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현판과 주련-덕수궁_중화전 단오첩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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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현판과 주련-덕수궁_중화전 단오첩


자료출처
:- 문화재청 http://mail3.nate.com/?go_url=viewmail&mboxid=10&msgid=4874&un=0
자료입력 :- 2011년 03월 07일   문화재청 / 
자료옮김:- 임충섭 (쿠웨이트 국립치과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독도천연보호구역지킴이, 1문화재1지킴이)


[궁궐의 현판과 주련-덕수궁_중화전 단오첩]
작성자문화재청
작성일2011-03-07 조회수

 

 

 

 

5. 단오첩端午帖

 

 

 

 

2-j-1 중화전中和殿의 단오첩

 

 

위치와 연혁 :중화전 외부에는 주련이 없고, 내부 기둥에 시를 직접 써서 붙인 종이가 15개 있다. 이는 단오첩(端午帖)으로, 단옷날 신하들이 지어 올린 축시(祝詩)이다. 글씨의 정확한 작성 연도는 알 수 없으나,시에 나오는 작자의 경력이나 관직,그리고 ‘황제(皇帝)’ 등의 어구로 미루어 광무(光武)~융희(隆熙) 연간(1897~1910년)으로 추정한다.
중화전 단오첩 15건은 대련(對聯)으로 되어 있는 일반 형식의 주련(柱聯)이 아니라 종이에 시 한 편씩을 써 붙여 놓은 것이다. 또한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종이가 찢겨져 나가 원문의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곳도 많다. 그러나 궁궐에 남아 있는 글로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큰 바, 판독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해석했다.
이 책에 나오는 중화전 단오철의 판독과 해석은 이정섭 문화재 전문 위원의 연구 자료를 대부분 그대로 이용하고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역자는 전각 안 기둥에 붙어 있는 이 글씨들 가운데 훼손되어 판독이 어려운 곳은 같은 내용의 시를 상호 참고하여 보완하기도 했고, 더러는 역자가 의미나 운자로 미루어 추정으로 보완하며 변역했다. 이런 한자들은 시 원문에 괄호를 넣어 따로 표시해 두었다.

 


뜻풀이 : (1)

(1) 今日天中節(금일천중절)
오늘은 오월 오일 천중절인데

靈符繞臂斜(영부요비사)
영묘한 부적 팔을 둘러 비껴 있네.

(3) 楚棕蒸艾葉(초종증애엽)
초나라 종(棕) 쑥잎에 싸서 찌고

(4) 堯酒泛昌華(요주범창화)
요(堯)임금 술 창포에 빚어 둥둥 뜨네.

(5) 原任 奎章閣直學士臣徐肯淳製 進(원임 규장각직학사신서긍순제 진)
원임(原任) 규장각 직학사(奎章閣直學士) 신 서긍순(徐肯淳)이 지어 올림

 

 

천중절 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기구(起句)에 나오는 천중절은 음력 5월 5월 오시(午時)로, 단오절(端午節), 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중국 전국 시대의 초나라 충신 굴원(屈原, 기원전 343?~277?년)이 회왕(懷王, 재위 기원전 328~296)에게 간하다가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멱라수(汨羅水)에서 투신 자살했는데, 그 날이 5월 5일이었다. 그 뒤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단오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단(端)’은 시작, ‘오(午)’는 오(五), 곧 다섯 이란 뜻으로, 단오는 초닷새[初五日]를 뜻한다.
전구(轉句)에 나오는 초나라의 종은 떡을 말한다. 찰기장이나 찹쌀을 댓잎이나 갈잎에 싸서 찐 음식으로, 굴원을 추모하기 위해 단옷날 종을 강물에 던져 넣는 풍습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음식점에서 이 떡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각서(角黍)'라 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주악’이라 한다. 단옷날에는 쑥[艾]을 뜯고 창포탕(菖蒲湯)에 머리를 감았으며, 궁중에서는 애호(艾虎: 쑥 호랑이)나 단오 부채 등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주기도 했다.
시를 지은 서긍순(敍肯淳, 1860~?년)은 조선 말 문신으로 본관은 대구이다. 형보(馨輔)에게 입양됐고, 1890(고종 27)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1894(고종 31)년 홍문관 부교리를 역임하고, 광무(光武) 연간에는 해서 검세관, 규장각 직학사, 비서 감승, 장례원 부경 등을 지냈다.

 


뜻풀이 : (2)

(1) 五蓂開莢影(오명개협영)
다섯 잎 된 명협풀 그림자 있고

(2) 百草▨▨▨(백초▨▨▨)
온갖 풀 (원문 3자 빠짐)..

(3) ▨▨歐陽帖(▨▨구양첩)
(원문 2자 빠짐) 구양 씨(歐陽氏)의 단오첩(端午帖)

(4) 敢忘規諫忱(감망규간침)
규간(規諫)하는 그 정성 감히 잊으랴.

(5) 原任奎章閣直學士臣徐肯淳製進(원임 규장각직학사신서긍순제 진)
원임 규장각 직학사 신 서긍순은 지어 올림.

 


첫 구절에 나오는 명협풀은 매월 1일부터 잎이 하나씩 나고, 16일부터는 잎이 하나씩 떨어진다고 하는 풀이다. 다섯 잎이 났으니 5일을 뜻한다.

 

 

 

뜻풀이 : (3)

(1) 中和殿裏瑞烟濃(중화전이서연농)
중화전 속 상서로운 안개 짙으니

(2) 長命朱絲獻九重(장명주사헌구중)
장수의 붉은 실 구중에 바치리.

(3) ▨▨▨▨鷄(午)報(▨▨▨▨계(오)보)
(원문 4자 빠짐) 닭은 낮 시각 알리고

(4) ▨▨花外轉淸鍾(▨▨화외전청종)
(원문 2자 빠짐) 꽃 밖에 맑은 종 들리네.

(5) (原任) 奎章閣直學士臣徐肯淳製進((원임) 규장각직학사신서긍순제 진)
원임 규장각 직학사 신 서긍순은 지어 올림.

 


뜻풀이 : (4)

(1) 佳節端陽瑞日長(가절단양서일장)
단양이라 좋은 계절에 상서로운 해 길기도 한데

(2) 江心寶鏡獻吾皇(강심보경헌오황)
강 가운데 진귀한 거울 우리 황제께 바치리.

(3) 如今風物多▨▨(여금풍물다▨▨)
오늘날 풍물은 (원문 2자 빠짐) 많은데

(4) ▨▨▨牽九棕香(▨▨▨견구종향)
(원문 3자 빠짐) 아홉 가지 종(棕) 향그롭네.

(5) 原任奎(章閣直)學士(臣徐肯淳製進)(원임 규(장각직)학사(신서긍순제 진))
원임 규장각 직학사 신 서긍순은 지어 올림.

 


뜻풀이 : (5)

(1) 殿閣微凉(日)正長(전각미량(일)정장)
중화전 모서리 서늘하고 해는 한창 길기도 한데

(2) 紅榴百子結天香(홍류백자결천향)
일백 알의 붉은 석류 천상의 향기이네.

(3) 八埏均在神功育(팔연균재신공육)
조선 팔도 고르게 신공(神功)의 기름 받았으니

(4) 聖德臣知체太陽(성덕신지체태양)
황제의 성덕(聖德) 태양과 같음을 알겠도다.

(5) 原任奎章閣直提學臣沈相薰製進(원임 규장각직제학신심상훈제 진)
원임 규장각 직제학(直提學) 신 심상훈(沈相薰) 은 지어 올림.

 


이 시는 뒤에 나오는 10, 12번 시와 같은 내용이다. 종이가 떨어져 나가 보이지 않는 부분은 10, 12의 시에서 보완해 번역했다.
시를 지은 심상훈(沈相薰, 1854~?)은 조선 말기 문신으로 자(字)는 순가(舜歌), 본관은 청송(靑松) 이다. 1874년(고종 11)에 문과에 급제했다. 임오군란(1882년) 때 청나라에 의존하던 수구당(守舊黨)의 일원으로, 당시 장호원(長湖院)에 은거하던 명성왕후 민비(閔妃, 1851~1895)에게 흥선대원군의 납치 소식, 왕궁의 근황 및 청·일 양국의 출병 사실을 알렸고, 1884년의 갑신정변 때는 개화당에 합세하는 척 가장해 개화당의 진상 등을 왕과 민비에게 밀통하기도 했다. 1893(고종 30)년 이조판서를 거쳐 이후 선혜청 당상(宣惠廳堂上), 탁지부 대신(度支部大臣)등을 지냈으나 보조(補助) 화폐를 주조해 유통 질서를 혼란시켰다는 이유로 1898년에 체직(遞職:벼슬 교체) 됐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뜻풀이 : (6)

(1) 梅子留黃頻送雨(매자유황빈송우)
매실 익을 무렵에 비 자주 보내 오고

(2) 芭(蕉)▨▨上窗紗(파(초)▨▨상창사)
파초는(원문 2자 빠짐) 창사(窓絲)에 솟았도다.

(3) ▨▨▨色長書帶(▨▨▨색장서대)
(원문 3자 빠짐) 길이 띠에 써서

(4) 時見閒官草詔麻(시견한관초조마)
한가한 벼슬아치 조칙(詔勅)을 때로 보리.

(5) 原任奎章閣學士臣李載克製進(원임 규장각학사신이재극제 진)
원임 규장각 학사(學士) 신 이재극(李載克)은 지어 올림

 


5월은 매실이 익는 달로 비가 자주 오는데,이 비를 황매우(黃梅雨)라 한다. 또한 5월은 매월 (梅月), 매하(梅夏), 매천(梅天)이라고도 부른다. 승구(承句)에 나오는 ‘창사(窗紗)’는 창위에 바른 얇은 비단을 말한다.
이재극(李載克,1864~?년)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다. 예조 판서 이연응(李沇應)의 아들로, 1879(고종 16)년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며, 임오군란 이후 민비의 국장 때 종척 집사(宗戚執事)를 맡았고, 1898년 흥선대원군의 상례(喪禮) 때 지문서 사관(誌文書寫官)을 담당했다. 국권 피탈 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南爵) 직위를 받고, 1919년 이왕직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한 친일파 인물이다. 매국노로 지목받아 암살 대상이 되었으나 면했다.

 


뜻풀이 : (7)

(1) 安榴方結子(안류방결자)
석류는 바야흐로 열매 맺고

(2) 堯삽自生凉(요삽자생량)
요삽은 저절로 서늘하네.

(3) 陽線正南緯(양선정남위)
태양은 바로 남쪽으로 가는데

(4) 王道日敍(長)(왕도일서(장))
왕도는 날로 장구히 펼쳐지리.

(5) 原任奎章閣學士臣李載克製進(원임 규장각학사신이재극제 진)
원임 규장각 학사 신 이재극은 지어 올림.

 


석류(石榴)는 서역(西域) 안석국(安石國)에서 왔다하여 안석류(安石榴), 안류(安榴), 석류 (石榴)라고 부른다. 요삽은 요(堯)임금 때 포주(庖廚: 푸줏간)의 뜰에서 났다는 상서로운 풀로, ‘삽’은 ‘삽보풀’을 말한다. 이는 얇은 풀로, 더운날 이 것으로 부채질을 하면 주위가 서늘해진다고 한다.

 


뜻풀이 : (8)

(1) 御墨騰飛白(어묵등비백)
어필(御筆)은 비백(飛白) 마냥 드날리고

(2) 工歌갱五絃(공가갱오현)
백관의 갱재가(갱載歌)는 오현금(五絃琴)에 오르네.

(3) 南風吹不息(남풍취불식)
남풍(南風)이 쉬지 않고 불어오니

(4) 群物自油然(군물자유연)
만물이 절로 왕성하게 일어나네.

(5) 原任奎章閣學士臣李載克製進(원임 규장각학사신이재극제 진)
원임 규장각 학사 신 이재극은 지어 올림.

 


비백(飛白)은 서법(書法)의 하나로, 한(漢)나라 채옹(蔡邕)이 만들었다. 필세(筆勢)가 날아 오는 듯한데, 살펴보면 글씨 중간이 비어 있다. 갱재가(賡載歌)는 가요(歌謠) 제목으로, 순(舜)임금과 고요(皐陶) 등이 그 가사를 창화(唱和)했는 내용이 『서경(書經)』「익직(益稷)」편에 나온다. 창화는 노래나 구호를 서로 이어가며 부르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유래해 임금이 시를 짓고 신하들이 화답한 시축(詩軸: 시를 적는 두루마리)을 갱재축(갱載軸)이라 한다.
남풍(南風)은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으로, 훈풍(薰風)이라고도 한다. 만물을 기르고 자라게 하는 바람이다. 순(舜)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타고 지었다는 남풍시가 유명한데,이는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이 부유함을 칭송한 노래다.

 


뜻풀이 : (9)

(1) (시 원문은 훼손돼 전혀 보이지 않는다.)

(2) (原任) 奎章閣直提學臣沈相薰(製進)((원임) 규장각직제학신심상훈(제 진))
원임 규장각 직제학 신 심상훈은 지어 올림.

 


뜻풀이 : (10)

(1) 殿閣微凉日正長(전각미량일정장)
중화전 모서리 서늘하고 해는 한창 길기도 한데

(2) 紅榴百子結天香(홍류백자결천향)
일백 알의 붉은 석류 천상의 향기이네.

(3) 八埏均(在神功育)(팔연균(재신공육))
조선 팔도 고르게 신공(神功)의 기름 받았으니

(4) (聖)德臣知체太陽((성)덕신지체태양)
황제의 성덕(聖德) 태양과 같음을 알겠도다.

(5) (原任) 奎章閣直提學臣沈相薰製進((원임) 규장각직제학신심상훈제 진)
원임 규장각 직제학 신 심상훈은 지어 올림.

 


이 시는 이 책의 앞 부분 (5), 뒷부분 (12)와 같은 시로, 종이가 떨어져 나가 보이지 않는 부분은 상호 참고해 보완했다.

 


뜻풀이 : (11)

(1) 仙釀昌蒲綠醱배(선양창포록발배)
신선이 빚어놓은 푸르스름한 창포의 술을

(2) 恣人酌取漢江來(자인작취한강래)
사람이 한강에서 마음대로 길어오네.

(3) 千(回萬度端)陽日(천(회만도단)양일)
천 번 만 번 돌아오는 5월 5일 단양절에

(4) 長奉(南箕)北斗杯(장봉(남기)북두배)
남기(南箕)와 북두(北斗)처럼 장수 축배 올리리.

(5) 侍講院侍讀▨▨▨製進(시강원시독▨▨▨제 진)
시강원 시독(侍講院侍讀)(원문에 몇 자 빠짐)지어 올림.

 


중화전 주련 가운데 시강원 시독이 지어 올린 송시(頌詩)는 이 시와 뒤의 (14)에 나온 시까지 모두 두 편으로 내용은 같다. 이 시에서 종이가 떨어져 나가 보이지않는 부분은 뒤의 시를 참고해 보충했다. 그러나 낙구(落句)에 나오는 ‘남산(南山)’는 (14)의 시에서도 같은 부분이 떨어져 나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14)의 시에서 남은 부분을 보면 '남산'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북두(北斗)와 함께 장수를 축원할 때 흔히 쓰는 어구임을 미루어 떨어져 나간 부분을 ‘남산’으로 추정해 넣었다. 두 시 모두 작자의 성명 부분은 떨어져 나가 누구의 작품인지는 알 수 없다.

 


뜻풀이 : (12)

(1) 殿閣微凉日正長(전각미량일정장)
중화전 모서리 서늘하고 해는 바로 길기도 한데

(2) 紅榴百子結天香(홍류백자결천향)
일백 알의 붉은 석류 천산의 향기이네.

(3) 八埏均在神功育(팔연균재신공육)
조선 팔도 고르게 신공(神功)의 기름 받았으니

(4) (聖德)臣知체太陽((성덕)신지체태양)
황제의 성덕 태양과 같음을 알겠도다.

(5) 原任奎章閣直提學臣沈相薰製進 (원임 규장각직제학신심상훈제 진)
원임 규장각 직제학 신 심상훈은 지어 올림.

 


뜻풀이 : (13)

(1) 宮裏無楹不頌詩(궁리무영불송시)
궁궐 안엔 송축시(頌祝詩) 붙이지 않은 기둥 없고

(2) 榴紅蒲綠午陰遲(류홍포록오음지)
석류 붉고 창포 푸르니 낮 그늘 더디구나.

(3) 彤墀是日頒新(삽)(동지시일반신(삽))
궁전(宮殿)에는 이날에 새 부채 내려 주니

(4) 聖德如風▨▨▨(성덕여풍▨▨▨)
황제의 성덕 바람과 같아 (원문 3자 빠짐).

(5) 原任奎章閣學士臣朴齊純製進 (원임 규장각학사신박제순제 진)
원임 규장각 학사 신 박제순(朴齊純)은 지어 올림.

 

 

 

시를 지은 박제순(朴齊純,1858~1916년)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평재(平齋)다. 1883(고종 2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부교리·동부승지 등을지냈고, 1886년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 참의·예조 참판·한성부윤 등을 지냈다. 외부 대신으로 재직할 때 청나라 등 외국과의 통상 조약을 체결하고 외교 문제도 다뤘고, 1905년 외부 대신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규탄받았다.
그 후 의정 대신을 거쳐, 1909년 이완용이 저격당한 뒤에는 임시 내각 총리 서리를 지냈다. 국권 피탈 후 일제로부터 자작(子爵)을 받고, 중추원 고문을 지냈으며, 윤덕영(尹德榮) 등과 함께 교육 진흥과 위생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관진방회(觀進坊會)를 조직해 회장직을 맡았다. 서예에 능했다.

 

 

 

뜻풀이 : (14)

(1) 仙釀昌蒲綠醱배(선양창포록발배)
신선이 빚어놓은 푸르스름한 창포의 술을

(2) 恣人酌取漢江來(자인작취한강래)
사람이 한강에서 마음대로 길어오네.

(3) 千回萬度端陽日(천회만도단양일)
천 번 만 번 돌아오는 5월 5일 단양절에

(4) 長奉(南箕)北斗盃(장봉(남기)북두배)
남기(南箕)와 북두(北斗)처럼 장수 축배 올리리.

(5) (侍講院)侍讀▨▨▨製進((시강원)시독▨▨▨제 진)
시강원 시독(원문에 몇 자 빠짐)지어 올림.

 


뜻풀이 : (15)

(1) 洞闢重門嚮正陽(동벽중문향정양)
겹문을 활쫙 여니 정양(正陽)을 향하는데

(2) 南山山色萬年(長)(남산산색만년(장))
남산의 산 빛깔은 만년토록 영원하리

(3) ▨▨▨▨▨▨▨
(원문 7자 빠짐)

(4) ▨▨之明照四(方)(▨▨지명조사(방))
(원문 2자 빠짐) 밝음은 사방에 비추리

(5) (原任奎)章閣學士臣朴齊純製進 (원임 규)장각학사신박제순제 진)
원임 규장각 학사 신 박제순은 지어 올림

 


위 시에서 승구(承句)의 끝자인 '장(長)'과 낙구(落句) 끝자인 '방(方)'의 경우, 원문에서는 종이가 떨어져 나가 판독이 불가능하나 운(韻)이나 의미상 통할 듯해 보충하여 번역했다.

 

제작 정보 : 앞에 나온 15건의 시는 작자의 관등 성명이 밝혀져 있다. 15건 가운데 서긍순의 시가 4수, 심상훈의 시가 4수인데, 심상훈의 시 가운데 3수는 같은 것이다. 또 이재극의 시가3수, 박제순의 시가 2수, 시강원 시독의 시가 2수인데, 시강원 시독의 시2수는 같은 것이다. 이 시들을 지은 이들은 모두 친일 인물로, 그 가운데는 매국노로 지탄 받는 사람도 있으며, 특히 박제순(朴齊純)처럼 을사오적(乙巳五賊)도 있다. 하여 한편에서는 중화전에 붙어 있는 이들의 글씨를 비판하기도 하나, 다른 한편에서는 부끄러운 역사지만 오늘날까지 궁궐 기둥에 붙어 있는 글씨이고, 특히 이 시들은 군왕의 장수나 국가의 홍복을 기원한 내용이며, 친일 어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보존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3]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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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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