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도가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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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도가 평양?

자료출처 :- 재외동포신문 http://www.dongponews.net/news/quickView.html
자료생성 :- [193호] 2010년 01월 25일 (월) 17:13:29 이현아 기자


대한민국 수도가 평양?
재터키한인회 한국 바로 알리기 캠페인 눈길


[193호] 2010년 01월 25일 (월) 17:13:29

“한국의 수도는 평양” “독도는 일본 땅”

대한민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범람하자 현지 한인회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 화제다. 사연의 주인공은 재터키한인회.

재터키한인회(회장 조규백)는 2010년 터키에 잘못 알려지고 있는 대한민국 관련 정보를 바로잡고자 ‘대한민국 오류 및 개선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인회는 지난 5일 이 같은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우리 주위에 대한민국에 대한 많은 오류와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 수도가 평양이라고 알고 있는 등 잘못 알려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한 조규백 한인회장은 “터키사람들이 우리 동포에게 이런 내용들을 지적하는 일이 빈번하니까 동포들이 나서 캠페인을 요청해 왔다”고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했다.

한인회는 이번 캠페인을 위해 크게 두 가지 사례를 집중적으로 시정하기로 결의했다. 첫 번째는 터키 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한민국과 관련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것으로 각종 다이어리,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서, 교과서, 인터넷 등을 대상으로 한다.

두 번째 시정 대상은 대한민국 국격에 걸맞지 않는 행위다. 한인회는 “한국인임을 내세워 호객행위를 하거나 계약금만 받고 이행하지 않는 경우 혹은 책임회피성이거나 무책임한 약속을 하는 등의 사례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한인회는 “이 같은 사항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 동포들의 협조 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우리 스스로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터키 동포들의 수준 높은 지적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새해부터 시작한 캠페인에 벌써 몇몇 사례가 접수됐다. 진상을 파악하는 단계로 모두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범 교민적인 활동으로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이어 “모든 동포들이 이용하고 있는 한인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며 “추후에는 한인회 행사 등 오프라인 캠페인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지 기관에서 발행하는 간행물 등에 잘못된 내용이 있을 경우 우리 공관과 협조해 시정활동을 펼친다는 복안도 있다. 조 회장은 “진상을 철저히 파악해서 공공기관의 오류를 시정할 경우에는 우리 공관과 협의하에 시정활동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회가 제시한 사항에 속하는 내용의 오류나 문제를 알고 있는 터키 한인은 한인회에 메일이나 담당자(90 212 291 6596)에게 전화로 제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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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웨이트-진천농다리 | 2010/02/09 12:33 | 재외동포 소식 | 트랙백 | 덧글(0)

[박정규칼럼] 없어진 고려문이 변문진으로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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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칼럼] 없어진 고려문이 변문진으로 둔갑

자료출처 :- 간도되찾기운동본부 http://www.gando.or.kr/
자료생성 :- 2010-02-04 10:55:24 관리자
 
 
제 목
[박정규칼럼] 없어진 고려문이 변문진으로 둔갑
  작성자
관리자
2010-02-04 10:55:24  
 

[박정규칼럼] 없어진 고려문이 변문진으로 둔갑
[2005-07-30 08:23]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지난 6월 마지막 주간에 중국에 있는 기독교 관계 유적지를 답사하던 중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이 한번 있었는데 우리가 오전내내 찾아헤매였던 고려문(高麗門)이었다. 코리아 게이트(Korea Gate)로 불리었던 고려문은 조선조 내내 만주와 조선 사이 양국 상인들이 함께 어울려 물물교환을 하였으며 양국의 문화가 교류되었던 역사적인 현장이었기 때문에 한국사(韓國史)를 공부하는 학자들이나 교회사(敎會史)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기독교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인 현장이 아닐 수 없는 곳이다.

가이드는 우리를 안내하며 현장을 찾아나섰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차례나 차를 멈추고 가이드는 차에서 내려 행인들과 주민들에게 고려문이 있었던 위치를 문의했으나 당시의 문모습이 남아 있지 않아 번번히 실패하였다.

하는 수 없이 고려문이 있었다는 자리에서 뒷쪽으로 신의주를 향해 뻗어난 철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몇장 찍고서 차를 타고 단동(丹東)을 향해 막 출발해 100여 미터 나왔을까 일행 중 성결교회역사문학회 상임대표인 백수복(白壽福) 목사가 저기 철로변에 높이 1m 50cm 정도로 솟아있는 하얀 돌비를 발견하고 큰 소리로 차를 멈추라고 해 차를 세우고 우리 일행들이 우르르 내려 비석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일행들 모두가 할렐루야를 연호했다.

그 돌비에 새겨진 변문진(邊問鎭)이란 붉은 글자가 바로 중국쪽에서 최근 1996년 9월 17일에 길림성 봉산구(鳳山區)에서 세운 고려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최근 중국에서 소위 동북공정이란 역사왜곡사업의 여파로 중국쪽의 제일 변두리에 세워졌던 변문(邊問)이란 중국식의 의미를 새겨놓은 것이 분명하였다.

여기에 쓰여진 변문진이란 글자의 진(鎭)은 바닷가나 강변에 군대가 진주하고 있을 경우에 흔히 쓰는 강변 혹은 해변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비추어 볼 때 의심의 여지없이 변문진이란 비석이 서있는 곳이 당시의 고려문 자리였던 것이 틀림이 없어 보였다.

필자가 고려문 자리를 꼭 보기를 원했고 일행 모두가 그토록 하루의 절반 시간을 소모해 가면서 애타게 위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이유는 또 있다. 고려문은 조선과 만주 사이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문화가 교류된 역사의 장일 뿐만 아니라 교회사적(敎會史的)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국에 선교하러 왔던 영국인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목사와 매킨타이어(K. Mcyntire)목사가 고려문에 왔다가 이상한 의복과 갓을 쓴 조선 청년들과 첫만남이 이루어진 곳이요. 이를 처음 만났던 병든 조선 청년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조선말을 배워 조선선교의 발판이 될 조선말 성격번역작업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업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려문에서의 거리는 꽤 먼곳 심양(沈陽)에서 출판이 되긴 했지만 1882년에 처음으로 '예수셩교 누가전서'가 변역, 출판되었고 드디어 1887년에 심양 문광셔원에서 '조선 표준어는 아니었으나 당시 조력했던 의주 청년들이 살았던 평안도 사투리로 물들여진 조선어로 '신약젼서가 완역되어 출간된 세계사적인 의미가 내포된 최초의 조선어 성경이 나왔고 이 성경책을 해체하여 노끈을 꼬아 중국의 쓸모없는 몇천의 책을 꾸러미로 책을 묶는 노끈이 되어 그 삼엄했던 감시의 눈을 피해 고려문을 통해 성경이 최초로 조선에 투입되는 관문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 일행들은 그 의미를 새기며 '변문진' 자리가 바로 '고려문'이 있었던 역사왜곡의 현장임을 직감하고서는 우리 일행들은 그 비석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몇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변문진을 뒤로하고 백두산 등정을 위해 비는 오지 않았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 속에서도 후련한 마음으로 백두산을 향해 질주했다.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출처: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155405






by 쿠웨이트-진천농다리 | 2010/02/09 12:17 | 간도(間島)되찾기운동 | 트랙백 | 덧글(0)

재외 한인 천주교 신자는 15만7천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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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한인 천주교 신자는 15만7천여명

 자료출처 :- 코리안넷 http://www.korean.net/wcms/view.jsp?bID=53097&pageID=01035245
 자료생성 :- 2010-02-08  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재외 한인 천주교 신자는 15만7천여명 사진이 있는 게시물

2010-02-08

제공:연합뉴스

다른 나라에 있는 한국인 가톨릭 신자가 15만7천67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해외이주사목위원회(위원장 이병호 주교)가 5일 발표한 '해외 한인 천주교회 통계'(2009)에 따르면 2009년 12월 말 현재 해외 한인 가톨릭 신자 수는 2008년보다 1천9명 늘어난 15만7천674명이었다.

 

이는 외교통상부가 집계한 재외동포 682만2천606명(2009년 5월1일기준)의 2.31%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이번 통계에서는 국외로 파견된 사목자와 수도자수가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제수는 2008년 207명에서 2009년 250명으로 늘었고, 수녀는 106명에서 374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사진설명 = 괌 한인성당 모습.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chaehee@yna.co.kr (끝)







by 쿠웨이트-진천농다리 | 2010/02/08 20:33 | 가톨릭 신자입니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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