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의 비밀 ⑩ - 선정릉]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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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의 비밀 ⑩  - 선정릉  ]

자료출처
:- http://cha.news.go.kr/
자료생성 :- 문화재청 2009-08-31 오후 05:15
자료옮김 :- 1문화재 1지킴이(진천농교 - 쿠웨이트 정부병원 임충섭)

문화재 향기
[조선왕릉의 비밀 ⑩ - 선정릉]
2009-08-31 오후 05:15


 
                         사적 제 199 호 |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31  
             
선정릉 가는길 :
선릉로 -> 선릉사거리 -> 선릉역 전에서 좌회전 (8번출구, 이정표)



 
                                    <
선릉 | 宣陵 >


<성종 선릉의 정자각. 성종은 나라의 근간이 되는 국법인 《경국대전》의 편찬을 완료하는 등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태평성대를 이뤘다>

조선 9대 성종(成宗, 1457~94)과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 1462~1530) 윤씨의 능이다. 성종은 추존된 덕종과 소혜왕후의 아들로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부친을 여의었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이 즉위 1년 만에 승하하자 정희왕후의 명으로 1469년 왕위에 오른 성종은 태조 이후 닦아온 모든 체제와 기반을 완성시켜 조선 초기의 문화를 꽃피웠다.

정현왕후는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가 폐출되자 이듬해 1480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현왕후의 아들 진성대군(중종)은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정현왕후가 잠든 봉분을 지키고 있는 석양. 봉분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상설이 성종 능과 비슷하다>


<조선 초기 왕권이 강했던 시대상이 엿보이는 성종 능의 무석인. 선릉의 석물들은 큼직하고 조각선이 확실하며 사실적이다>

선릉은 유난히 많은 변고를 겪었다. 임진왜란 때 왕릉이 파헤쳐지고 재궁이 불태워지는 수모를 겪었으며, 1625년(인조 3)에는 정자각에 불이 나 수리를 했고, 그 다음해에도 능에 화재가 발생했다.



                                   < 정릉 | 靖陵 >


<중종이 홀로 잠든 정릉. 중종은 연산군 폐위 후 반정 세력에 의해 추대된 탓에 권력 기반이 약하였으며 정치적 혼란을 막지 못했다. 조선왕릉 가운데 왕만 단독으로 잠든 왕릉은 단종 장릉, 태조 건원릉, 중종 정릉뿐이다>

조선 11대 중종(中宗, 1488~1544)의 능이다.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로 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졌다. 진성대군은 1506년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낸 뒤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새로운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으나 당파의 정치적 논쟁이 끊이지 않아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였다. 중종은 1544년 세자인 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승하했다.


                            <번잡한 도심의 빌딩 숲에 파묻힌 정릉>


     <무석인과 석마. 정릉의 문·무석인은 그 높이가 3미터를 넘을 정도로 큰 편이다>

인종은 처음에 선왕을 고양(高陽)에 예장하고 묘호를 중종, 능호를 희릉(禧陵)으로 했다가 현재 서삼릉 능역 내에 있는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인 희릉 오른쪽 언덕에 정릉을 조영했다. 1562년(명종 17) 문정왕후에 의해 선릉 동쪽의 언덕인 현재의 정릉 자리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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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에서 발간한 [조선 왕릉 답사 수첩]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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