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史記 卷第五 新羅本紀 第五 에 백두산 관련 기록 白頭山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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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卷第五 新羅本紀 第五 에 백두산 관련 기록


자료출처
:- 한국사데이터베이 http://db.history.go.kr/front2010/srchservice/srcFrameSet.jsp?pSearchWord=%EB%B0%B1%EB%91%90%EC%82%B0&pSearchWordList=%EB%B0%B1%EB%91%90%EC%82%B0&pSetID=-1&pTotalCount=0&pSearchType=1&pMainSearchType=2&pQuery=%28BI%3A%28%EB%B0%B1%EB%91%90%EC%82%B0%29%29&pSearchClassName=&oid=&url=&method=&lang=&code=&searchword=&return=
자료입력 :- 2011년 3월 18일
자료옮김 :- 임충섭 (쿠웨이트 정부치과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독도천영보호구역지킴이, 1문화재1지킴이)

PS :- 아래의 설명중 '말갈 (靺鞨)
[註 002]' 관련 하여 [주 002]를 보세요


 三國史記  卷第五 新羅本紀 第五 에 백두산 관련 기록


  • 三國史記  卷第五 新羅本紀 第五
  • 선덕왕(善德王)
    • 十二年秋九月   당에 사신을 보내다  (643년 9월 미상 음력)


      .
      가을 9월에 (唐)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譯註 001] 말하기를
      “고구려와 백제가 저희 나라를 침범하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십 개의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두 나라가 군대를 연합하여 기필코 그것을 빼앗고자 장차 이번 9월에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희 나라의 사직(社稷)은 반드시 보전될 수 없을 것이므로 삼가 신하인 저를 보내서 대국(大國)에 명을 받들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약간의 군사를 내어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황제가 사신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대 나라가 두 나라로부터 침략받는 것을 매우 애닯게 여겨서 자주 사신을 보내 너희들 세 나라가 친하게 지내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는 돌아서자마자 생각을 뒤집어 너희 땅을 집어 삼켜서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 그대 나라는 어떤 기묘한 꾀로써 망하는 것을 면하려고 하는가?”라고 하였다. 사신이 대답하기를
      “우리 왕은 일의 형편이 궁하고 계책이 다하여 오직 대국에게 위급함을 알려서 온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황제가 말하기를
      “내가 변경의 군대를 조금 일으켜 거란 (契丹) [註 001] 말갈 (靺鞨) [註 002] 을 거느리고 요동 (遼東) [註 003] 으로 곧장 쳐들어가면 그대 나라는 저절로 풀려서 1년 정도의 포위는 느슨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군대가 없음을 알면 도리어 침략을 멋대로 하여 네 나라가 함께 소란해질 것이니, 그대 나라도 편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계책이다. 나는 또한 너에게 수천 개의 붉은 옷과 붉은 깃발을 줄 수 있는데, 두 나라의 군사가 이르렀을 때 그것을 세워서 진열해 놓으면 그들이 보고 우리 군사로 여기고 반드시 모두 도망갈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계책이다. 백제국은 바다의 험난함을 믿고 병기(兵器)를 수리하지 않고 남녀가 어지럽게 섞여서 서로 즐기며 연회만 베푸는데, 내가 수십 수백 척의 배에 군사를 싣고 소리없이 바다를 건너서 곧바로 그 땅을 습격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대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웃 나라의 업신여김을 받게 되고, 임금의 도리를 잃어서 도둑을 불러들이게 되어 해마다 편안할 때가 없다. 내가 왕족 중의 한 사람을 보내 그대 나라의 왕으로 삼되, 자신이 혼자서는 왕노릇을 할 수 없으니 마땅히 군사를 보내서 호위하게 하고, 그대 나라가 안정되기를 기다려서 그대들 스스로 지키는 일을 맡기려고 한다. 이것이 세 번째 계책이다. 그대는 잘 생각해 보라. 장차 어느 것을 따르겠는가?”라고 하였다. 사신은 다만
      “예”라고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황제는 [그가] 용렬하여 군사를 청하고 위급함을 알리러 올 만한 인재가 아님을 탄식하였다.
      내몽고 흥안령(興安嶺) 기슭의 송막(松漠) 지역에서 발흥한 민족으로, 글안·계단으로도 기록되었다. 거란의 계통에 대해서는 퉁구스족설, 동호족설, 선비족설, 몽골족설, 몽골과 퉁구스의 혼합족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이 중에서 우문(宇文)·고막해(庫莫奚)와 함께 선비(鮮卑)로부터 나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유목을 위주로 하다가 점차 농업을 병행하게 되었으며, 주변 강대 민족의 성쇠에 따라서 변동을 겪었다(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494쪽).
      만주(滿洲) 지역에 거주하였던 퉁구스족의 일종이다. 말갈은 중국의 선진(先秦)대에는 숙신(肅愼)으로, 한(漢)대에는 읍루(挹婁)로, 북위(北魏)대에는 물길(勿吉)로 불리다가 당(唐)대에 말갈(靺鞨)로 불리게 되었다. 말갈족은 송화강(松花江)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혼동강(混同江) 남쪽으로 백두산 ( 白頭山 )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였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비로소 중국과 교통하였고, 당나라 고조(高祖) 무덕(武德 : 619∼626) 이후에 말갈로 총칭되었다. 본래 7부(部)로 나뉘어져서 각각 추장이 통솔하였으나 당나라 초기에 7부 중에서 흑수(黑水)를 중심으로 한 흑수말갈(黑水靺鞨)과 속말수(粟末水)를 중심으로 거주하던 속말말갈(粟末靺鞨) 2부가 강성하였다(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598쪽).
      중국의 요하(遼河) 동쪽 지역을 말한다. 중국의 진(秦)대 이후에 여러 왕조에서 이곳에 요동군(遼東郡)을 설치하였다. 고구려의 광개토왕(廣開土王)대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으나,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 당(唐)나라에서 이곳에 요주(遼州)를 설치하여 군(郡)이 폐지되었다(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433쪽).
      주제분류
      정치>외교>사신>파견·영접
      정치>외교>사신>사절활동
      색인어
      <지명> 요동 <국명> 당, 거란, 말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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