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의 비밀 ⑬ - 사릉]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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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릉의 비밀 ⑬ - 사릉]

자료출처 :- 문화재청 http://cha.korea.kr/gonews/branch.do?
자료생성 :- 2009-09-21 오후 04:16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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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향기
[조선왕릉의 비밀 ⑬ - 사릉]
2009-09-21 오후 04:16




                 사적 제 209 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 산65-1 
             

사릉 가는길 :
경춘국도 금곡 -> 사릉리 방향 390번 도로(좌회전) -> 우측으로 이정표, 근처에 광해군묘와 홍유릉이 있고, 광릉은 약 40분 거리에 있다.




                                           
< 사릉 | 思陵 >


<처음에 대군부인의 예우로 장사 지내졌다가 후에 왕비의 능으로 추봉되어 병풍석과 난간석이 모두 생략되었다>

조선 6대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 송씨의 능이다. 정순왕후는 1454년(단종 2)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다음해에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자 왕후는 의덕왕대비로 진봉되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가 정자각 앞에서 끊겨 있다. 맞배지붕의 정자각은 건물채가 짧아 평면이 정사각형에 가까운 느낌이다>

1457년에 단종을 복위코자 한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대비 역시 부인으로 강봉되었다. 그 후 노산군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면서 단종과 생이별을 하고, 동대문 밖 연미정동에 초가를 지어 정업원(지금의 청룡사)이라 이름을 짓고, 그곳에서 단종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단종이 17세의 나이로 죽음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정순왕후는 매일 절 뒤 산봉우리(동방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비통해했다. 정순왕후는 소생 없이 82세까지 살았다.


<해주 정씨 묘역의 문석인 앞에서 바라본 사릉의 정자각. 정순왕후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단종의 누님인 경혜공주가 시집인 정씨 집안 묘역에 모셨다>


<사릉의 능역은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왕릉 가운데 소나무 숲이 가장 잘 보존된 곳 중 하나이다>

중종은 단종부터 7대에 걸친 왕대를 산 정순왕후를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가 출가한 정씨(해주 정씨) 가족묘역에 안장하고 제사를 지내주었다. 1698년 숙종에 의해 노산군이 단종대왕으로 복위되자 부인도 정순왕후로 복위되었으며, 신위는 창경궁에 모셔져 있다가 종묘에 안치되었다.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일생을 보냈다 하여 능호를 사릉(思陵)이라고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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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에서 발간한 [조선 왕릉 답사 수첩]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덧글

  • 쿠웨이트-진천농다리 2009/09/22 02:20 # 답글

    정답 :- 肅宗

    안녕하세요?
    쿠웨이트 정부병원의 ‘1문화재1지킴이(鎭川籠橋)’ 임충섭입니다.
    해외에 30년 이상 쿠웨이트 정부병원에 근무하는 관계로 주로 인터넷을 통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前 유홍준 청장님께서 머리말을 적어주신 ‘아름다운 사람들의 문화재 가꾸記)’ “또 하나의 유산” 에 저의 활동내용이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재외동포재단에서는 세계 각국에 있는 동포들 중 대사관 및 한인회를 통하여 추천받은 많은 분들 중에 엄선하여 최종 “독도KOREA홍보위원” 으로 65명을 위촉하였고 저도 그중 한명으로 현재도 열심히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무엇이라도 ‘有名有實(?)’하게 활동 할 것입니다.
    [조선왕릉의 비밀 ⑬ - 사릉] 기사 저의 블로그( http://q8imcs.egloos.com/tb/10155710 )에 올렸습니다. 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에서 오래전에 전화 문의로 저의 블로그에 올려도 좋다는 허락을 미미 받았습니다.


    정답과 관련된 기사 는 [조선왕릉의 비밀 ⑬ - 사릉]에도 있지만 저는 숙종실록에서도 찾아보았습니다.

    肅宗 32卷, 24年(1698 戊寅 / 청 강희(康熙) 37年) 10月 29日(庚午) 1번째기사
    여러 대신을 인견하여 노산군의 복위 의절을 논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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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庚午/引見大臣、備局諸臣。 時, 將擧魯山君復位儀節。 領議政柳尙運陳稟: “京則以復位?廟爲號, 外則以封陵爲號, 各差都監提調。” 禮曹判書崔奎瑞又陳各陵象設繁簡不同之狀, 請遵用故例, 上以厚陵石物, 最簡且小, 令依此例爲之, 此後仍著爲定式。 後因崔錫鼎所達, 又依貞陵、敬陵例, 不設武石。 奎瑞又言: “前頭當有?廟之節, 而新?主, 卽已?之位, 似當直入永寧殿, 而係是變禮, 宜預先講定。” 尙運、世白皆言: “當直?永寧殿。” 奎瑞又言: “魯山大君及夫人神主, 今方奉安於故參判鄭重徽家, 以重徽名旁題云。 以神德王后?廟時事觀之, 題主處未有憑據, 群議不一, 末乃定行於幄殿矣。 喪禮題主, 必於魂帛所在處, 其義可謂精微。 今此神主, 雖是私家所奉, 旣是神道百年憑依之所, 前頭題主時, 似當就此家行之, 而題主決不可就行於私家, 似當移奉, 以?題主。” 尙運言: “神德王后?廟時, 因先正臣宋浚吉收議, 以景福堂爲后平日所居處之地, 設幄殿而題主矣。 今則神主之不可仍奉私家, 誠如禮官言。 就?潔處移奉, 題主後仍爲埋安, 似合處變之道。” 上命竝問議于大臣、儒臣, 皆以領相言爲是。 領府事南九萬於新?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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