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혼례, 왕비 간택과 혼인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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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혼례, 왕비 간택과 혼인

자료출처 :- 문화재청 http://cha.korea.kr/gonews/branch.do
자료생성 :- 2010-04-08 오후 04:19 신명호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자료옮김 :- 임충섭(쿠웨이트국립병원, 독도KOREA홍보위원, 독도천연보호구역 지킴이, 진천농다리 지킴이)

월간문화재사랑
국왕의 혼례, 왕비 간택과 혼인
2010-04-08 오후 04:19



 
남녀의 만남과 유교의 예법

남녀의 만남이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꽃과 같다. 서로 만나 뜨겁게 타오를 때는 천국에 오른 듯 기쁨에 빠진다. 사랑의 불길이 타는 동안 세상은 밝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져야 할 때는 지옥에 떨어지는 듯 슬픔을 느낀다. 세상은 어둡고 우울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자칫 불꽃처럼 강렬한 남녀의 만남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곤 한다. 남녀의 만남은 강렬한 만큼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남녀의 만남을 포기할 수는 없다. 불꽃처럼 강렬한 남녀의 만남을 안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양의 위대한 유교 교주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공자는 남녀의 만남이 예법으로 다스려지고 통제될 때만이 안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공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은 주周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생각했다. 그래서 주나라를 세운 건국시조 문왕을 위대한 영웅으로 숭배했다. 그 문왕에게 남녀의 만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경詩經』의 ‘관저關雎’라는 시에서는 문왕과 태사太似의 만남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마주보고 우는 저 물새들 정답게 모래섬에 있으니/훌륭한 덕을 갖춘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로다./들쭉날쭉한 마름 풀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듯/훌륭한 덕을 갖춘 요조숙녀를 자나 깨나 찾는 도다./찾고 찾아도 얻지 못해 자나 깨나 생각하니/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잠 못 이루어 돌아눕노라/들쭉날쭉한 마름 풀을 이리저리 얻었으니/훌륭한 덕을 갖춘 요조숙녀를 금슬로 벗하노라./들쭉날쭉한 마름 풀을 이리저리 골랐으니/훌륭한 덕을 갖춘 요조숙녀를 종과 북으로 즐거워하노라.”

공자는 위의 시를 논평하면서 문왕은 좋은 배우자를 구하지 못했을 때 슬퍼하기는 했지만 상심하지 않았고 반면 좋은 배우자를 만났을 때 즐거워하기는 했지만 음란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문왕이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예법으로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태사와의 만남도 예법으로 다스렸기 때문이었다. 문왕과 태사는 예법으로 만나 예법으로 혼인하였다. 그 결과 무왕과 주공처럼 뛰어난 아들들을 둘 수 있었다.
 
조선시대 국왕의 혼례는 바로 문왕과 태사의 만남을 모범으로 하였다. 조선시대 국왕들은 누구나 문왕과 같은 위대한 영웅이 되고 싶어 했다. 나아가 문왕과 태사처럼 왕비와 예법으로 만나 예법으로 혼인하고자 하였다. 그런 노력들이 국왕의 혼례 속에서 꽃피어났다.

 
왕비 간택 절차

조선시대 국왕은 보통 8세 전후에 세자에 책봉되면서 혼인하곤 했다. 남자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 영구치가 나오고 지식이 늘어나기에 이때를 전후해 세자에 책봉하고 본격적으로 공부시키기 위해서였다. 세자에 책봉된 후에는 동궁에 살면서 학업에 전념해야 하는데, 이때 아예 혼인을 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조선시대 왕비는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세자빈은 세자가 왕위에 즉위한 후 정식 왕비에 책봉되었다. 하지만 국왕이 된 후에 혼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시대 세자빈 또는 왕비의 간택 및 책봉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납비의納妃儀에 의거하여 시행되었다. 납비의는 택일擇日, 납채納采, 납징納徵, 고기告期, 책비策妃, 명사봉영命使奉迎, 동뢰同牢, 왕비수백관하王妃受百官賀, 전하회백관殿下會百官, 왕비수내외명부조회王妃受內外命婦朝會 등의 절차로 이루어졌다. 이런 절차는 일반 사가의 혼례 절차인 의혼議婚, 납채, 납폐, 친영, 부현구고婦見舅姑, 묘현廟見의 여섯 가지 절차보다 훨씬 복잡하고 화려했다.



혼인을 위한 처음 절차는 왕비 간택이었다. 왕비 간택은 일반 사가로 치면 의혼 즉 중매를 넣어 혼인을 의논하는 절차였다. 국왕의 경우 의혼 대신 왕비 간택이 있었던 것이다. 왕비를 간택할 때에는 국왕의 나이에 관계없이 15세 전후 처녀들의 혼인을 금하는 금혼령을 공포했다. 금혼령이 공포되면 해당 연배의 처녀를 둔 전국 사대부 가문에서는 사주단자와 함께 부, 조, 증조, 외조의 이력을 기록한 신고서를 국가에 올려야 했다. 이 신고서를 처녀단자라고 하였다. 처녀단자는 예조에서 모아 왕에게 올렸다. 왕비의 간택은 대체로 왕실의 어른인 대비가 주관하였다. 대비는 처녀단자를 보고 그 중에서 가문과 사주가 좋은 처녀를 골랐다. 정치적 배려에 의해 내정되었다고 해도 사주가 나쁘면 간택되지 못했다. 처녀단자를 받아들인 후에는 금혼령을 해제하였다.

간택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초간初揀, 두 번째는 재간再揀 최종 세 번째는 삼간三揀이라고 하였다. 보통 초간에서 선발된 대여섯 명의 처녀들 중에서 두세 명을 재간하였고, 최종적으로 삼간에서 마지막 한 명을 뽑았다. 삼간에 뽑힌 처녀는 별궁別宮이라는 곳에서 대략 6개월 정도 왕비 수업을 받았다. 궁중의 예절과 법도 등은 궁에서 파견된 고참 상궁들로부터 교육받았다. 왕비간택이 결정된 후에는 혼례를 주관하는 임시 관청인 가례도감嘉禮都監을 설치하고 순차적으로 택일, 납채, 납징, 고기, 책비, 명사봉영, 동뢰, 왕비수백관하, 전하회백관, 왕비수내외명부조회를 시행하였다.

 
납비의에 의한 국혼

택일은 좋은 날을 골라 종묘와 사직에 가서 왕비를 들이게 되었음을 고하는 의식이고, 납채는 장차 국구가 될 가문에 왕비로 결정된 사실을 알리는 절차였다. 국왕은 대궐 정전에 나가 정사와 부사에게 교명문敎命文과 기러기를 주어 장차 국구가 될 가문에 전하게 했다. 교명문은 왕비로 결정된 사실을 알리는 명령문이고, 기러기는 이 가례가 평생 변치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보내는 예물이었다. 납징은 교명문과 함께 비단 예물을 보내는 의식으로 전체적인 절차는 납채와 같았다. 이 비단을 속백束帛이라고 하였는데, 검은 색 비단 6필과 붉은 색 비단 4필이었다. 고기는 왕이 혼인 날짜를 알리는 예인데, 방법이나 절차 역시 납채, 납징과 같았다. 일반 사가의 경우, 혼인 날짜는 신부의 생리 상황이나 혼례 준비를 고려하여 신부 집에서 잡았지만, 왕실에서는 점을 쳐서 좋은 날을 정했다. 책비는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으로 별궁에서 거행되었다. 왕은 왕비 책봉을 위해 교명문, 책문冊文, 보수寶綬, 명복命服 등을 보냈고, 왕비는 별궁에서 최고의 예복인 적의翟衣를 입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왕의 책봉문을 받았다. 책비 이후에는 상궁과 궁녀들이 왕비에게 대궐 안주인에 대한 예를 차려 네 번의 절을 올렸다. 이때부터 왕비로 인정되어 대궐의 상궁과 내시들이 모셨으며 행차를 할 때는 가리개인 산과 선扇으로 그 위엄을 보였다.

명사봉영은 왕이 사신을 보내 별궁에서 대궐로 왕비를 맞이해 오는 절차로, 사가의 친영에 해당했다. 이날 왕은 최고의 예복인 면류관에 구장복九章服을 입었다. 동뢰는 대궐로 들어온 왕비가 그날 저녁에 왕과 함께 술과 음식을 들고 침전에서 첫날밤을 치르는 절차였다. 왕은 대궐의 침전 문까지 나와 왕비를 맞이한 다음 침전의 중앙 계단을 통해 음식상이 차려진 방으로 갔다. 동뢰에서 왕과 왕비는 하나의 박을 쪼개어 만든 잔으로 석 잔의 술을 마신 후 왕의 침전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이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신방에는 깔개를 겹으로 깔고 그 위에 왕과 왕비의 잠자리를 따로 마련하였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국왕의 혼례 절차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왕비에게는 대비나 왕대비 등 왕실 어른들을 뵙고 인사한 뒤 조정백관과 내외명부의 여성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절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왕비가 정해진 후에 왕은 중국 황제에게 왕비 책봉을 요청하였다. 조선의 왕비는 황제가 보내준 고명誥命을 받음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지위가 공인되었으며, 국왕혼례도 완결되었다. 이처럼 조선시대 국왕의 혼례는 예법으로 시작해서 예법으로 마무리되었다.  

 
글·신명호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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