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동궁 일대 행각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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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동궁 일대 행각

자료출처 :- 문화재청 http://cha.korea.kr/gonews/branch.do?
자료생성 :- 2010-04-26 오후 05:12
자료옮김 :- 임충섭(쿠웨이트국립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1문화재 1지킴이 - 독도천연보호구역, 진천농다리)


문화재 향기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동궁 일대 행각]
2010-04-26 오후 05:12





 
 9. 동궁 권역








9-h-1 자선당資善堂

 

위치와 연혁 : 동궁(東宮)의 편당(便堂)이다. 사정전의 동쪽에 있다.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1429(세종 11)년에 이 곳에서 세종이 정사를 보았다는 실록의 기록 <원전 1>으로 보아 이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몇차례 소실과 재건을 거쳤으며 임진왜란 때 완전히 타 없어졌다. 1867(고종 4)년에 다시 지었으나 1915년 일제가 시정(始政)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앞두고 박람회를 개최하며 철거했다. 1999년 12월 복원하였다.
 
 
 

뜻풀이 : ‘자선(資善)’은 ‘선(善)을 도움 받는다.’는 뜻이다.‘자(資)’는 ‘바탕 삼는다’, ‘의뢰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중국 북송(北宋) 때 황태자의 강학소로 설치되었던 자선당에서 유래한다. 송나라 왕영(王?)이 편찬한 『연익이모록(燕翼?謨錄)』에서 “대중상부(大中祥符) 8(1015)년에 1)인종(仁宗, 1010~1063년)을 수춘군왕(壽春君王)에 봉하고 장사손(張士遜, 964~1049년)과 최준도(崔遵度,953~1020년)를 그 벗으로 삼았으며 강학하는 곳을 자선당이라 했다. 여기서 자선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태자가 공부하는 곳을 모두 자선이라고 한다.”<원전 2>고 하였다.

 
 

제작 정보 : 현판은 1999년에 설치하였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기능 보유자인 철재 오옥진이 쓰고 새겼다.

 

 
 

 

9-h-2 구현문求賢門

 

위치와 연혁 : 비현각의 동쪽 문이다.동궁 권역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미상이고, 지금의 문은 1999년 복원될 때 만든 것이다.
 

 

뜻풀이 : ‘구현(求賢)’은 ‘어진이를 구한다’는 뜻으로, 현인을 구하여 임금의 덕을 기르고 정사를 시행함에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교적 전통에서 군주의 정사는 독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인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강조되어 왔다.

『시경』 「주남(周南)^권이(卷耳)」 편의 모시서(毛詩序) 2)에서는 “「권이」는 후비(后妃)의 뜻을 읊은 것이다. 또한 마땅히 군자(임금인 남편)를 보좌하여 현자를 찾고[求賢] 관직을 살펴 신하들이 부지런히 수고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원전 3>고 했다.

『주역』 ‘준(屯)’ 괘의 4효의 효사 <원전 4>에 대해 북송의 성리학자 정이는 “육사(六四)는 유순함으로 임금의 자리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임금에게 발탁된 자이다. 그러나 그 재주가 준의 상황을 구제하기에 부족하므로 쓰려다 다시 그만둔다. 준의 상황을 구제하기에 부족하다면, 어진이를 구하여[求賢] 스스로를 보익함으로써 구제할 수 있다.”<원전 5>고 풀이했다.


 



 

9-h-3 이극문貳極門

 
위치와 연혁 :
동궁 권역의 동쪽 문이다.1867(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만들었다. <원전 6>지금의 문은 1999년 복원될 때 만든 것이다.



 

뜻풀이 :‘이극(貳極)’은 ‘두번째 북극’을 뜻한다.‘이(貳)’는 버금을, ‘극(極)’은 군주를 뜻하므로, 곧 황태자·세자를 의미한다. 별자리를 볼 때 자미단(紫微檀)안에 있는 북극성을 자극(紫極)이라 하는데, 이는 임금에 비유된다. 군주를 ‘극’이라고 한 표현은 『서경』 「홍범」 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황극’을 설명하며 “무릇 서민들이 삿되게 당파를 짓는 무리들[淫朋]이 없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첨함이 없는 것은 임금이 극을 세우기 때문이다.”<원전 7>라고 한 것이 그렇다. ‘이극’을 황태자나 세자와 연관된 건물로 표현한 유래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송나라 때 송민구(宋敏求)가 편찬한 『당대조령집(唐大詔令集)』3)(권30)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 가운데 「고종명황태자령제사계사조(高宗命皇太子領諸司啓事詔)」 편을 보면 “동대(東臺)는 이극(貳極)의 터이다.”<원전 8>라고 되어 있다.

 



 

9-h-4 중광문重光門
 

위치와 연혁 : 자선당의 첫 번째 남쪽 문이다. 1867(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 만들었다.<원전 9>『고종실록』에서는 자선당 안쪽 행랑 전각의 남쪽 문을 중광문이라 했는데, 현재의 위치와 차이가 난다.



 

뜻풀이 : ‘중광(重光)’은 ‘빛나는 덕을 거듭 밝힌다’는 의미이다.『서경』 「고명(顧命)」4)편에 “옛날의 임금인 문왕과 무왕이 거듭 빛난 덕(德)을 베풀어, 의지하여 살 바를 정해 주고 가르침을 펴니, 백성들이 열심히 익히고 어기지 않아 은(殷)나라에 도달하여 큰 명을 모았다.”<원전 10>라고 하였다. 송나라 때 성리학자 채침은 이에 대해 “무왕이 문왕과 같으므로 중광(重光)이라고 이른 것이니, 순(舜) 임금이 요(堯) 임금과 같으므로 중화(重華)라고 이른 것과 같다.”<원전 11>라고 하였다.


 



 

9-h-5 진화문震化門

 

위치와 연혁 : 자선당의 남쪽문이다.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미상이고 지금의 문은 1999년 복원될 때 만들었다.



 

뜻풀이 :‘진화(震化)’란 ‘왕세자가 변화됨’을 뜻하는데, ‘진(震)’은 ‘왕세자^장자’, ‘화(化)’는 ‘변화함’을 의미한다.『주역』의 ‘진(震)’ 괘에서 그 뜻이 나왔다. 진괘에 대해 『정전』에서는 진이 장남을 뜻한다고 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서괘전(序卦傳)」5)에 ‘기물(器物)을 주관하는 사람으로는 장자(長子)만한이가 없다. 그러므로 진괘로 받았다.’고 하였다. 정(鼎)은 기물(器物)이고, 진(震)은 장남(長男)이므로 기물을 주관한다는 뜻을 취하여 진괘가 ‘정(鼎)’ 괘의 뒤를 이은 것이다. 장자(長子)는 국가(國家)를 전하고 직위와 칭호를 잇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기물을 주관하는 주인이 되니, 「서괘전」에서는 중요한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서로 잇는 뜻으로 삼은 것이다.”<원전 12>
 


 

 
 

9-h-6 비현각丕顯閣


위치와 연혁 :
세자가 공부하던 곳이다. 자선당 옆에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는 동궁의 편당(便堂)이라고 했다.<원전 13>


 
 

뜻풀이 : ‘비현(丕顯)’은 (1)‘덕을 크게 밝히다’ (2)‘크게 드러나다’는 뜻을 가진다.‘비(丕)’는 ‘크다’는 뜻이며 ‘현(顯)’은 ‘밝다’ ‘드러나다’는 뜻이다. (1)의뜻은 ‘『서경』 「태갑(太甲)」 편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태갑」 편에서는 “이윤(伊尹) 6)이 마침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왕(先王)께서는 새벽에 덕(德)을 크게 밝히시어 앉아서 아침을 기다리시며, 뛰어난 사람과 훌륭한 선비들을 사방으로 구하여 뒷사람들을 계도(啓導)하셨으니, 그 명(命)을 무너뜨려 스스로 뒤엎지 마소서.’”<원전 14>라고 했다.

(2)의 뜻은 『서경』 「군아(君牙)」 편의 “아! 크게 드러났도다, 문왕의 가르침이여! 크게 계승하였도다, 무왕의 공렬(功烈)이여!”<원전 15>라는 표현에서 찾을 수있다.

 

제작 정보 : 현판은 1999년에 설치하였으며, 오옥진이 쓰고 새겼다. ‘비(丕)’자는 옛 서법을 따라서 정자체와는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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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중상부는 북송 제 3대 황제인 진종(眞宗, 968~1022년)의 연호. 인종은 진종의 뒤를 이어 4대 황제로 올랐다.

2)『시경』은 송나라때 이후로는 모공(毛公)이 편찬한『시경』만이 남아 전하게 되었는데, 이 『시경』을『모시』라고 한다.오늘날의 『시경』은『모시』를 말한다. 모공이 『시경』앞에 방대한 서를썼는데, 이것이 모시서다.

3)『당대조령집』은 당나라 황제들의 조칙 등을 항목별로 편집한 것으로,1070년에 완성되었다. 이 책을 편찬한 송민구는 사관수찬(史館修撰) 등의 관직에 있던 사람으로 역사에 밝았다.

4)「고명」 편은 주나라 성왕이 임종에 이르러 신하들에게 분부한 내용과 임종 후 장례 절차를 기록했다. 이 대목은 성왕이 유언을 남기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5)「서괘전」은 주역64괘의 배열 순서의 원인과 의의를 설명한 글이다.

6)이윤은 중국은(殷)나라 탕왕때의 명재상이다.「태갑」 편은 탕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으나 덕이 부족한 태갑에게 이윤이 진언을 올리는 내용이다. 인용에서 선왕이 탕왕이다.

 

<원전 1>『세종실록』 권43, 세종 11년 1월 18일(乙丑), “御資善堂, 視事. 判府事許稠啓, 昨日漢城試, 因雨雪未就. 上曰, 試官請停, 故從之.”

<원전 2>왕영, 『연익이모록』, “大中祥符八年,仁宗封壽春君王, 以張士遜·崔遵度爲友, 講學之所爲資善堂. 此資善之名所由始也, 自後元良就學所, 皆曰資善.”

<원전 3>『시경』 「주남(周南)·권이(卷耳)」, “卷耳, 后妃之志也, 又當輔佐君子, 求賢審官, 知臣下之勤勞.”

<원전 4>『주역』 준괘, “六四, 乘馬班如, 求婚?往, 吉无不利.”

<원전 5>위 구절에 대한 정이의 해석, “六四 以柔順居近君之位, 得於上者也, 而其才不足以濟屯, 故欲進而復止, 乘馬班如也. 已旣不足以濟時之屯, 若能求賢以自輔, 則可濟矣.”

<원전 6>『고종실록』 권4, 고종 4년 11월 8일(丁巳), “初八日. 營建都監, 以追後營建堂號門名別單啓.…(중략)…資善堂, 內行閣南門重光門, 北門毓德門, 外行閣南門貳極門. 丕顯閣, 南門?謨門.”

<원전 7>『서경』 「홍범」, “凡厥庶民, 無有淫朋,人無有比德, 惟皇作極.”

<원전 8>송민구, 『당대조령집』 권30 「고종명황태자령제사계사조」, “東臺, 貳極之基.”

<원전 9>이극문 원전 1 참조.

<원전 10>『서경』 「고명」, “昔君文王武王, 宣重光, 奠麗陳敎, 則肄肄不違, 用克達殷, 集大命.”

<원전 11>위 구절의 채침 주, “武猶文, 謂之重光.猶舜如堯, 謂之重華也.”

<원전 12>『주역』 진괘에 대한 『정전』의 해석, “震,序卦, 主器者莫若長子, 故受之以震. 鼎者, 器也,震爲長男, 故取主器之義而繼鼎之後. 長子, 傳國家繼位號者也, 故爲主器之主, 序卦取其一義之大者, 爲相繼之義.”

<원전 13>『증보문헌비고』 권38 「궁실(宮室)」,“丕顯閣, 東宮便堂也.”

<원전 14>『서경』 「태갑」, “伊尹, 乃言曰, 先王昧爽, 丕顯, 坐以待旦, 旁求俊彦, 啓迪後人, 無越厥命, 以自覆.”

<원전 15>『서경』 「군아」, “嗚呼, 丕顯哉, 文王謨. 丕承哉, 武王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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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1]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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