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의 비밀 ⑨ - 동구릉 2편 (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1문화재 1지킴이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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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의 비밀 ⑨ - 동구릉 2편 (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자료출처 :- 문화재청 chlove@ocp.go.kr

자료생성 :- 2009-08-24 오후 04:48

문화재 향기
[조선왕릉의 비밀 ⑨ - 동구릉 2편 (숭릉,혜릉,원릉,경릉,수릉)]
2009-08-24 오후 04:48




                                             
< 숭릉 | 崇陵 >


<왕과 왕비의 봉분은 병풍석 없이 난간석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봉분 앞에는 각각 혼유석을 놓았다>

조선 18대 현종(顯宗, 1641~74)과 원비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83) 김씨의 능이다. 현종은 효종의 맏아들로 봉림대군(효종)이 심양(瀋陽)에 볼모로 가 있을 때 태어났다. 1649년(인조 27) 왕세손에 책봉되었다가 1659년 효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현종과 명성왕후의 쌍릉으로 조성된 숭릉. 홍살문 안쪽에서 정자각까지 곧게 뻗은 참도가 잘 드러나 있다>

현종은 재위기간 중 양란을 겪으면서 흔들렸던 조선왕조 지배질서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군비 강화와 재정구조의 재건을 위해 힘썼다.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해 영직첩(影職帖)과 공명첩(空名帖)을 대량으로 발급했는데, 이것은 이후 정부의 재정보충책으로 보편화되어 신분제의 해체에 크게 기여하였다.


<정자각이 매우 화려하다. 조선왕릉의 정자각 중 유일하게 팔작지붕집이며, 양옆으로 익랑을 덧대어 규모가 커졌다>

명성왕후 김씨는 현종이 즉위하면서 왕비에 책봉되었다. 명성왕후 소생으로는 숙종과 명선, 명혜, 명안공주가 있으며, 현종 왕릉 옆에 쌍릉으로 안장되었다.


                                             
< 혜릉 | 惠陵 >


<홍살문에서 바라본 혜릉. 능은 비교적 낮은 구릉에 조성되었으며, 능역도 전반적으로 좁은 편이다>

조선 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端懿王后, 1686~1718) 심씨 능이다. 단의왕후는 타고난 품성이 어질고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덕을 갖춰 양전(兩殿)과 병약한 세자를 섬기는 데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 숙종 44년 승하하여 숭릉 왼쪽 산줄기에 모셔졌다가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단의왕후에 추봉되었다.


<정자각 지붕 위의 잡상. 왕실과 관련한 건축에서만 볼 수 있으며, 전각의 격에 따라 잡상의 수가 결정되기도 하였다>

능역이 전반적으로 좁고 길게 자리하고 있으며, 석물도 별로 크지 않게 제작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아담한 느낌이다. 조선 왕릉들은 대부분 북침(北枕)을 하고 있는데, 혜릉은 서쪽에 머리를 두고 있다.



                                           < 원릉 | 元陵 >


<83세의 최장수와 52년의 최장 재위 기간을 기록한 영조, 15세에 66세의 영조와 가례를 올린 계비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원릉. 쌍릉 형식이다>

조선 21대 영조(英祖, 1694~1776)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 1805) 김씨의 능이다. 1724년 즉위한 영조는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52년) 왕으로, 탕평책을 써서 당쟁의 근절에 힘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균역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자신은 붕당정치의 폐해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아들 사도세자는 붕당정치의 희생자가 되는 비운을 겪었다.


                     
<사각 형식의 장명등에 꽃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영조는 서오릉의 홍릉(원비 정성왕후)을 자신의 자리로 정해 쌍릉으로 조영하기를 바랐으나 손자인 정조는 지금의 건원릉 서쪽 두 번째 산줄기에 안장하고 원릉이라 했다.

15세의 나이에 66세의 영조의 비가 된 정순왕후는 훗날 사도세자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하였고, 순조 때에 수렴청정을 하면서 권력을 휘둘렀다. 정순왕후는 자손 없이 승하하여 원릉의 영조 옆에 묻혔다.


<원릉은 문·무석인의 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중·하계를 합친 최초의 능이다. 영조는 생전에 여덟 차례에 걸쳐 산릉을 조영하거나 이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능제를 정비하여 《국조상례보편》을 펴냈다>

영조는 최장수 임금이었던 만큼 생전에 8회에 걸쳐 산릉원을 조영하거나 천장해 능제에 관심이 많았다. 숙종의 교명을 근거로 제도를 정비하여 『국조상례보편』을 펴냈다. 따라서 원릉의 석물제도는 새로 정비된 『국조상례보편』의 표본과 같다.


                                            
< 경릉 | 景陵 >



조선 24대 헌종(憲宗, 1827~49)과 원비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43) 김씨 및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1831~ 1904) 홍씨를 모신 삼연릉으로, 조선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다. 정면에서 보아 제일 왼쪽 봉분이 헌종의 능이고, 가운데가 효현왕후, 오른쪽이 효정왕후의 능이다.


<경릉은 헌종과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3기의 봉분이 한 언덕에 나란히 자리한 삼연릉으로, 병풍석 없이 난간석을 터서 연결했다. 이는 한방을 쓰는 부부임을 상징한다>

헌종은 요절한 문조의 아들이며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당시 8세의 어린 나이였으므로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삼정이 문란해지고 계속된 홍수로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해졌다. 헌종은 혹독한 천주교 탄압정책을 폈으며,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로 많은 신자들이 학살당했다. 후사 없이 보령 23세로 승하하여 건원릉 서쪽 산줄기에 장사지냈다.


<문·무석인의 얼굴은 조각선이 가늘어 평면적으로 느껴지지만, 눈꺼풀과 눈동자 등은 섬세하다>

효현왕후는 1837년 왕비에 책봉되어 6년 만에 승하했다. 효정왕후는 효현왕후의 뒤를 이어 1844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헌종이 승하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다. 1908년 헌종은 성황제(成皇帝)로 추존되고 효현왕후, 효정왕후도 성황후로 추존되었다.


                                            
< 수릉 | 綏陵 >


<혼유석이 한 개만 있어 단릉처럼 보이지만, 순조의 장남 효명세자(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릉이다. 중계와 하계가 합쳐져 문·무석인이 한 공간에 서 있다. 영조 원릉부터 철종 예릉까지는 이처럼 중계와 하계가 합쳐진다>

추존 황제 문조(文祖, 1809~30)와 신정황후(神貞皇后, 1808~90) 조씨의 합장릉이다. 문조는 세자 시절부터 대리청정을 하면서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며, 모든 백성을 위한 정책 구현을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했다. 의릉 왼쪽 언덕에 장사지냈는데, 1846년 풍수상 불길하다는 논의가 있어 양주 용마산 아래로 옮겼다가 1855년 철종 때 다시 건원릉 왼쪽으로 옮겨왔다


                                           
<홍살문에서 바라본 수릉>

순조의 뒤를 이어 문조의 아들 헌종이 즉위하였고, 헌종은 부왕인 문조를 익종(翼宗)으로 추존했다.

신정왕후는 83세까지 천수를 누리면서 조선 후기의 정국을 좌지우지한 여장부였다. 아들 헌종이 왕통을 이어받아 남편이 익종으로 추대되자 왕대비에 올랐고, 후사 없이 승하한 철종 뒤에는 대왕대비가 되어 왕실의 권한을 한손에 거머쥐었다.


              
<방위 표시가 된 봉분의 난간석. 오傲는 정남쪽을 가리키는 글자이다>

신정왕후 조씨는 안동 김씨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대원군과 손잡고 고종을 즉위시키고 조대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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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에서 발간한 [조선 왕릉 답사 수첩]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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