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번째 가을을 건너는 곳 ‘진천 농다리·초평 저수지’ 내고향 충북 진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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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번째 가을을 건너는 곳 ‘진천 농다리·초평 저수지’

자료출처
:- 이데일리 http://spn.edaily.co.kr/plus/life/newsRead.asp?sub_cd=DH26&newsid=02164806589823072&DirCode=0030302&searchDate=&startArrow=&strPage=
자료생성 :- 2009-09-23 13:40:36  경향닷컴 제공


1000번째 가을을 건너는 곳 ‘진천 농다리·초평 저수지’
입력 : 2009-09-23 13:40:36
▲ 여행자들이 농다리를 걷고 있다.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지만 1000년을 버텨올 정도로 튼튼하다.
 
[경향닷컴 제공] 낮고 투박하지만 야무지게 1000년을 견딘 농다리

중부고속도로를 달려본 사람들은 한 번쯤 봤을지도 모른다. 고속도로 상행선 진천을 지날 때 즈음 오른쪽 강변에 돌다리가 나타난다. 순식간에 스쳐가는 풍경이기에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이 다리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농다리다. 1000년을 버텨온 고려때 만든 다리다. 이 다리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어 언덕배기에 서면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초평저수지다. 산 아래선 저 위에 호수가 있을 것이란 상상도 하기 힘들어 처음 간 여행자들은 깜짝 놀란다. 도시락 하나 들고 아이들과 가을 소풍으로 가볼 만하다.

농다리는 특이하게 생겼다. 선암사의 승선교 같은 아치형도 아니고, 한강변 살곶이 다리처럼 편편하지도 않다. 높이는 낮고 투박하지만 야무지게 생겼다. 어찌보면 거대한 벌레같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지은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충북편>을 뒤져보니 농다리를 이렇게 소개했다. ‘다리는 얼핏보아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건너는 듯한 모습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의 너비가 그 위에 올려진 상판보다 넓으므로, 튀어나온 교각의 양끝이 지네 발처럼 보이는 것이다.’

다리 축조에 관한 전설은 이렇다. 고려때 무신 임연이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 개울에서 젊은 여인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우는 여인위해 놓아줬다는 고려 임연장군의 전설이

이유를 묻자 부친상을 당해 가는 길인데 다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임연은 당장 용마를 타고 돌을 날라다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게 바로 농교, 농다리다.

농(籠)다리라는 이름은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다는 뜻이란다. <상산지>(常山誌)나 <조선환여지승람>에는 고려초기에 임 장군이 하늘의 별자리 28개를 이용하여 28칸(교각)으로 만들었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지금은 24개의 교각만 남아있다고 한다. 다리는 제법 길다. 96m나 된다. 다리는 반듯하지도 않았다. 굽었다. 물길에 맞게 비스듬하게 교각이 세워진 구간도 있다. 교각이 조금 커보이는 것도 있고, 작아보이는 것도 있다. 고속도로상에서 보면 상판이 돌덮개가 아니라 검은 나무판처럼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큼지막하고 넓적한 바위판이다. 다리 위를 걷다보면 아무렇게나 쌓은 것 같은 이 다리가 1000년 넘게 버텨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다리 건너 산책로를 따라 가보면 호수가 나타난다. 세금천에서 불과 5분 만 올라가면 큼지막한 호수가 나타나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이 호수가 바로 초평저수지. 충북에서는 가장 큰 저수지라고 한다.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호수를 바라보기 좋게 나무 전망대가 마련돼 있고,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세금천에서 5분만 오르면 물빛 푸른 호수가 반기고

▲ 초평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는 관광객.

하늘은 푸르고, 물빛은 짙고, 바람은 살랑거리는 초가을 호수는 쉬어가기 딱 좋다.

대체 호수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농다리 어귀에 있는 진천 문백면 구곡리 마을 사람들은 일제 때부터 만들려고 했으며 60년대에 완공됐다고 했다. 진천군청 자료에는 ‘1942년에 기공하여 1958년에 한·미 협조로 완공되었는데 용수량이 부족했다. 약 4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1982년부터 공사를 시작, 종전의 댐보다 2㎞ 하류에 다시 댐을 축조하여 1986년에 준공하였다’라고 나와있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농다리 길이 증평으로 이어지는 큰 길이었던 거여. 증평에 가려면 농다리를 넘어서 초평저수지 쪽으로 가야 했어. 그래서 마을 입구에 주막도 있었고….” 토박이 임준호씨(74)는 “일제 때엔 마을에 대장간도 있고 거리가 북적북적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댐을 만들면 물이 조치원까지 간다고 했다니까. 처음엔 요 바로 앞에다 만들라고 하니까 워낙 농지가 많이 잠겨서 실속이 없었던 거지. 그래서 저 산너머에다 저수지를 만들었지. 우리마을 이름도 구곡리가 아니라 원래는 구산동이었어.”

농다리 마을은 상산 임씨 집성촌.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떠나고 난 뒤 흙더미 속에서 ‘구산동’(龜山洞)이라고 쓰인 돌판을 찾아냈다.

거북이 형상 닮은 마을도 촌로들은 명물이라 자랑

마을 사람들은 거북선에 호되게 당해 일본인들이 거북 구자가 들어가는 이 마을의 돌판을 아예 땅속에 버렸다고 믿고 있었다.

촌로들은 마을도 명물이라고 했다. 형상이 꼭 거북이를 닮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돌비석 앞에서 마을을 보면 나지막한 마을 뒷산이 고개를 쑥 내밀고 물을 찾는 거북이처럼 보인다. 재밌는 얘기도 있단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다리가 목놓아 운다는 것. 한일합방 때와 한국전쟁 때에도 돌다리가 울었다는 얘기가 내려온다.

농다리는 독특한 다리 모양 때문에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는다. 과거처럼 상여를 메고 다리를 건너는 모습이나 다리 아래 소를 끌고 농사지으러 가는 농부들의 모습은 과거 사진전에 많이 나왔다. 농다리는 건교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에 17번째로 뽑히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녘에 강바람도 쐬고, 호수도 보고, 마을 전설도 들을 수 있는 나들이 코스다.

길잡이

*중부고속도로 진천IC에서 빠진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 조금 달리다보면 왼쪽으로 농다리 이정표가 보인다. 내비게이션에서 문상초등학교를 찾으면 초등학교 지나 바로 농다리가 나온다. *농다리 입구에 농다리 전시관이 있다. 무료이며 농다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볼 수 있다. 월요일은 휴무다. (043)539-3862 *농다리 주변에는 식당이 하나도 없다. 아니면 진천읍내에서 식사를 하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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