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연경당 권역 2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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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연경당 권역 2


자료출처
:- 문화재청  
http://cha.korea.kr/gonews/branch.do?act=detailView&dataId=155696790&sectionId=ocp&type=news&currPage=1&flComment=1&flReply=0
자료입력
:- 2010-11-01 오후 04:43  문화재청
자료옮김:- 임충섭 (쿠웨이트 국립치과병원, 독도KOREA홍보위,  독도천연보호구역 지킴이,1문화재1지킴이)


문화재 향기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연경당 권역 2]
2010-11-01 오후 04:43








10-h-4 수인문修仁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의 안채 정문이며 장락문을 들어서면 서쪽에 있다.장양문이 남성의 공간인데 비해 수인문은 여성의 공간이어서 행랑채와 높이가 같은 평대문이다. 일부 해설서에서 장양문은 솟을대문으로 높이 세우고 수인문은 평대문으로 세운 것에 대해 조선의 남존여비 사상 때문이라고 하고 있으나, 이는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여성은 초헌을 탈 일이 없으므로 굳이 솟을대문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며, 실생활에서의 기능에 따라 문의 높이를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뜻풀이 : ‘수인(修仁)’은 ‘인(仁)을 닦는다’는 뜻이다.인(仁)은 『논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한 공자의 핵심 사상이다.



제작 정보 : 현판의 글씨 중 ‘修(수)’자는 통용자인 ‘脩(수)’자로 썼다.





10-h-5 청수정사淸水精舍


 

위치와 연혁 : 연경당의 동쪽 행각이다.


뜻풀이 :
‘청수정사(淸水精舍)’는 ‘맑은 물이 두르고 있는 정사’라는 뜻이다.‘정사(精舍)’는 ‘학문을 강론하는 집’ 또는 ‘정신을 수양하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밖에 절이라는 의미로도 널리 쓰이지만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10-h-6 선향재善香齋



위치와 연혁 :
연경당 동쪽에 있는 14칸짜리 건물로 책들을 보관하고 책을 읽는 서재이다. 가운데 큰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면에 설치한 차양이 다른 건물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뜻풀이 :‘선향재(善香齋)’는 ‘좋은 향기가 서린 집’이라는 뜻이다.책을 보관하던 곳이기에 좋은 향기란 책 향기를 가리킨다.






10-j-6 선향재善香齋의 주련
 

뜻풀이 :

(1) 道德摩勒果(도덕마륵과)

도덕은 마륵(摩勒)의 과일이요,

(2) 文章鉢曇花(문장발담화)

문장은 우담바라의 꽃이로다.
 

황금 과일처럼 고귀한 도덕과 우담바라 꽃처럼 진귀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도덕과 문장을 갖춘 사람을 찬양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마륵은 금중에서도 가장 훌륭하다는 자마금(紫磨金)을 말한다. 우담바라는 불교에서 전륜성왕(부처)이 나타날 때 핀다는 상상의 꽃이다. 우담바라는 한자로는 優曇婆羅, 優曇波羅, 優曇跋羅華, 優曇鉢華, 優曇華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한다.

 


 

(3) 張子野詞伯(장자야사백)

장자야(張子野)는 사(詞)에 뛰어난 문인이고,

(4) 李將軍?師(이장군화사)

이장군(李將軍)은 그림에 특출한 화가로다.

 

사에 뛰어났던 장선(張先, 990~1078년)과 그림에 뛰어났던 이사훈(李思訓,651~716년)을 찬양한 표현이다. 장자야는 송나라 사람인 장선을 가리키는데, 사(詞)에 뛰어나서 남조 때의 유운(柳?, 465~517년)에 비견되었다. 당나라 화가 이사훈은 벼슬이 우무위대장군(右武衛大將軍)에 올랐으므로 대리장군(大李將軍)으로 불렸고 그의 아들 이소도(李昭道) 역시 산수화에 능하여 소리장군(小李將軍)으로 불렸다. 이들 부자는 북종화(北宗?)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또는 이들처럼 뛰어난 문인이나 화가를 비유적으로 칭찬하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5) 汝南尋孟博(여남심맹박)

여남(汝南) 땅으로 맹박(孟博)1)을 찾아가고,

(6) 高密訪康成(고밀방강성)

고밀(高密) 땅으로 강성(康成)을 방문한다네.

 

후한(後漢)의 명사인 맹박, 즉 범방(范滂, 137~169년) 2)이나 강성, 즉 정현 3)과 같은 훌륭한 학자를 그들의 고향으로 찾아가서 만나고 교유(交遊)하고 싶은 소망을 나타내었다. 하남성 여남 지방은 범방뿐 아니라 진번(陳蕃)·설포(薛包)·황헌(黃憲)·원안(袁安) 등과 송나라 때 범중엄(范仲淹, 989~1052년)·주돈이 등의 명사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산동성 고밀은 정현의 고향이다.



 

(7) 細讀斜川集(세독사천집)

사천(斜川)의 문집을 세밀히 읽고,

(8) 新烹顧渚茶(신팽고저다)

고저(顧渚)의 차를 새로 달이네.
 

독서하며 차를 마시는 담박(淡泊)한 생활을 읊었다. 사천은 송나라 때 문인 소식의 아들인 소과(蘇過, 1072~1123년)의 호이다. 하남성 허창현(許昌縣)의 지명이기도 한데, 소과가 여기에 살아서 호로 삼았다. 고저는 절강성 장흥현(長興縣)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차의 명산지인데 이 곳에서 난 ‘고저차(顧渚茶)’가 유명하다.

 

제작 정보 : 송나라 시인 육유 4)의 칠언율시 「재중농필우서시자율(齋中弄筆偶書示子聿)」<원전 1>에서 함련(?聯)의 앞 두 글자씩을 생략한 것이다. 거의 모든 주련은 원래 시의 구절을 그대로 따 온 것이 일반적인데, 이처럼 7언시를 줄여서 5언시로 만든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점이다.


 

(9) 養竹不除當路筍(양죽불제당로순)

대 기르기 좋아하여 길에 자란 죽순도 베지 않고,

(10) 愛松留得?門枝(애송류득애문지)

솔을 사랑해 문 가린 가지도 남겨 두었네.

 

자연을 사랑하여 인위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 천연스런 삶을 읊었다. 당나라 승려 관휴(貫休, 832~912년) 5)의 「산거시(山居詩)」 이십사 수(二十四首)<원전2> 중 제 8수의 함련에서 따온 구절이다. ‘門(문)’은 대부분의 문헌에 ‘人(인)’으로 되어 있다.

경복궁의 함화당에도 같은 문구의 주련이 있다.



 

(11) 史編作鑑推君實(사편작감추군실)

역사를 편찬함은 『자치통감(資治通鑑)』6)을 지은 사마군실(司馬君實)을 추대하고,

(12) 賦筆凌雲擬子虛(부필능운의자허)

부(賦) 짓는 솜씨는 구름을 뛰어넘는 기상의 자허(子虛)에게 비기네.
 


앞의 구절은 『자치통감』을 지은 송대(宋代)의 명신 사마광(司馬光, 1019~1086년)이 역사의 대가로 추앙을 받는다는 뜻이며, 뒤의 구절은 사부(辭賦)
7)를 짓는 문장 솜씨가 한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8년)와 같은 문장의 대가에 견줄 만하다는 뜻이다. 군실은 사마광의 자이다. 자허는 사마상여가 지은 「자허부(子虛賦)」에 나오는 인물인데, 여기서는 사마상여를 가리킨다. 구름을 뛰어 넘는 기상이라는 것은 사마상여가 「대인부(大人賦)」를 지어 바쳤을 때 천자가 크게 기뻐하면서 “구름을 타고[凌雲] 훨훨 날아오르는 기상이 있도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원전 3> 뒤 구절의 문맥으로 보아 앞 구절도 사마광처럼 역사에 뛰어난 인물을 견주어 칭찬하는 것이다.

 

 

(13) 瀑布之餘雲盡水(폭포지여운진수)

폭포의 밖에서는 구름이 온통 물이 되고,

(14) 茯?其上樹交花(복령기상수교화)

복령(茯?)의 위에서는 나무가 꽃과 어울렸네.

 

거대한 폭포의 주변에 물보라가 일어 구름을 형성하고 그 구름이 또 물방울로 화하는 모습과, 뿌리에 복령이 난 나무가 우뚝 서서 꽃을 피운 모습을 표현하였다.

복령은 버섯의 일종으로 소나무를 벤 뒤 5~6년이 지나면 그 뿌리에서 자란다. 『회남자』 「설산(說山)」 편에서는 “천 년 된 소나무 밑에는 복령이 있다(千年之松, 下有茯?).”고 하였다. 웅장하고 신비한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한 구절이다.

 


(15) 却對眞山看?圖(각대진산간화도)

문득 진짜 산을 대하니 그림을 보는 듯하도다.


실제의 산을 눈 앞에 보니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말이다. 송나라 시인 정구(程俱, 1078~1144년)의 시 「희제화권(戱題?卷)」의 함련 중 한 구절이다.<원전 4>

짝이 되는 앞 구절은 분실되었다. 분실된 앞 구절은 다음과 같다.

 

如今掃迹長林下(여금소적장림하)

이제야 깊은 숲 아래서 속객 자취 쓸어버리고,






10-h-7 우신문佑申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사랑채의 북쪽 담장에 있는 문이다.

 

뜻풀이 :‘우신(佑申)’은 ‘돕기를 거듭한다’는 뜻이다.‘신(申)’은 ‘거듭’이라는 의미이다. 즉 하늘이 나라를 돕기를 거듭한다는 말이다. ‘우신(佑申)’이 단어로 독립되어 쓰인 용례는 문헌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우나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그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예조참판 서명응(徐命膺, 1716~1787년) 8)이 상소하여 「천우 오장(天佑五章)」의 시(詩)를 올렸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순 임금은 오십에도 부모를 생각하였는데, 우리 임금은 지금 팔십에도 사모하신다. 하늘이 내려 보시며, 도우심을 거듭하도다[保佑申申]. 거듭 도우시는 것은 무엇인가? 긴 눈썹으로 천년을 장수하시는 거라네. 남쪽에 남극성이 있어, 우리 동방(東方)을 비추도다. 붉은 대궐 뜰에 임하여 빛을 발하니 아름답고 빛나서 그 상서로움이 밝도다. 상서로움이란 무엇인가? 만수무강하심이로다.’ 라고 하였다.”<원전 5>






10-h-8 통벽문通碧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안채에 있는 반빗간(부엌)으로 가는 문이다.



 

뜻풀이 : ‘통벽(通碧)’은 ‘푸른 곳으로 통한다는 뜻이다.여기서 ‘벽(碧)’의 의미는 ‘벽산(碧山, 푸른 산)’이나 ‘벽성(碧城, 신선이 산다는 성)’ 등이 될 수 있는데, ‘벽산’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부엌으로 가는 문이라는 기능에 비추어 보면 이름과 어울리지 않으며 따라서 이 문은 기능과는 상관없이 일반적인 관례대로 전아(典雅)한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0-h-9 태일문太一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사랑채 뒤로 가는 문이다.농수정(濃繡亭)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앞 쪽에 있는 일각대문이다.

 

뜻풀이 : ‘태일(太一)’은 도가적(道家的) 용어로서 ‘우주 만물의 본원’이라는뜻이며 ‘도(道)’와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장자(莊子)』 「천하(天下)」 편에서“관윤(關尹)과 노담(老聃) 9)은 그 기풍을 듣고 기뻐하여 항상한 허무의 도를 세우고 태일(太一)이라는 절대의 도를 주로 삼았다.”<원전 6>라고 하였다. 당나라 성현영(成玄英, 601?~690년) 10)은 태일을 “‘태(太)’는 광대하다는 명칭이고‘일(一)’은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지칭한다. 큰 도가 넓고 아득하여 둘러싸지 않음이 없으며 만물을 담아서 통하여 하나가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태일이라고 한다.”<원전 7>라고 풀이하였다. 『여씨춘추(呂氏春秋)』 11)「대악(大樂)」 편에서는 “도라는 것은 지극히 정밀하여서 형체를 지을 수도 없고 이름할 수도 없다. 억지로 이름한다면 태일이라고 한다.”<원전 8>라고 하였다.






10-h-10 정추문正秋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안채 동문에서 사랑채로 가는 문이다.



 

뜻풀이 : ‘정추(正秋)’는 ‘한창 무르익은 가을’이라는 뜻으로, ‘중추(仲秋)’와 같은 말이다. 『주역』의 「설괘전(說卦傳)」 12)에서 ‘태(兌; )’괘를 설명하며 “태는 바로 가을이니, 만물이 기뻐하는 바이므로 ‘태에 기뻐한다’고 하였다.”<원전 9>라고 하였다.






10-h-11 소양문韶陽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사랑채의 동문이다.
 

뜻풀이 : ‘소양(韶陽)’은 ‘밝고 아름다운 봄빛’이라는 뜻이다.






10-h-12 태정문兌正門

 


위치와 연혁 :
연경당 안채에 있는 서행각(西行閣)의 가운데 문이다.

 

뜻풀이 : ‘태정(兌正)’은 ‘곧고 바르다’는 뜻이다. ‘태(兌)’는 ‘곧다’, ‘통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주역의 괘 이름이기도 하여 방위로는 서쪽을 나타내는데, 이 문이 서행각에 있으므로 방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태정’은 왼쪽의 정추문의 뜻풀이에서 든 용례에서와 같이 “태는 바로 가을이다[兌正秋也]”라는 표현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10-h-13 소휴문紹休門
 



위치와 연혁 :
농수정의 동문이다.

 

뜻풀이 :‘소휴(紹休)’는 ‘아름다움을 이어 받는다’는 의미이다. 『한서(漢書)』13)「무제기(武帝紀)」에는 “집사에게 조서를 내려 청렴한 이를 흥기시키고 효자를 천거하여 거의 풍속을 이루어 성인의 훌륭한 업적을 이어받았다.”<원전 10>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주석에서 안사고(顔師古, 581~645년) 14)의 말을 인용하여 “휴(休)는 아름답다는 뜻이고 서(緖)는 업적이라는 뜻이므로 이는 선대 성인의 아름다운 업적을 이어받는다는 말이다.”<원전 11>라고 풀이했다.






10-h-14 농수정濃繡亭


 

위치와 연혁 : 연경당의 동쪽 돌계단 위에 지은 정자이다.겹처마 네모지붕으로 꼭대기에 절병통 15)이 꽂혀 있다. 정면 측면이 각 1 칸씩이고 완자[卍字] 무늬의 사분합(四分閤) 16)문으로 구성하여 모두 들어 올릴 수 있게 했다.




 
 

뜻풀이 :‘농수(濃繡)’는 ‘짙은 빛을 수놓는다.’는 의미이다.연경당의 구석 깊숙이 자리하여 녹음에 둘러싸인 풍경을 표현한 이름이다.






10-j-14 농수정濃繡亭의 주련



 

뜻풀이 :

(1) 五色天書詞絢爛(오색천서사현란)

오색의 임금 조서(詔書)는 글이 아름답게 빛나고,

(2) 九重春殿語從容(구중춘전어종용)

구중궁궐 봄 전각(殿閣)에는 말씀 조용하시네.

 

임금이 나라의 일을 훌륭히 수행하고, 태도나 행실에서도 모범을 보이는 것을 찬양하고 있다. 임금은 언행이 진중하고 과묵한 것을 미덕으로 보았다. 고려 시대의 김부식(金富軾, 1075~1151년)의 「등석(燈夕; 관등절 저녁에)」이라는 시에 “임금께선 공손·과묵하고 음악과 여색을 멀리 하시니 / 궁녀들아 온갖 패물로 치장함을 자랑하지 말라.”<원전 12>라는 표현이 있다.


 

(3) 春水方生華來鏡(춘수방생화래경)

봄 물은 막 불어나고 꽃은 거울에 비쳐오니,

(4) 吾廬可愛酒滿床(오려가애주만상)

내 오두막 사랑스럽고 술은 상에 가득하네.

 

봄을 맞아 불어난 물이 화사하게 핀 온갖 꽃들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묘사하면서, 그 가운데 소박한 오두막집에서 술을 마시며 자족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노래하였다. ‘거울(鏡)’은 맑은 물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앞 구절은 도연명 17)의 작품으로 알려진 「사시(四時)」<원전 13>에서 ‘봄 물은 연못마다 가득하고’라고 한 표현을 응용했고, 뒤의 구절은 역시 도연명의 「독산해경(讀山海經; 산해경을 읽으며)」<원전 14>에서 ‘뭇 새들은 깃들 곳에 즐거워하고나 또한 내 집을 사랑하노라’, ‘즐거운 마음으로 홀로 봄 술을 마시며 정원의 채소 뜯어 안주를 한다’라고 한 것을 응용한 표현으로 보인다.



 

(5) 如斯嘉會知難得(여사가회지난득)

이 같은 좋은 모임을 얻기 어려움 알겠는데,

(6) 常駐詩人若有緣(상주시인약유연)

항상 머무는 시인은 마치 인연이나 있는 듯하네.

 

이처럼 아름다운 모임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여기에 항상 머무는 시인은 마치 인연이나 있는 듯 그런 아름다운 모임을 만나 무척 기쁘다는 뜻이다.

 

 

(7) 漢魏文章多古質(한위문장다고질)

한(漢)·위(魏)의 문장은 예스럽고 질박한 맛이 많으며,

(8) 春秋風日長精神(춘추풍일장정신)

춘추(春秋)의 풍기(風氣)는 정신을 길러 주도다.

 

앞 구절은, 한나라·위나라 때의 문장은 수식과 기교가 적어 예스럽고 질박한 기풍이 많았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의 문예적 가치를 평가한 말이다. 다음 구절의 ‘춘추풍일(春秋風日)’은 ‘봄 가을의 날씨’라는 뜻이지만 앞 구절의 ‘한위문장(漢魏文章)’과 대구의 격이 잘 맞지 않아 ‘춘추(春秋)’를 역사서이자 경전인『춘추(春秋)』의 의미로, ‘풍일(風日)’은 ‘풍기(風氣)’의 의미로 풀었다. 즉 춘추필법(春秋筆法) 18)의 엄정한 기풍이 정신을 고양시켜 준다는 뜻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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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맹박은 범방의 자이고 강성은 정현의 자이다.

2)후한 환제(桓帝) 때 외척과 환관들이 결탁해 횡포와 정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범방은 이 때 청류당(淸流黨)의 편에서 정절을 지켜 이름이 높았다.

3)정현에 대해서는 1-h-1 돈화문 참조.

4)육유에 대해서는 7-j-1 낙선재의 주련 참조.

5)관휴는 당말 오대의 승려로 절강성 출신이다. 수묵화에 능했다. 꿈에 본 십육나한을 그렸는데, 그 형상이 매우 괴기해 ‘응몽나한(應夢羅漢)’이라고 불렸다.

6)『자치통감』은 편년체(編年體)의 대표적 역사서로서, 전국시대부터 오대까지 1362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했다.

7)사부는 초사(楚辭)형식에서 비롯된, 산문에 가까운 운문이다. 한 무제 때 사마상여 등이 궁정에 초청되어 활동하면서문학의 한갈래로서 중추적 지위를 얻었다.

8)서명응은 조선후기 학자이다. 북학파의 경향을 띠었다. 자는 군수(君受), 호는 보만재(保晩齋)·담옹(澹翁). 1759(영조35)년 왕명으로 악보를 집대성해 『대악 전보(大樂前譜)』『대악 후보』를 간행했다.

9)노담은 노자다.『장자』에서는 노담과 관윤을 하나의 학파로 보았다.

10)성현영은 당나라 태종 때 활동한 도가의 도사로, 장자를 풀이한 『주소(註疏)』를 썼다.

11)『여씨춘추』는 진 (奏)나라의 승상 여불위(呂不韋)가 빈객(賓客)을 모아 편찬하게 한 사론서(史論書)이다. 「대악」 편은 음악을 논한 장이다.

12)설괘전은 주역 팔괘의 성질과 방위, 자연 현상 등 상징하는 바를 설명한 글이다.

13)『한서』는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서이다. 기원전 3세기 한 고조에서 왕망(王莽, 기원전 45년~기원후 23년)까지 229년간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14)안사고는 중국 당나라 초기의 학자이다. 그는 『한서』의 여러 주석들을 집대성 해 주석을 달아 『한서』의 해석에 중요한 근거를 마련했다.

15) 절병통은 궁전이나 정자의 지붕마루 가운데에 세우는, 기와로 된 항아리 모양의 장식이다.

16)사분합문은 문짝이 넷으로 되어 좌우와 위아래로 여닫는 문을 이른다.

17) 도연명에 대해서는 9-h-1 기오헌 참조.

18)공자는 춘추를 정리하면서 자신의 시각에서 미묘한 필삭(筆削)을 가하였는데, 이를 춘추필법이라고 한다. 그 특징은 대의명분과 객관성을 엄중히 여기는 역사기록체라는 것이다.

 

 

<원전 1>육유, 「재중농필우서시자율」, “左右琴樽?不譁 放翁新作老生涯 焚香細讀斜川集候火親烹顧渚茶 書爲半?差近古 詩雖苦思未名家 一?殘日呼愁起 ??江城咽暮?.”

<원전 2>관휴, 「산거시」 이십사 수, 제 8수“心心心不住希夷, 石屋?岩?髮垂. 養竹不除當路筍, 愛松留得?人枝. 焚香開卷霞生?, 卷箔冥心月在池. 多少故人頭盡白, 不知今日又何之.”

<원전 3>『사기』,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飄飄有凌雲之氣.”

<원전 4>정구, 『북산집(北山集)』 「희재화권」,“五載京鹿白?鬚 丹靑遐想寄衡巫 如今掃迹長林下 却對眞山看?圖 ?中雲夢本無窮 合是人間老?工 常恨無因繼三絶 ?人拈筆寫胸中.”

<원전 5>『영조실록』 44년 9월 12일(丁酉),“禮曹參判徐命膺上疏, 進天佑五章, 詩曰, …(중략)…舜以五十, 后今八旬. 天監在下, 保佑申申. 申申伊何, 眉壽千春. 維南有極, 照我東方.載臨?庭, 載揚之光. 郁郁煌煌 昭厥禎祥. 禎祥伊何, 萬壽無疆.”

<원전 6>『장자』 「천하」, “關尹老聃聞其風而說之, 建之以常无有, 主之以太一.”

<원전 7>위 구절에 대한 성현영의 소(疏), “太者廣大之名, 一以不二爲稱. 言大道曠蕩, 無不制圍, 抱囊萬有, 通以爲一, 故謂之太一也.”

<원전 8>『여씨춘추』 「대악」, “道也者, 至精也,不可爲形, 不可爲名, 彊爲之, 謂之太一.”

<원전 9>『주역』 「설괘전」 제 5장. “兌, 正秋也,萬物之所說也, 故曰說言乎兌.”

<원전 10>『한서』 「무제기」 “深詔執事,興廉擧孝, 庶幾成風, 紹休聖緖.”

<원전 11>위 구절에 대한 안사고의 주석,“休美也, 緖業也. 言紹先聖之休緖也.”

<원전 12>김부식, 「등석」, “城闕沈嚴更漏長 燈山火樹璨交光 綺羅??春風細 金碧鮮明曉月凉華蓋正高天北極 玉爐相對殿中央 君王恭?疎聲色 弟子休誇百寶粧.”

<원전 13>「사시」,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峯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이 시는 도연명의 작품을 모은 문집인 『도정절집(陶靖節集)』에 실려 있어 오래 전부터 도연명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도연명의 작으로 실려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화가로 이름난 진(晋)나라의 고개지(顧愷之,345?~406년)의 작으로 비정하기도 했다.

<원전 14>도연명, 「독산해경(讀山海經)」, “孟夏草木長 繞屋樹扶疎 衆鳥欣有託 吾亦愛吾盧旣耕亦已種 時還獨我書 窮巷隔深轍 頗回故人車 欣然酌春酒 摘我園中蔬 微雨從東來 好風與之俱 汎覽周王傳 流觀山海圖 傘仰終宇宙 不樂復何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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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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