이행된 일본에서는 국가가 역사를 편찬하는 수사(修史) 역사(歷史)를 편집(編輯)하여 엮음.
사업에 대한 전통이 10세기에 끊기고, 이후 근세가 되어 주자학비판과 국학이 일어남과 더불어 근대적인 역사연구기초를 확립했다. 이때, 문헌비판이 중시되어 주자학의 기본교재였던 주주(朱註) 논어 등, 사서에 관한 주자의 주석.
도 당연히 문헌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문헌비판이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있다. 그런 점에서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의 반론에는 문헌비판의 흔적이 없으며, 전근대적인 역사 감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이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를 해석하고,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울릉도를 조선령이라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무엇을 근거로 다케시마(竹島/欝陵島)와 마츠시마(松島/竹島=독도)를 그렸는지, 문헌을 들어 실증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가쿠보 세키스이의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에는 울릉도와 다케시마(竹島)가 그려진 힌트가 남겨져 있다.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의 울릉도에「見高麗猶雲州望隠州」와「다케시마 혹은 이소다케시마(竹島一云磯竹島)」라고 기록된 부기(付記) 덧붙여 적음. 또는 덧붙여 적은 것.
가 그것이다. 이 부기(付記)는 1667년, 사이토 호센(齋藤豊仙)가 편술한『은주시청합기(隠州視聴合記)』(「국대기(国代記)」)에 유래하며, 은주시청합기에는 울릉도가 일본령 북서쪽 한계라는 사실이 명기되어있다(註1).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이 문헌을 부기로 인용한 사실은 나가쿠보 세키스이도 사이토 호센과 마찬가지로 울릉도를 일본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사찬지도(私撰地図)」. 「채색되지 않은 상태」. 「경위도선 밖에 그려져」있다는 등, 근거에도 없는 억지이론을 늘어놓으며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울릉도와 다케시마(독도)를「일본영역 밖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는 건, 역사연구와는 무관한 행위다. 나가쿠보 세키스이는 부기를 통해 울릉도를 일본령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서는 나가쿠보 세키스이의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를 사찬지도라 단정 짓고 있지만, 1775년 3월,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의 서(序)를 쓴 시바 쿠니히코(柴邦彦)는 후에 막부 쇼헤이코(昌平黌) 쇼헤이자카 학문소[昌平坂学問所]를 말함. 1790년, 에도막부 직할의 교학기관・시설. 정식명칭은 「학문소(学問所)」로, 「쇼헤이코(昌平黌)」로도 불림.
의 교관이 된 시바노 리츠잔(柴野栗山) 에도시대의 유학자・문인이다. 이름은 쿠니히코(邦彦)로, 현재의 카가와현 출신.
으로, 나가쿠보 세키스이는 막부의 유명한 3 집안의 하나인 미토번(水戸藩)의 시강(侍講) 시강. 군주나 태자에게 학문을 강의함. 또는 그 사람.
이었다.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에 인용한 『은주시청합기』도 관명을 받은 마쓰에번(松江藩)의 사이토 호센가 편술한 것으로, 각각에 명확한 근거가 있다. 사찬(私撰)지도라는 딱지를 붙이고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자체를 봉인하려는 태도는 어이없다. 이 같은 전근대적인 역사 감각으로 다케시마(독도)문제를 논하는 한, 한국에서는 「한국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허위」세계에 매몰될 것이다.

 (註1)한국에서는 나고야대학의 이케우치 사토시(池内敏) 교수의 설에 따라, 『은주시청합기』(「국대기(国代記)」)의 「차주(此州)」를 오키섬(隠岐島)이라 하고 있지만, 이는 한문을 읽지 못하는 이케우치 씨에게 맹종하고 있는 것뿐이다. 『은주시청합기』에 대해서는 후에 논하겠다.

【한국 측의 비판 2】
나아가 일본의 관찬(官撰) 관찬. 국가 기관에서 편찬함. 또는 그 편찬물.
문서를 보면, 일본이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근대 일본의 외무성은『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国交際始末内探書)』(1870년)에서 「죽도(竹島/울릉도=鬱陵島)와 송도(松島/독도=独島)가 조선 부속이 된 사정」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 의한 역사날조】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은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를 읽기나 한 것일까. 외무성이 작성한「죽도(竹島/울릉도=鬱陵島)와 송도(松島/독도=独島)가 조선 부속이 된 사정」이라는 보고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무성으로부터 조선출장이라는 관명을 받고, 1870년에 제출한 사다 하쿠보(佐田白茅) 등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에는 13개의 조사항목이 있으며, 그 끝부분이 「竹島松島朝鮮附属に相成り候始末」이다. 그러나 사다 하쿠보 등은 이 복명(復命) 명령(命令) 받은 일을 집행(執行)하고 나서 그 결과(結果)를 보고(報告)함.
에서 「この儀、松島は竹島の隣島にて、松島の儀に付、これまでも掲載せし書留」가 없다고 했다. 이는 울릉도가 조선령이 된 기록은 확인할 수 있지만, 인근의 섬인 마츠시마(松島)가 조선령이 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 보고한 것이다. 마츠시마(松島)가 조선령이 된 기록이 없는 이상, 마츠시마는 조선령에 속하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사다 하쿠보 등이 조선을 조사했을 당시, 마츠시마는 조선령에 속하고 있었던 것일까. 작년 11월, 서울 시내에서 발견된 동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図)』(사본)와 『청구도(青邱図)』등에는 현재의 죽서(竹嶼)인 우산도는 그려져 있지만, 마츠시마(松島=竹島=독도)가 한국령이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지도와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측에서는 다케시마(독도)를 자국령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에 대해 일방적인 비판을 되풀이 하는 한국 측에겐 본래 다케시마(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자력이 없는 것이다.

【한국 측의 비판 3】
또한 일본의 해군성이 1876년에 발행한 「조선동해안도(朝鮮東海岸図)」와 같은 관찬지도도 독도를 한국영토로 포함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 의한 역사날조】

 해도(海図)는 항해에 필요한 수로의 상황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국경선을 나타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해도를 근거로 다케시마(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보다 해도와 함께 제작된 수로지(水路誌)에서 조선의 강역을「북위33도15분에서 북위42도25분, 동경124도30분에서 북위130도35분에 이른다(北緯三三度一五分より同四二度二五分、東経一二四度三〇分より同一三〇度三五分に至る)」(『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1979년 간행)고 명기하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가운데 동경131도55분의 다케시마(독도)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한국 측에서는 『조선수로지』에 리앙쿠르열암이 기록되어 있어, 이를 다케시마(독도)가 조선령이었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이는 일본해 안의 암초를 열거한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북해도의 오쿠시리섬(奥尻島)과 흑룡연안주(黒龍沿岸州)와의 사이에 있다고 여겨졌던 와이오다암(ワイオダ岩/북위42도14분30초, 동경137도17분)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역사지단은 스스로 논거로 삼은 문헌과 지도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측의 비판 4】
1877년, 일본의 최고행정기관인 태정관은 17세기말, 도쿠가와막부가 내린 울릉도도해금지조치를 토대로 “죽도(울릉도)외 1섬(독도) 건에 대해 일본은 관계가 없음을 명심하라(...伺いの趣、竹島(欝陵島)外一島(独島)の件に対し、日本は関係がないと心得よ)"는 내무성의 지사에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했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에 의한 역사날조】 

  한국에서는 1877년의 태정관지령에 「다케시마 외 1섬 일본과 관계없다(竹島外一島の儀、本邦関係これなし)」고 되어 있다면, 이를 문헌비판을 하지도 않은 채 현재의 울릉도와 다케시마(독도)로 해석했다. 이는 시마네대학(島根大学) 명예교수인 나이토 세이츄(内藤正中) 씨와 박병섭 씨의 설을 무비판적으로 따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 잘못된 해석은 모순되게도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이 「독도를 한국영토로 포함하고」있었다는 증거로 삼고 있는 일본 해군성의 「조선동해안도(朝鮮東海岸図)」(1876년)가 증명해주고 있다. 「조선동해안도」에는 파선(破線) 일정한 간격으로 띄어 놓은 선.
으로 그려진 죽도(竹島), 송도(松島), 그리고 현재의 다케시마(독도)가 되는 리앙쿠르암초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조선동해안도가 제작된 건 1876년, 태정관지령이 내려진 전년도이다. 태정관지령이 내려진 1870년대, 세계의 해도에는 실재하지 않는 다케시마(竹島=아르고노트섬)과 마츠시마(松島/다줄레섬・울릉도) 외에 현재의 다케시마(竹島=리앙쿠르암)가 그려져, 이를 지도로 통용되고 있었다. 해도에 다케시마(竹島=리앙쿠르암)가 실린 건, 1849년에 프랑스의 포경선인 리앙쿠르호가 이 섬을 발견하고 리앙쿠르암이라 명명하고 부터이다. 일본의 해도 및 지도는 이를 답습해 실재하지 않는 다케시마(竹島=아르고노트섬)와 마츠시마(松島=울릉도=欝陵島)가 그려져 있었다. 1877년의 태정관지령에「다케시마 외 1섬, 일본과 관계없다(竹島外一島の儀、本邦関係これなし)」로 되어 있는 다케시마 외 1 섬인 마츠시마(松島)는 이 실재하지 않는 아르고노트섬과 울릉도를 가리킨다. 이를 명확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이 논거로 내건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조선동해안도』인 것이다.

 동북아시아역사재단은 「태정관지령」을 근거로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닌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했다」고 하지만, 이 잘못된 주장이야말로「한국이 모르는 10가지 독도의 허위」중 하나인 것이다.


독도본부 2011.06.13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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