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지네다리에 관한 사연은? Stone Bridge of Medie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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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지네다리에 관한 사연은?

자료출처
:- NATE Q&A http://ask.nate.com/qna/view.html?n=6185431
자료생성 :- 
함께봐요 :-
자료옮김 :- 임충섭(쿠웨이트국립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1문화재 1지킴이 - 독도천연보호구역, 진천농다리)


임진왜란때 지네다리에 관한 사연은?

임진왜란때 지네다리에 관한 사연은?
| 07.11.23 11:45
답변 1 조회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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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용

임진왜란때 지네다리란 슬픈 사연이 있었다는데

 

정확하게 어떤 사연인지 알고싶습니다.

 

그 배경에대해서 알려주세요.

태그
지네다리 임진왜란

q8imcs님 답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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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답변
07.11.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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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내용

진천농교

진천 들을 가로지르는 미호천과 그 가지내인 백곡천은 유구하게 만성(萬姓)을 길러온 지령(地靈)의 젖줄입니다. 농자의 마음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하고 지평(地平)에 점점이 곡선을 그린 야산은 조용한 전원풍을 연상케 하니 지나는 길손으로 하여금 절로 귀거래사(歸去來辭) 구절이 나올법한 그런 고을입니다. 세금천은 문백면 구곡리를 거치면서 상산8경(常山8景)의 경관을 하나 둘씩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구산(龜山)마을 동구 앞 농다리(籠橋)의 농암모설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돌다리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알려져 있는 진천농교 혹은 간단히 농다리라 부르는 농다리의 이름값이 높아진 것은 고려 초에 축조되었다는 오랜 연륜보다도 지금까지 손질을 해본 적이 없었던 그 불가사의한 완벽성 때문입니다. 돌로 쌓아 오랜 세월을 버텨온 이 다리는 충북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습니다.

 


축조연대는 상산지 및 조선환여승람에 고려초엽시대로 기록되어 있어 천년 이상된 다리로서 임장군에의해 축조되었다고 합니다.이 다리는 오랜 세월동안 큰 물난리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버틴 까닭에 '신비의 다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체 길이가 93.6m이며 너비가 3.6m. 돌로 쌓아 1.2m높이의 교각을 만들어 세웠고 교각과 교각사이의 폭은 큰 걸음 폭. 처음에는 스물 여덟 칸으로 축조됐으나 세월이 흐르며 토사매몰로 양쪽 두 칸씩이 줄어 현재는 암숫돌 한쌍씩 스물 네 칸입니다. 암돌과 숫돌을 엇갈리게 끼워맞춰 언뜻 봐도 거대한 지네 형상입니다. 다듬지 않은 돌을 그대로 써서 교각이나 교각을 잇는 돌들이 모두 제각기 모양이 다릅니다. 진천지방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붉은 빛을 띠는 자석(紫石)을 모아 지네(백족충(百足蟲)) 모양으로 만들었기에 '지네다리'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음양의 이치에 따라 교각을 쌓고 그 자리에 장대석을 얹었습니다. 돌과 돌을 서로 잡아당기도록 절묘하게 쌓고, 작은 돌로 세운 교각은 나라 안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어 토목공학적 연구가치가 높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는 다리입니다.

교각이나 다리에 석회 등의 접착성 물질을 전혀 쓰지 않고도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그리 큰 해침 없이 인내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농다리 입구가 굴티마을인데, 농다리로 들어가는 길 옆에 고려시대의 임연 장군의 사당이 있으며 충북 진천의 명소입니다

 

또 이 다리에는 별난 전설이 있습니다. 고려 고종 때의 권신 임연 장군이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이 지방 씨족들간에 전해오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 고종 때 임연(林衍) 장군이 그의 출생지인 이 고을 구산동(현재 구곡리)앞 세금천(洗錦川)에서 매일 아침 세수를 하였는데 어느 눈보라가 치는 추운 날 세금천 건너편에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 하자, "여보시오! 이 추운 겨울에 무슨 연유로 내를 건너려 하오?" 하고 묻자, "예,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가는 길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장군은 추운 겨울에 내를 건너려는 이 여인의 지극한 효심과 그 정경이 딱해, "그러면 잠깐 기다리시오." 하고 말한 뒤 즉시 용마를 타고 달려와 돌을 실어 날라 하루 아침에 다리를 놓아 부인이 무사히 건너도록 하였다 한다. 그때 용마는 너무 지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하며 또한 용마에 실었던 돌이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용마바위라 전하여지고 있다.

 

그리고 이 다리는 나라안에서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큰소리로 울었고 특히 임진왜란과 한일 강제합방 당시와  6.·25 동란 시에도 며칠 간을 울어 마을 사람들이 밤잠을 설쳤다고 전하는 '진천'에 긴(진)다리(지네다리(long) 다리(농교籠橋))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인이 다리를 건너 속옷을 달아놓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농다리 주변에는 늘 서너벌의 속옷이 널려 있었으며 노인이 다리를 건너다니면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에 따라 계절 가릴 것 없이 많은 노인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림 1.> 진천농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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